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다원주의와 동성애는 예수를 융숭히 영접하는건가

최세창
  • 1260
  • 2021-09-09 20:38:08
(설교 동영상 : 유튜브)

<마태복음 9:9-13>

9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 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10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13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 시작하는 말

꿈이나 환상이나 사물이나 전도를 통해서 주 예수님이 부르시면, 사람들은 네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관심을 갖지 않거나, 배척하거나, 영접하기만 하거나, 융숭히 영접하는 생활을 합니다.
교인들 중에도 예수님을 전 생애와 사후를 맡길 주님으로 믿고 융숭히 영접하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처음 한동안 주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후로는 주 예수님과 무관한 자기의 지정의를 좇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역자들과 신학자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다가 그냥 인간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동성애자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고린도후서 13:5을 보면,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2. 부르신 예수님을 융숭히 영접한 세리 마태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쳐 주신 곳인 가버나움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은 세리인 마태에게 당신을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에, 세리가 회당에 참석을 못하고, 증인 자격이 없고, 돈을 구제금으로 쓰지 못하고, 가족까지 멸시를 받은 이유가 있습니다.
관세의 수입은 조세와 달리, 로마 황제의 국고가 아닌 지방 군주의 금고로 들어갔습니다. 갈릴리에서는 헤롯 안디바스의 금고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관세의 징수는 국가 관리가 아니라, 세금 청부업자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그들은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일 년간의 세금액을 정해서 일정한 지역의 관세를 청부 맡았습니다. 모자라는 금액은 보충해야 했고, 여분은 가질 수 있었으므로 부당하게 세금을 걷거나, 과도하게 세금을 걷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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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이쳐(E. Schweizer)는 “세리들이 버림받은 자들이 된 것은 끊임없이 이방인들과 거래함으로써 스스로를 더럽혔고, 로마인 또는 헤롯에 속한 이들에 의해 고용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금을 걷는 것은 최고의 값을 매긴 세리에게 맡겨졌으므로, 그는 자신의 고용인들, 또는 세리들에게 거의 강제로, 그리고 불명예스럽게 세금을 걷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세리들을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멸시하였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당시의 유대에는, ‘산중에는 사나운 사자가 있고, 거리에는 잔인한 세리가 있다.’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사회 통념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세리인 마태를 사랑하여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부르심을 들은 마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제자가 되기로 결단하고 좇았습니다.
마태는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자기를 제자로 삼아주신 은혜에 감사‧감격하여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융숭한 대접을 했습니다. 마태는 남다른 영적 지각이 있었습니다. 마태는 제자가 된 후에 예수님만 집으로 모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도 오게 해서 잔치를 벌였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속내를 아는 영적 지각이 있는 사람이었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보은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결단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마태는 주 예수님을 떠나 살았던 자신의 옛사람과 옛 생활과 친구들과 헤어지는 송별회를 대대적으로 벌인 것입니다. 큰 잔치를 벌인 마태는,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큰 절의 주지나, 교단의 장이 되기 위해 돈을 쓰는 사람이나, 전‧현직 교장에게 돈을 준 칠판 공장 사장이나, 대통령들이나 고관들 같은 유력한 자들에게 뇌물을 준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주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과 그로 인한 중생과 자유와 평화와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은 은혜도, 감사‧감격하여 주님을 모시고 잔치를 벌일 판이 아닙니까? 그런데 주 예수님의 제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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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주 예수님이 아닌 세상의 그 누구로도, 그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는 구원을 얻었다고 확신할 정도로 믿음이 성장하면 심히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죽으면 지옥이 아닌 천국에 간다고 확신할 정도로 믿음이 성숙하면, 주 예수님은 물론 전도한 사람에게도 더없이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 만한 영적 지각이 있는 기독교인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더 교단과 세상이 신선해지고 밝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인들의 언행, 특히 명예욕이나 물욕이나 교권욕에서 비롯되는 언행을 보면, 주 예수님이 융숭한 대접을 받기는커녕 푸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 예수님이 철저히 무시당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이 임명한 특사가 대통령의 지시는 아랑곳없이 욕심을 위한 언행을 한다면, 대통령을 푸대접하는 것이며 대통령의 지시를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까? 현재 우리의 생활은 주 예수님을 융숭히 영접하는 것입니까, 푸대접하는 것입니까? 주 예수님은 안중에 없는 것이나 아닙니까? 우리 모두 주 예수님의 말씀에 착념하고 순종함으로써, 주 예수님을 융숭히 영접하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세상에 속한 자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로 변화되었고, 세리에서 주 예수님의 제자로 변화된 마태가 큰 잔치를 벌인 더 큰 목적이 있습니다. 주 예수님과 제자들, 세리들과 죄인들을 대접하는 것보다 더 큰 목적은, 세리들과 죄인들로 하여금 주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복음 선교이었습니다. 세리들과 죄인들을 비롯해서 모여든 많은 사람들 중에는 초대는 안 받았지만, 예수님의 기적과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 때문에, 혹은 호기심 때문에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 꼬투리를 잡기 위해서 온 유대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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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리새인들의 힐난과 예수님의 답변

