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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論爭),-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오재영
- 1524
- 2021-07-30 23:17:12
오, 교만한 마음에 타오르는 반박의 혐오스런 열정이여!
형제들이여, 지옥의 입구를 피하듯이 논쟁을 피하라.
논쟁을 좋아하는 자들을 피하라.
그들이 자기주장을 하도록 그냥 버려두라.
그들이 말하도록 그냥 내버려두라.
그들이 글을 써도 그냥 내버려두라.
당신이 틀렸다고 따져도 그냥 내버려두라.
그들이 당신을 비방해도 그냥 내버려두라.
당신을 정죄하고 판단해도 그냥 내버려두라.
그들이 당신을 매장하려 해도 그냥 내버려두라.
사랑이 고통당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진리가 고통당하도록 내버려두라.
당신은 논쟁자가 될 수 있을 만큼의 신성(神性)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알렉산더 와이트(Alexander Whyte) -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에게 영향을 준 스코틀랜드 목사).
크리스천의 생명인 언어(言語)습관.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말)는 존재의 집”이라 했다. 즉 한 인간의 말은 그 존재와 불가분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박(輕薄)한 말을 하는 자가 신중한 사람일 수 없고, 사려 깊은 자가 천박(淺薄)한 말을 할 수는 없다. 하물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전제로 구도자의 길을 가는 이들이라면 두말해 무엇 하겠는가?
지금 온갖 처방의 시끄러운 소리들이 요란해도 교회든 교단이든, 정작 가야할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거침없는 막말도 순간엔 시원할지 몰라도 곧이어 그에 따른 대가(代價)를 지불해야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얻지도 못한다. 최근에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성경을 기준으로 자기부인(自己否認)과 자기성찰에 전념해야할 이들이 함부로 관종(關種)의 자리에 등장하여 수치스러운 거품을 내뿜고 있다.
그들 중에는 신학교교수라는 이들을 비롯하여 한때 교단의 개혁을 논하든 이들도 있다. 모두가 지난 날 중요한 자리마다 끼어들어 오히려 교단의 문제를 꼬이게 만들어 오늘에 이르도록 어지럽힌 이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주님의 긍휼(矜恤)과 전적인 은혜가 아니면 자신들의 존재자체가 불가한 한없이 연약한 인간임을 망각한 가련한 이들이 아닌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
주님께서 승천하시기전,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이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절).
그러므로 제자로서 구원 받아야 할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명(召命)에 따른 자신의 희생과 거룩, 성별에 이어 “예의(禮儀)범절(凡節)”의 문제다. 각자 환경과 기질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더불어 살기 위한 타율적 장치가 법(法)이라면 예의(禮儀)란 모두의 공생을 위한 자발적 규범(規範)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시대를 분별하는 영적인 안목(眼目)이 그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음란(淫亂)의 세대를 살아가고 있다. 모든 문화가 순간순간 육체적 정욕에 끌리는 생활이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세상은 두 사람이 망쳐놓았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한명은 프로이트이고, 또 한명은 칼 마르크스로 둘 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선민(選民)유대인이다. 프로이트는 섹스를 대표하는 사람이요, 칼 마르크스는 물질주의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이들로 인한 왜곡된 성적(性的)문화와 하나님을 떠난 이들로 인해서 멸망을 향하고 있다. 에이즈가 그렇고, 마약이 그렇고, 엄청난 죄악이 기하급수적으로 넘쳐나고 늘어간다.
목적(目的)이 수단(手段)을 정당화하는 것은 사단의 함정(陷穽)이다.
이러한 시대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면 그는 누가 칭찬한다고 교만해질 필요도 없고, 비난해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야한다. 누구나 일상에서 겪는 사연에도, 장님보고 장님이라 하면 화를 낸다. 그러나 멀쩡하게 눈뜬 사람보고 장님 이라하면 화를 내지 않는다. 남다른 유식한 이에게 “무식한 사람!”이라며 욕을 해도 유식한사람은 그저 웃고 지난다. 그러나 정말로 무식한 사람보고 “무식한 자!”하고 면박을 주면 큰일 난다. 그러므로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면 그는 진짜 무식한 사람임을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본인이 그리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글을 마치며...
C.S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에 “가장 큰 죄(罪), 그것은 바로교만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서는 빨리 간파하지만 자기 자신에게서는 거의 알아채지 못하는 그 죄란, 인생을 자기중심적으로 설계할 때 오는 오만하고 건방진 태도다.” 정상적이고 올바른 비판(批判)은 개인이든 단체든 보다 나은 발전을 위하여 꼭 필요하다. 그리고 보다나은 미래를 바라는 개인이나 지도자들이라면 그 비판에 귀와 마음을 넓혀야 한다.
그러나 비판(批判)중요하나 집착하면 그가 어떠한 위치에 있든지 자기 인생을 패망케 하고 넘어진다.
그 비판 때문에 자신의 실제모습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하다보면 결국에는 자기가 하나님의 역할까지 대행하게 됨으로 본인도 같은 죄인임을 잊고, 하나님처럼 언제나 심판자의 삶을 살며, 상대방은 언제나 자신의 가르침과 판단에 따라야 할 사람으로 인식하게 하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들을 장차 구원의 길에 인도되어야 할 선교의 대상들인 일반세상의 상식 있는 이들이 보면 뭐라 할까? 자신의 편협한 감정이전에 생각들은 하는가? 내 생각에는 “비렁뱅이들끼리 동냥자루 찢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것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