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푯대를 향해 좇아가자
최세창
- 1175
- 2021-09-28 20:37:58
<빌립보서 3:10-16>
10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5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1. 시작하는 말
세계 역사상 제일가는 대가도 자기 분야의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합니다. 어떤 대가나 전문가도 자기 분야의 바닥이 어디인지, 그 모든 내용이 무엇인지, 그 정점이 어디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공부하고 수련한 전문가나 대가라면, 도저히 교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탐구와 수련에 정진하느라 교만을 부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보통 사람들이 이해는커녕,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지의 말을 들으면서 교만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상식 수준보다 좀 나은, 어쭙잖은 지식이나 실력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야 교만할 수 있고, 정진하는 대신에 자만심에 도취될 수 있는 것입니다.
2. 푯대를 향해 좇아가는 바울 사도
바울 사도는 서구 문화의 이대 주류인 헬라 사상과 히브리 사상에 능통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의 은사와 능력까지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중생과 자유와 평화와 영생의 구원을 얻게 하는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가장 놀라운 업적을 남긴 대가였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 자신은 이미 얻은 것도 아니고,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라, 푯대를 향해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절대적 우월성과 절대적 가치는 알았지만, 온전히 얻거나 온전히 이룬 것이 아니라 그 푯대를 향해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머리로 그리스도를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른 말씀 순종을 통해 체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성적 이해가 아니라, 성령의 감화나 감동으로 인한 영적 지각으로 깨달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첫째,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을 아는 영적 지식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힘이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깨닫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이시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를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첫째 의의는, 그리스도 곧 구세주라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재확증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둘째 의의는, 죄와 죽음과 영원한 멸망으로부터의 구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셋째 의의는, 믿는 우리가 장차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살 영생의 소망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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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우리의 영생에 대한 소망은 단순히 미래에 성취될 것이 아니라,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이미 현실적으로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5:11 이하를 보면,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때부터 부활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고, 또한 모든 선교의 핵심이었습니다.
둘째,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힘입은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함을 아는 것입니다. 이 지식을 얻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제물이 되신 죽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에 대하여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물론, 아예 죄와 단절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기 위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부활 소망을 이루려면, 반드시 십자가의 고난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십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을 가리켜, 푯대를 향해 끊임없이 좇아가는 불완전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은 매우 고귀한 영성을 달성했거나 공덕을 세운 것에 대해 자만하거나, 그런 착각에 빠져 자만하는 이들을 나무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회나 종교계나 단체에서 ‘내가 장(長)이 되어야만 한다. 내가 장(長)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이 말씀을 통해 각성해야만 합니다. 혹은, ‘누가 장(長)이 되어야만 한다. 누가 장(長)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선전하는 사람들도 각성해야 합니다. 이런 신념과 선전은 불화와 내분과 다툼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우리 돈, 우리 학연, 우리 쪽파나 우리 양파가 장(長)이 되어야만 한다고 하는 게 더 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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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입니다. 아무리 잘난 교역자라도, 너 나 할 것 없이, 푯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이미 다 얻은 교역자도 없고, 온전히 이룬 교역자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하나님께서 정해 주시는 푯대를 모르거나 잊어버리면 결국 파멸하게 됩니다. 일반 사회나 공직 사회나 종단의 장(長)이 장(長)이라는 푯대에 이른 후에 긴장이 풀린 탓인지, 아니면 전부터 행한 버릇이었는지는 모르겠나, 동성이나 이성을 상대로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하다가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역사상 가장 놀라운 업적을 남긴, 가장 위대한 인물인 바울 사도가 한 고백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예수 그리스도께 붙잡혀서 사도가 되었지만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절대적으로 가치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와 부활인 복음을 체득하는 지식을 이미 다 얻은 것도 아니고, 온전히 이루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푯대를 향해 계속 좇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절대적으로 중대한 일에 온 영과 전심전력을 다하여 좇아가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한눈팔 수 없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래, 그렇게 주부노릇을 하는 것이, 나와 복음의 푯대를 좇아가는 것이다. 그래, 그렇게 공부하는 것이,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푯대를 좇아가는 것이다. 그래, 그렇게 업무 수행을 하는 것이, 복음에 합당하게 산 자가 받는 상의 푯대를 좇아가는 것이다.’라고 하시는 칭찬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도가 자신은 결코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한 고백은 우리에게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모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믿음의 생애에 대해서, 오직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구원하여 맡기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붙잡아서, 사도로 삼으신 목적과 계획이 있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또한, 그 목적과 계획이야말로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서 추구해야 하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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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계속해서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클레이(W. Barclay)는 “사람은 누구나 어떤 목적으로 그리스도께 붙잡혀 있다.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꿈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붙잡아 주신 목적과 계획을 붙잡고 실현하기 위하여 전 생애를 통해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반복하여,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라고 했습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는, 바울이 바리새인 또는 랍비로서 행한 일과 교회를 핍박한 일 등의 모든 일과 사도가 되어 성취한 이전의 모든 업적을 의도적으로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공을 우려먹으며 살려고 하기 때문에, 혹은 과거의 실패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의 보다 더 나은 성취와 믿음의 성장 기회를 상실해 버려서는 안 됩니다. 과거를 의도적으로 잊어버리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인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야 합니다. 칼 바르트(K. Barth)는 “위에서 부르신 부름 속에는 과제와 보상이 내포되어 있다.”라고 주석했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온전히 이룬 자들”의 헬라어 텔레이오이(τέλειοι)는 ‘성숙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성숙한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와 부활인 복음을 이미 다 체득하거나 온전히 이룬 것이 아니므로, 계속 부름의 상인 푯대를 위해 좇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깨우쳐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같은 푯대를 향해 좇아가고 있을지라도, 그 진행 정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그대로 같은 푯대를 향해 계속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들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8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다수의 논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