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서드】일용양식(日用糧食)

함창석
  • 1914
  • 2021-08-29 00:09:03
(만찬)

성경: 요한복음 6장 31-35절
설교: 일용양식(日用糧食)

함창석

모세가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그들을 먹였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너희에게 준 것은 모세가 아니다. 오직 너희에게 하늘의 참된 양식을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의 양식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바로 그것이다." "주님, 그런 양식을 항상 우리에게 주십시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내게 오는 사람은 굶주리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절대로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날마다 필요로 하는 양식, 인생이 매일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물질(육신적 필요)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특히 광야 40년 방랑 생활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받음으로써 생존할 수 있었다(출 16:4). 또한 유다는 범죄 함으로써 일용할 양식이 감해지는 고통을 경험해야 했다(겔 16:27).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할 것을 명하셨다(마 6:11; 눅 11:3). 이처럼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이 땅에서 물질(세속)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는 비결이요(잠 30:8), 또 매일의 삶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거룩한 명령이며, 인생의 모든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고백하는 신앙적 행위이다. 그리고 일용할 양식을 구함으로써 일용할 양식을 얻지 못하는 이웃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행 2:42-47; 4:31-35). 사도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설명하는 가운데 일용할 양식이 없는 이웃에게 말로만의 친절(사랑)을 베푸는 것이 얼마나 그릇된 일인지를 일깨우고 있다(약 2:15-17).(가스펠서브, 일용할 양식, 라이프성경사전, 2006.)

日자는 해를 본뜬 글자이다. 단단한 재료에 칼로 새겼기 때문에 네모꼴로 보이지만 본디는 둥글게 쓰려던 것인 듯하다. 태양을 그린 것으로 ‘날’이나 ‘해’, ‘낮’이라는 뜻이 있다. 갑골문은 딱딱한 거북의 껍데기에 글자를 새기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둥근 모양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日자가 비록 네모난 형태로 그려져 있지만, 본래는 둥근 태양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갑골문에 나온 日자를 보면 사각형에 점이 찍혀있는 모습이었다. 이것을 두고 태양의 흑점을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먼 옛날 맨눈으로 태양의 흑점을 식별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日자는 태양과 주위로 퍼져나가는 빛을 함께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하다. 태양은 시간에 따라 일출과 일몰을 반복했기 때문에 日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시간’이나 ‘날짜’ 또는 ‘밝기’나 ‘날씨’와 같은 뜻을 전달하게 된다. 用자는 감옥이나 집 따위를 둘러싸는 나무 울타리의 모양 같으나 卜(복 점)과 中(중 맞다)을 합한 모양이라느니 화살을 그릇에 넣는 모습이라느니 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물건을 속에 넣는다는 뜻에서 꿰뚫고 나가다, 물건을 쓰다, 일이 진행되다의 뜻을 나타낸다. 用자는 주술 도구를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하고 또는 걸개가 있는 ‘종’을 그린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用자의 쓰임을 보면 이것은 나무로 만든 통을 그린 것이다. 用자가 ‘나무통’을 뜻하다가 후에 ‘쓰다’라는 뜻으로 전용되면서 여기에 木(나무 목)자를 결합한 桶(통 통)자가 ‘나무통’이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用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용한자에서는 관련된 글자가 없다. 다만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나무통’이라는 뜻을 전달한다. 糧자는 뜻을 나타내는 쌀미(米 쌀)部와 음을 나타내는 量(량)으로 이루어진다. 된 쌀의 뜻이다. 또 한편 량이란 음은 노동의 뜻을 가지며 노동하기 위하여 먹는 것이란 뜻이다. 食자는 사람(≒人)이 살아가기 위해 좋아하며(良) 즐겨먹는 음식물로「밥」을 뜻한다. 사람에게 먹이는 것→먹을 것→먹게 하다는 飼(사)였는데 그 뜻에도 食(식)을 쓴다. 부수로서는 그 글자가 음식물 먹는데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食자는 음식을 담는 식기를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食자를 보면 음식을 담는 식기와 뚜껑이 ( )함께 그려져 있었다. 食자는 이렇게 음식을 담는 그릇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밥’이나 ‘음식’, ‘먹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食자가 부수로 쓰일 때도 대부분이 ‘음식’이나 먹는 동작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食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모양이 바뀌어 飠자나( )자로 표기된다.(디지털 한자사전 e-한자)

