[이현석 목사에게]

박온순
  • 2155
  • 2021-08-01 05:54:32
거룩하신 우리 주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우리 가운데 화목제물이 되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주님께 드리는 예배가 온전한 예배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주일 준비를 마치고 목사님과 화목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당연히 그리해야 하겠기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목사께 ‘시므이’, ‘바퀴벌레’, ‘산발랏과 도비야’라는 것을 비유로 하여 표현한 것에 대해 이목사는 심히 격동이 된 듯합니다. 이에 대하여 내 소견을 밝힐 것이니 이에 대하여 이목사가 분노할 일인지 또는 돌아볼 일인지, 나는 주님의 마음과 상관없는 내 의에 빠진 행동이었거나 상대방을 자극하기 위한 감정의 표출이었는지 성령님께서 심연에 감추어진 의도까지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1. “시므이가 생각난다”는 표현의 배경

감신에서 학생들을 지도하셨던 임성모 박사님께서 본 감게에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글에 너무도 민망할 정도로 이 목사가 비아냥거리는 듯한 댓글을 보면서 기가 막혔습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경험한 것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에 감격하여 그 은혜로 살고자 하는 참된 스승을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학생들에게 소개해 줄 만한 스승의 부재 시대에 감신에서 임 박사님도 나도 학생들을 지도하던 중 학생들과 다른 교수님들을 통해 임박사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이 목사도 임 박사님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습니다. (아래 4항에서 통화하고 난 후)

임박사님도 운동권에 잠시 있었으나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어 방향을 전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학업을 마치고 목회를 하던 중 지난주와 금주에 대한 설교를 분석해 보니 구원론에 대한 설교가 각각 다르더랍니다. 이에 충격을 받고 목회를 사임한 후 유학길에 올라 수십 년 동안 구원론 하나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학교로 돌아왔답니다. 그런데 와 보니 너무도 심각한 상황이 눈에 보이니 학교가 이렇게 가다가는 더 어려울 것을 예견하고 청산할 것에 대한 대안들을 제시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목사의 무례하기 짝이 없는 댓글을 보면서 댓글에 “시므이가 생각난다”하였지요?

2. “바퀴벌레”라는 시를 쓴 배경

아비의 마음을 가진 참된 스승을 만나는 일도 힘들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갈망하고 진리를 구하여 찾는 진실한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을 만나는 것도 그간 희귀한 일이었답니다. 그런데 “감리교회가 이렇게 되면 안되겠다”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자원하여 모인 [감리교바로세우기연대]의 회원들은 학연도 교회의 직분도 성별과 세대도 초월하여 만난 분들이지만 각자 목회와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치열하게 싸우다 모인 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심이 참으로 순수하여 주님이 가족의 개념을 말씀해 주셨듯이 그리스도 안에 한 형제요 자매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영적인 방향성이 같은 자들을 만나지 못하여 혼자라는 생각도 가진 적이 있었지만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회원 중에 동성애에 관한 현 상황을 보며 안타깝고 괴로운 중에 감게에 글을 올리면 이목사는 영낙없이 댓글을 달곤했지요? 그리고는 동성애는 어떻고, 감신이 어떻고, 목원이 어떻고, 정치적이다, 이용당한다, 선동한다, 기타 등등. 모든 글마다 끼어드는 모습을 보니 바퀴벌레가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교회는 지하실에 있어 습한 경우엔 바퀴벌레가 생기곤 합니다. 평상시엔 있는지도 모르는데 주방에 들어갈 때 불을 켜면 정신없이 나와서 허둥대는 모습이 생각이 나서 바퀴벌레라는 시를 썼던 것입니다. 불을 켜기만 하면 튀어나오는 바퀴벌레요~

3. “감리교회의 산발랏과 도비야들”에 대하여~

감게에 어제 올린 위와 같은 제하의 글을 쓰게 된 것은 갑자기 쓴 것은 아니고요, 또한 목사님만 의식하고 쓴 것도 아니고요, 감리교게시판에 들고나는 목사들과 평신도들의 글을 접하면서 떠오른 영감입니다. 물론 내 안에도 그러한 요소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자성하는 마음도 담아 썼습니다. 어찌 되었건 목사님에게서 영감을 받은 건 사실이니까 그중 하나만 소개할까 해요.

