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설교에 대한 적대적 반응 cf. 강단의 오염

최세창
  • 1197
  • 2021-10-05 03:02:01
(설교 동영상 : 유튜브)

<사도행전 4:1-4>

1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3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4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1. 시작하는 말

외부의 박해와 코로나와 교회 내의 문제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한국 교회는, 한때 세계 교회가 주시할 정도로 눈부신 외형적 부흥과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런 부흥과 발전의 주된 원인은 복음이라기보다는, 기복 메시지와 적극적 사고방식과 전도의 열정이었습니다.
한국 교회가 눈부신 외형적 부흥과 발전을 이룬 때보다 더 눈부신 부흥과 발전을 이룬 때는, 주님이 부활‧승천하신 후에 성령으로 충만해진 사도들이 활약하던 초대 교회 때였습니다. 초대 교회가 민관의 박해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그토록 놀라운 부흥과 발전을 이룬 주된 원인은 순교를 불사하고 전한 복음인 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였습니다.

2. 사도들의 복음 설교에 대한 적대적 반응

사도들이 유대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렀고, 주 예수님을 들어 부활의 도를 전파하는 것을 싫어하여 체포했습니다. “싫어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디아포누메노이(διαπονούμενοι)는 ‘격노하여’라는 뜻입니다.
사도들의 말은 유대만을 위해서 무력으로 온 세상을 정복하여 통치하는 군사적이며 정치적이며 현실적인 영광의 메시아관을 가진 유대의 민관에게 영합하는 설교가 아니었습니다. 주 예수님을 믿어야 만사가 잘되는 복을 받는다는 기복 설교도 아니었습니다. 적극적 사고와 긍정적 사고를 해야 성공도 하고, 출세도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강연도 아니었습니다. 인간적이며 세상적인 자기 자랑, 혹은 자기가 교회를 부흥시켰다는 자기 자랑, 혹은 기적의 은사와 능력을 행한다는 자기 자랑을 하느라 주 예수님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줄도 모르는 자기선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좇아 오신 독생자 주 예수님이 아닌, 유대교나 다른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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떤 종교를 믿어도 구원을 얻는다는 억설도 아니었습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선과 악, 옳고 그름이 뒤바뀌는 양심 행위나 선행으로 구원받는다는 윤리 강연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주가 아닌, 인간이나 동성애자라고 하는 폄하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어용 발언도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의 말은 창조주요 섭리자요 구원자요 심판자요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약속대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 제물이 되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복음 설교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자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과 중생과 자유와 평화와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복음 설교였습니다.
사도들의 복음 설교가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서 행해져야만 합니다. 여기저기서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들 하고, 개혁되어야 할 문제점들을 열거하기도 하고,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사람들마다 원인 진단이 다르고, 처방이 달라서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기도와 말씀에 착념하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빌립보서 1:27 이하를 보면,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복음에 합당하게 살지 않고, 세속주의와 대세를 좇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강단의 오염입니다. 오염된 강단이 변해야 합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강단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온 교회가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태복음 16:24을 보면, “이에 예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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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수제자인 베드로가 주 예수의 대속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인 메시아 왕국에서의 벼슬과 부귀영화에 대한 욕망 때문에 예수님을 붙들고, 십자가를 지시지 말라고 간했을 때에 하신 것입니다.
그랬던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만난 후에, 목숨을 걸고 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외치는 사도로 변화된 겁니다. 베드로는 복음 선교의 삶을 살다가 순교까지 했습니다.
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도와 주석서와 성서 사전과 신학서와 설교집 등을 통해서, 복음을 깊이 있게 깨닫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설령 깨닫고 설교한다고 해도, 자기 마음에 맞는 소리를 원하는 교인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디모데후서 4:3 이하를 보면,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라고 했습니다. “귀가 가려워서”의 헬라어 크네토메노이 텐 아코엔(κνηθόμενοι τὴν ἀκοήν)은 ‘새로운 것을 알고 싶어서 못 견디는 욕망’, ‘흥미롭고 그럴싸한 하찮은 정보를 갈구하는 호기심’ 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설교를 들은 교권자들의 반응은, 매우 적대적이었습니다. 교권자인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체포했습니다.
