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릉에서

이경남
  • 1190
  • 2021-08-18 05:19:48
장릉에서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영월을 찾는다
해발 1000의 산맥들과
그 사이사이 절경을 만드는 계곡과 동강 맑은 물은
아직도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내 마음에 깊은 감동을 준다
그러나 이곳은 또한
단종애사의 사연이 담겨있는 역사의 고장

"지는 해를 바라보며 절을 올리니 부디 내 절을 받으시오
이제 모두 저 세상 사람들이 된 사육신들
그대들이 없는 조선의 앞날이 자꾸만 걱정이 되는구려"

결국 열일곱 앳된 소년의 시신은
강가에 버려지고
누구도 수습할 수 없는 삼족지멸의 포고령이 내려진다

爲善被禍吾所甘心(위선피화오서감심)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받는 것은 달게 받겠다

영월호장 엄흥도
겨우 방범대장이나 하는 하급관리였지만
그러나 그에게는 서슬 퍼런 왕명을 거역할 수 있는
하늘의 분별과 용기가 있었다
그는 시신을 수습, 은밀히 이곳에 장사하며
수양의 사악한 행적을 남긴다

영월은
아직도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산수의 고장
단종의 슬픈 역사를 담고 있는 비련의 고장이거나
끝까지 한 임금에 사군이충한
충절의 고장으로만 이해되지만
그러나 이곳은
포악한 군주의 명령에 맞서 사람의 양심을 지킨
의와 저항의 고장으로 기억되어야 하리라

2021.8.16.월요일 오후 영월 장릉(단종묘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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