양식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요구되는 먹을거리(창 14:11). 식량. 지식, 사상 등 정신 활동을 하는 데 밑거름이 되는 소양. 성경에는 먹을 양식으로 여러 가지가 소개되는데, 떡(창 18:8; 출 13:6; 요 6:7), 양이나 소의 젖(신 32:14; 삿 4:19; 고전 9:7), 버터(신 32:14; 삼하 17:29), 치즈(삼상 17:18), 각종 과실과 열매(암 8:2), 말린 열매(삼상 25:18), 각종 육류(레 11:3; 삿 6:19; 왕상 4:23), 물고기(마 7:10; 눅 24:42), 기름(신 12:17; 잠 21:17), 채소(민 11:5), 꿀(창 43:11), 메뚜기(마 3:4), 만나와 메추라기(출 16:14-31; 민 11:32), 포도주 등의 각종 음료(삼하 16:2) 등을 언급하고 있다. 성경은 이런 양식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알고(시 136:25; 호 2:8), 일용할 양식 주시기를 기도하며(잠 30:8; 마 6:11), 가난한 이웃과 함께 나눌 것을 명하고 있다(시 132:15). 이와 더불어, 인간에게 매일 요구되는 물질적인 양식뿐 아니라 영적인 양식을 구하고 찾을 것을 명하기도 했다. 영적인 양식이란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자 신령한 음료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6:51; 고전 10:3-4)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욥 23:12; 시 119:103; 렘 15:16; 마 4:4)을 가리키는데, 이 같은 음식은 돈 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로 취할 수 있다(사 55:1-2).(가스펠서브, 양식, 라이프성경사전, 2006.)

개역성경에 "일용할"이란 말을 헬라어 성경에서는 "에피우시스"(επιούσιος)라 기록한다. 이것은 주기도문에만 나타나고 신약 다른 곳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낱말이므로 주기도문의 근본정신과 뜻 안에서 단정적으로 해석하기가 아주 어렵다.

"에피우시우스"(επιούσιος)는 전치사 에피(επι: 위)와 우시아(ούσια: 존재 또는 본질)의 합성어로서 "존재의 필수적 인 것"(necessary for existence)이란 뜻이다. 에피(επι)와 우산(ουσαν = ημεραν: 날)의 합성어로서 "오늘을 위한"(for the current day, today)의 뜻이다. "오늘을 위한 양식"과 존재 즉 "생존에 필요한 양식"이다. 시간에 관해서는 내일이나 종말적인 미래가 아닌 "오늘"로 양식의 내용 및 분령에 관해서는 생존에 필요한 만큼 최소한도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개역성경에 "양식"이란 단어는 헬라어 성경에 "아르토스"(αρτοτ : 양식)로 기록한다. 본문의 "톤 아프톤 헤-몬"(τον αρτον ημωυ)은 문자적으로 우리의 빵(Our Daily Bread)이 무엇을 뜻하는가?

첫째: 육신에 필요한 육적 양식이란 것이다. 칼빈이나 루터는 육적 양시이라는 견해를 가진다. 루터는 이 일용할 양식을 광범위하게 해석했고 "일용할 양식이란 육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인데 즉, 음식과 의복과 가옥과 가정, 전답, 가축, 금전 기타 여러 물건들과 배우자, 자녀들, 일꾼들, 또는 경건하고 진실한 지도자, 훌륭한 정부, 적당한 기후, 평화, 질서, 건강, 명예, 선한 친구, 믿을 만한 이웃 등을 말한다."라고 했다. 여기서 "아르토스"를 우리말 성경에서는 "빵"(bread)으로 번역했다. 이것은 넓은 뜻으로서 식물전체를 말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의식주에 공급되는 물질을 뜻한다. 주기도문의 넷째 간구에서 예수님은 본인 자신이 인간 현실에서 체험하신 바대로 인간의 현실에 깊은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도 육신에 소용되는 양식은 인간의 삶에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필요조건임을 드러내 주셨다.

둘째: 일용할 양식을 예수님의 성만찬으로 해석하기도 한다.(요 6:33-35) 이 양식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의 피와 함께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6:35) 언급되므로 성례(Sacrament)를 위한 기도라고 했고 초대교회에서는 매일 성찬식(Daily Communion)에서 쓰여 지기도 했다. 성례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참된 생명이 됨을 포함하기도 한다.

셋째: 하늘나라의 떡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 되도다 하니"(눅 14:15)라고 기록했는데 메시야가 오시면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큰 잔치를 베푸시는데 이 간구는 메시야 잔치에 참여시켜 주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보았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으로 해석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 할 터이요"(요 6:3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요 6:35)라고 예수님은 자신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셨다. 이 생명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도 해석했다.

이상과 같이 정리해보면 일용할 양식은 육적인 양식, 영적인 양식, 영육간의 양식으로 언급된다. 우리 육신의 양식은 생명을 지속하게 하는 것인데, 생명에는 육신의 생명이 있는 동시에 영의 생명이 있다. 영적양식, 육적양식 이 두 가지는 마땅히 간구할 것이다. 때문에 본문에서의 청원은 좁은 뜻으로는 육신의 양식으로 넓은 뜻으로는 영적 양식을 다 같이 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바른 믿음, http://www.good-faith.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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