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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혐오 금지를 위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교회의 과제 / 우삼열 목사"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김경환
- 1346
- 2021-09-28 23:37:03
차별금지법과 감리회의 전망 제4차 세미나 발표글인 우삼열 목사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차별, 혐오 금지를 위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교회의 과제
우삼열(목사,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
지난 2017년부터 2018년 기간 동안 충청남도에서는 충남인권조례에 대한 격렬한 논쟁과 함께 인권조례가 폐지되었다가 다시 제정되는 초유의 사건이 있었다. 폐지운동 단체들의 주장을 간단히 말하면,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옹호하고 이슬람을 조장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인권조례’ 폐지 후 ‘인권기본조례’로 더욱 위상을 높여 다시 제정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행정력의 낭비와 함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어려움을 겪었던 반면에 지역사회에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와 의제가 더욱 확고히 뿌리내리는 긍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당시를 되짚는 이유는, 개신교를 기반으로 한 여러 단체들이 지자체의 인권조례뿐만 아니라 학생인권조례, 국가인권위원회법, 국가인권기본계획(인권NAP) 등 다양한 형태의 인권체계를 무력화하고자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져있듯, 이러한 활동의 기저에는 성소수자와 이슬람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자리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이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이루어온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인권조례 등이 가진 가치와 규범이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주장에 대해, 그리고 차별과 혐오 행위가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라는 주장에 대해 우리 사회가 명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의 근거도 없지 않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명확한 결정으로 그 기준을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시대적 가치와 자신의 역할을 올바로 분별해야 할 것이다.
1. 인권조례에 대한 헌법소원 제기
먼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잠시 살펴보면, 이 조례는 2011년에 제정되었으며 주요 내용으로 두발·복장의 자유, 휴대전화 수거·체벌·강제 야간자율학습 금지 등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조례의 제5조 1항은 학생의 성별, 종교, 나이 뿐 아니라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같은 조 3항은 '학교의 설립자·경영자, 학교의 장과 교직원, 그리고 학생은 제1항에서 예시한 사유를 이유로 차별적 언사나 행동, 혐오적 표현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신교에 기반한 단체들은 이 조례의 내용 중에서 특히 ‘성적 지향’, ‘성적 정체성’ 문구가 담긴 것을 강력히 문제삼았다.
2017년 서울디지텍고등학교의 이사장과 교사, 학생, 학부모들이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다.(2017헌마1356) 이들은 이 조례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으며, 조례 제정을 규정한 상위법이 없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특히 이들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5조 3항 등은 행복추구권과 양심의 자유, 학문의 자유, 교육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2.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 합헌 결정
2019년 11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이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의 의견으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헌법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헌재는 “해당 조항은 (혐오)표현의 대상이 되는 학교 구성원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학생이 민주시민으로서의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하며 인권의식을 함양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1) 인권조례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
헌법소원 청구인들은 헌법소원에서 조례 5조 3항을 문제삼았다. 이 조항은 학교의 장과 교직원 및 학생들이 성별이나 종교,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적 언사나 혐오적 표현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이 규정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차별적 언사나 행동, 혐오적 표현은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적대감을 담고 있는 것으로 그 자체로 개인이나 소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특정 집단의 가치를 부정한다”면서 “차별·혐오 표현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될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남기게 돼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차별·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인간의 존엄성 보장 측면에서 긴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차별과 혐오행위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2) 인권조례는 상위법의 근거가 없으므로 무효?
헌법소원 청구인들은 학생인권조례를 상위 법령 없이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정한 것은 법률유보원칙(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사항은 국회 의결을 거친 법률로써 규정해야 한다는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헌법과 법률, 국제협약 등 세 가지에 근거하여 인권조례를 제정할 수 있으며, 이 학생인권조례의 경우 이러한 “규정과 선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범화하여 마련한 학교 운영 기준 중 하나”라고 판단했다. 이미 헌법과 국제협약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별도의 법률 제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권조례를 비판해온 단체들은 지자체 인권조례, 학생 인권조례 등 다양한 형태의 인권조례들에 대해 공격할 때마다 ‘인권조례를 제정하도록 하는 상위법 규정이 없어 인권조례 제정 자체가 원인무효’라는 주장을 계속해 왔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을 통해 인권조례가 법률유보원칙에 위배되지 않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인권조례의 정당성을 분명히 했다.
3.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미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헌법소원의 결과는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첫째,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드러내며 차별행위를 정당화해온 세력들의 주장과 논리에 대해 사실상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이들의 주장이 통할 수 없는 결정적인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 결정은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해온 세력의 요구에 대해 우리 사회가 귀담아들을 이유가 없음을 밝힌 역사적인 판결이라 하겠다.
둘째, 이 결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가 법률로써 금지되어야 한다는 당위가 명확하게 성립되었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을 통해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차별·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인간의 존엄성 보장 측면에서 긴요하다”고 밝혔다. ‘긴요하다’는 말은 사전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즉, 이 결정문은 ‘차별과 혐오의 금지’가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법 제정을 통해 실효성을 가져야 한다. 법적 이행력을 갖추지 못하면 헌법의 정신은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차별금지의 내용을 담은 법률 제정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밝힌 셈이다. 그리고 국회를 향해 빨리 차별금지법을 만들라는 강력한 의미를 보이고 있음에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헌법소원의 결과가 사회적으로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차별금지법 제정의 정당성과 필요성도 지금까지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차별과 혐오가 차별금지법 제정의 법적 정당성과 논리적 근거가 명확히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부디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차별금지법이 제정됨으로써 차별과 혐오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기를 바란다.
4. 차별 금지를 위한 교회의 과제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를 다시 읽어본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이렇듯 헌법에 명시된 차별 금지의 원칙은 이미 우리사회가 가진 핵심 가치임에 분명하다. 교회 구성원도 우리 사회의 일부이므로 모두가 나서서 헌법의 정신을 지켜야 할 것이다.
특히, 차별은 타인에 대한 폭력행위이다. 개인이나 소수자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종차별은 UN이 규정한 범죄행위이다.
이제 헌법재판소와 국제사회의 인권 기준에 대해 한국 교회가 진지하게 숙고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되었다. 시대의 가치에 부합하며 모든 인간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통해 시대의 희망이 되길 바란다. 차별과 혐오를 없애는 일에 한국교회가 하루 속히 팔을 걷고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