동방에서 식탁이란 가장 가까운 교제의 장소로 간주됐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에 버림받은 사람들과 식탁을 같이한 예수님의 행동은, 그릇된 전통과 관습에 대한 혁명적인 도전인 동시에 모든 사람에 대한 차별 없는 사랑을 드러내신 사건이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행동은 이내 지도층인 바리새인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광경을 본 바리새인들은 감히 예수님께 직접 힐문하지 못하고,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라고 힐문했습니다. 이 힐문은 복선이 깔린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스승인 예수님이 율법을 범하는 것을 일깨워 줌으로써, 예수님께 대한 충성심과 존경심이 손상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활한 이간질입니다. 그 사회와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초법적인 사랑과 아름다운 보은도 비방 거리요, 이간질 거리에 불과했습니다. 율법 곧 구약성경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그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기는커녕, 하나님의 약속대로 오신 구주이심을 깨달을 영적 지각이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교활한 이간질과 비방을 간파하신 예수님은 이간질과 비방을 하시지 않고, 그들이 깨닫고 회개하고 믿어 구원받도록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다는 것입니다. 또, 노골적으로, 당신이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와 “의인”은 바리새인들을 풍자한 것이고, “병든 자”와 “죄인”은 세리와 죄인들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실제로 영‧육이 강건하기 때문에 건강한 자라고 하신 것도 아니고, 의롭기 때문에 의인이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다만 바리새인들 스스로가 건강한 자이며, 의인이라고 자만하는 것에 대해 풍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 행위로 구원받고도 남는다는 자만심을 가진 바리새인들에게, 호세아 6:6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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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의 헬라어 엘레온(ἔλεον)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도움을 베푸는 감정이 실제적 행위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비로운’, ‘인자한’, ‘사랑스러운’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사”의 헬라어 튀시안(θυσίαν)은 제사장이 백성에게서 넘겨받아 드리던 제물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제사 또는 예배를 의미하는 제유법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실상 구약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외적이며 형식적인 제사가 아니라, 기도와 찬양과 감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는 것,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교인들은 영적이며 정신적인 면뿐만 아니라, 생활 자체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 곧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12:1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했습니다. 모여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연장선인 거룩한 산 예배가 되는 생활이, 주 예수님을 융숭히 영접하는 것입니다.

4.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주 예수님을 전 생애와 사후를 맡길 주님으로 믿고, 융숭히 영접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교인들과 교역자들 중에는, 주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주 예수님과 무관한 자기의 지정의를 좇아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주 예수님을 영접한 후, 자기 본위나 자기 위주의 생활을 하다가, 필요할 때만 주 예수님을 찾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역자들과 신학자들은 예수님을 주로 영접했다가, 그냥 인간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동성애자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 예수님을 따르는 삶으로 주 예수님을 더욱더 융숭히 영접해야 합니다.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들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8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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