첫째, 제사장들은 레위인들 중에서 선택되었습니다. 시내산에서, 유대인들을 위한 성소 봉사에 관한 율법이 전해졌습니다. 그 시대의 가장 문화적인 국민에 의한 순수한 예배 형식이 행해졌는데, 그 거룩한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권위와 위엄을 보이는 자인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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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필요했습니다. 그 때문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에 임명되었고, 특별한 율법적 하자가 없는 한 세습되었습니다. 그러나 후대에까지 그대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유대가 망했을 때에는, 이방인 통치자가 뇌물을 많이 바치는 사람을 대제사장이나 제사장으로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대제사장과 차석 제사장과 평제사장의 주된 임무는 세 가지이었습니다. 성소와 제단에 봉사하는 일과 율법을 백성에게 가르치는 일과 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묻는 일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소송을 취급하고, 전쟁시에는 양각 나팔을 불고, 언약궤를 메고, 나환자를 식별하는 임무가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때의 대제사장을 비롯한 제사장들은, 성경적 의미의 제사장이라고 하기 어려운 문제와 병폐를 안고 있었습니다.
둘째, “성전 맡은 자”의 “맡은 자”는 헬라어로 스트라테고스(στρατηγὸς)로 ‘수위 대장’, ‘로마의 치안관’, ‘군관’, ‘판사’ 등을 의미했습니다. 여기의 “성전 맡은 자”는 ‘성전 수위 대장’, 또는 ‘성전 경호 대장’이며, 대제사장의 오른팔이었습니다. 제사장들 중에서 임명되었다고 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셋째, 사두개인들(Σαδδουκαίοι)은 대개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및 다른 지도층의 단체를 구성하는 귀족 계급이었습니다. 역사가인 요세푸스(Josephus)는 “헤롯 대왕이 아나넬(Ananel)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한 때부터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때까지의 107년 동안에 28명의 대제사장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난 벤 하난(Hanan ben hanan)만이 사두개인이었다. 그나마 그도 불과 3개월밖에 시무하지 못했다.”라고 했습니다.
당시의 사두개인들은 수적으로 바리새인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역사가인 요세푸스(Josephus)는 사두개인들은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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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들이었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높은 지위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바클레이(W. Barclay)는 “사두개인들은 제사장적 귀족 계급이었고 부호였다.…부호들이며 귀족적인 당파들이었으므로, 평온과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적에 대해서도 자연히 협력자가 되었다.”라고 주석했습니다. 웨셀(W. W. Wessel)은 “사두개인들은 대중의 인기를 얻지 못했으며,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하자 그들 역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버렸다.”라고 주석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성문화된 성경만을 받아들였으며, 모세 오경을 다른 모든 것보다 더 중시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귀중하게 여기는 많은 구전 율법이나 관습이나 규칙이나 규정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영생을 믿지 않았고, 영혼과 천사, 영적 존재도 믿지 않았습니다. 또, 그들은 부활의 교리가 아주 후대의 성경에만 나오고, 초기 성경에는 나오지 않으므로 사후의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에 더러는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하나, 그 영혼은 육체와 함께 소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제사장들과 성전 경호 대장과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이 백성들을 가르치는 것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를 전하는 것에 ‘격노하여’ 체포했습니다. 그때는 하루가 끝나는 제12시 곧 현재의 오후 6시경이었으므로, 아침에 열리는 재판을 위해 베드로와 요한을 이튿날까지 가뒀습니다. 그러나 교권과 정치권력까지 가진 그들이었지만 복음을 가둘 수는 없었습니다. 복음 설교를 들은 사람 중에는, 믿는 사람이 남자만도 약 오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 설교를 얼마나 청종합니까?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고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여 고문하고, 감옥에 가두고, 죽이는 교권자들과 정치 권력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가둘 수는 없습니다. 이 복음만이 한국 교회의 문제와 병폐를 해결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할 것입니다.
귀에 듣기 좋은 설교를 원하는 사람들과 권력자들의 반대와 박해와 조롱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고 전하는 믿음의 위인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주 예수님을 믿어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중생과 자유와 평화와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보은의 심정과 사랑으로, 복음 선교의 삶을 사는 복음의 역군이 되시기 바랍니다.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들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8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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