평생을 성경연구에 전념하신 최세창 원로 목사님과 같은 분은 그 얄궂은 학연과 상관없이 존경해 드려야 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편견 없이 다양한 각도에서 연구하셔서 성경을 주석하시는 원로이시기에 젊은 분들은 물론 가르치는 자들은 배움의 자세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목사가 최목사님의 주석마다 다는 댓글들을 보면 너무도 기가 막혔답니다.

“아니, 목사로서 대체 바른 정신을 하고 있나?” 솔직히 말한다면 정말 이 목사가 옆에 있으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댓글을 통해 ‘정치적이다’, ‘선동적이다’, 기타 등등.
아니 상식적으로도 원로가 누구를 선동할 것이며, 선동해서 무엇을 할 것이며, 정치적으로는 또 무슨 말이며.......

나는 최목사님께서 올리시는 말씀들을 읽으며 생각하기를 ‘진리가 훼손이 된 이 시대에 바른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생각하여 참으로 귀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목사는 ‘어떻게 그렇게 몰이해를 하고 신앙을 떠나 인간적으로도 어르신에게 그렇게 방자히 행할 수 있지?’라는 생각에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고요. 그러면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훼방했던 산발랏과 도비야가 생각이 났지요.

이 목사는 아직 오십도 되지 않았다고 했지요?
나는 그 나이에 목회하랴, 공부하랴, 자녀들 양육하랴, 경제적인 어려움에 그 세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아득하기만 한데, 아마 이 목사는 아무 염려와 근심도 없고 주어진 삶의 무게도 없는 듯합니다?

4. 목사님과 통화 내용에 대하여

지난 6월의 어느 날이었던가요?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가족들과 캠핑을 갔습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월요일마다 광화문에 나갔기에 쉼이 없었지요.

벼르고 별러 작은딸도 휴가를 내고 큰딸 가족 모두와 캠핑을 갔을 때 이목사께서 나에게 전화하였으나 나는 통화 중이었기에 통화 후 부재중 통화가 찍혀 있어 내가 전화를 걸어 통화가 되었지요? 나는 매우 반가워했고 이 목사와의 통화를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가족들은 이곳까지 와서 또 동성애 문제며 그런 일로 통화하느냐고 눈살을 찌푸리는 눈치를 보며 2-3 시간을 족히 통화한 듯해요. 왜 그랬을까요?

나는 진심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주님 안에서 좋은 교제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나는 그날 이렇게 말했지요?

“목사님의 글은 난삽하다, 일관성이 없다. 목사님의 글은 동성애의 문제로 감리교회가 양쪽으로 나뉘어진 상황에 어느 쪽에도 도움이 안된다. 더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이동환 목사보다도 이 목사와 같은 사람이 더 복잡한 사람이다. 이는 단순히 동성애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다. 근원은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국가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내 하나 부탁하겠다,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니 관여하지 말아달라. 특히 나의 글에 제발 댓글도 달지 말고 관심도 갖지 말라, 내 부탁하자.” 이것이 나의 발언이었던 것 기억하지요?

아 참 이렇게도 말했지요.

“나는 약한 자 앞에 한없이 약하지만 강한 자 앞에 더 강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자들 앞에서는 어린 아이들일지라도 존중하고 귀히 여기나, 진리를 훼손하는 자들 앞에서는 그 누구든 참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5. 맺는말

다시 언급하지만 감게에 올리는 나의 글은 단순히 동성애에 관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의 이름으로 신학자의 이름으로 진리를 훼손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에 대한 반론이요, 또는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도 빛을 보면 시도 때도 없이 뛰쳐나와 허둥대는 바퀴벌레처럼 상황을 분별하지 못하고 횡설수설 하며 이를 훼방하는 자들을 향한 시적인 표현이나 은유적인 표현들은, 내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사랑을 간직한 자로서 견딜 수 없을 때 성령 안에서 최대한 승화시킨 나만의 표현 방법입니다.

그 표현으로 인하여 이 목사가 격동하고 있는 것처럼 또 다른 몇 분에게도 그러한 류의 표현을 했으나, 진리를 훼손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것에 비하면 날아다니는 먼지에 불과한 것임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2021년 7월 31일 박온순 목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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