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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도성 시온/이계준목사(연세대 명예교수)
유삼봉
- 1199
- 2021-10-04 14:07:22
시온교회 창립 70주년 기념 설교 2021년 10월 3일
1. 시온교회 창립 7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는 동시에 하느님의 은총 가운데 이 교회가 더욱 발전하여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창립 60주년 기념 예배에 이어 이번 70주년에도 참석하여 사랑하는 교우와 하객 여러분 함께 축하드리고 은혜를 나누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욕심이지만 10년 후 창립 80주년 때 제 나이가 백수이지만 말석이나 차지할 수 있다면 큰 영광이겠습니다.
1951년 부산 김원순 장로 댁에서 개척 예배를 드린 다음 초량동에 천막교회를 세울 때 계시던 분들 가운데 생존하시는 분은 제가 아는 한 한 목사 사모님과 황영숙 장로님뿐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개척 당시부터 1957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군목으로 입대하기까지 교회학교 및 중고등부 교사, 반주자, 청년회 회장, 심지어 청소부로 열심히 봉사하였습니다.
그때는 가난한 학생들은 많고 교회 재정은 빈약하여 장학금 제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헌신적인 봉사는 신앙의 본질을 깨닫고 크리스천 정체성을 찾는 계기가 되었으므로 시온교회는 제 신앙의 모태이고 지난 긴 세월 동안 시온의 기쁨과 아픔이 곧 나의 기쁨이고 아픔이었습니다.
70주년 설교 부탁을 받고 혹시 시온교회와 관련된 원고가 있는지 찾다가 60주년 설교원고를 발견하였습니다. 아내에게 옛 원고가 있다고 하였더니 그것을 다시 해도 무방할 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말씀을 새롭게 준비하였습니다.
2. 아시는 대로 개척 당시 이 교회의 이름은 ”평양교회“이었습니다. 주로 평양에서 피난 온 교우들이 대부분이었고 고향을 그리며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소망이 그 이름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감리교 본부 전도국 국장이신 고 마경일 목사께서 ”시온교회“라는 명칭을 제안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 그발 강가에서 시온 곧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그리던 신앙을 지향한다는 뜻일 겁니다.
시온이란 본래 예루살렘에 있는 작은 산의 이름이었습니다. 그것은 군사적 요충지로써 처음에는 여부스족의 성곽이었으나(삼하5:6-9) 다윗이 빼앗아 따윗성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법궤를 시온 산으로 옮겼을 때 이 산을 거룩하게 여겼습니다.(삼하6:10-12) 나중에 솔로몬이 법궤를 모리아산 가까이 있는 성전으로 옮겼을 때는 그 성전을 시온이라고 하였습니다.(사 8:18) 뿐만 아니라 시온이란 이름은 예루살렘과 유대인 회중 또는 나라의 대명사가 되기도 하였고 신약성서에 와서는 시온이 하늘의 도성(히12:22)을 상징하는 데까지 진화하고 발전하였습니다.
이렇듯 시온이란 이름의 변천사는 마치 시온교회가 탄생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한 과정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1951년 부산 초량동 경남여고 뒷담에 인접한 채소밭에 천막을 세우고 개척한 교회가 염리동 목재 예배당으로 옮겼습니다. 1953년 서울 수복과 함께 장사동 옛 일본사찰이었던 중앙신학교 강당을 빌려 예배를 드렸고 그다음 신당동 마사회 창고를 리모델링한 예배당과 그 자리에 신축한 별돌 예배당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999년에 이 서초동 성전으로 이전하면서 진화과정은 일단락되었다고 하겠습니다.
3. 그러나 시온이란 이름이 산과 요새에서 하느님의 도성이란 이름으로 발전하였다는 것은 창립 70주년을 맞이하는 시온교회에 주는 의미와 사명이 자못 크다고 생각되어 이 시간 말씀의 제목을 “하느님의 도성 시온”이라고 정하였습니다.
첫째로 하느님의 도성 시온은 세속적인 요충지나 심지어 법궤를 모신 지성소란 공간적인 개념을 넘어서 ‘하느님이 설계하시고 세우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시를 말한다는 것입니다.’(히11:10) 이것은 이스라엘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라 갈 곳을 모르고 고향을 떠났을 때 평생 나그네처럼 정착하지 아니하고 계속 순례한 종착역 곧 하느님이 약속하신 미래의 도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시온교회를 창립한 한승호 목사님과 안상현 전도사님을 비롯한 모든 시온의 개척자들은 민족상잔의 비극 가운데 공산 독재의 억압과 죽음의 지옥이 된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갈 곳을 모르고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남쪽으로 가다가 도달한 곳이 이 땅의 끝자락인 제주도였습니다. 지금 제주도는 관광의 명소이지만 당시는 피난민의 구원 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온의 조상들은 그곳에 머물거나 안착하지 아니하고 다시금 하느님의 도성을 향하여 계속 순례하였습니다. 그 결과 시온 공동체는 천막에서 시작하여 여러 곳을 거쳐 오늘의 이 아름답고 부족함이 없는 성전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성전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도성으로 알고 여기에 정착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시온의 공간적 이동은 나그네 신앙의 상징이므로 한 곳에 머물거나 고착되는 현상유지와 퇴화의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 예루살렘을 향해 끊임없이 행진하는 순례자의 동적인 신앙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에집트를 떠나 광야로 나아갈 때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따라 자유를 향해 전진한 것과 같이 시온 공동체는 하느님께서 날마다 값없이 주시는 싱그럽고 신령한 은혜를 힘입어 영원한 도성을 향해 계속 전진하고 진화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맛을 잃은 것은 권력과 금력이란 세속주의에 물들고 현상유지에 급급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를 악용하는 권력의 술책과 교회의 무기력은 앞으로 교회의 존재와 목적을 더욱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교회를 말살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을까 심히 염려됩니다.
이제 우리 시온의 백성들은 먼저 하느님의 도성을 향해 순례하는 전통을 이어받아 영원한 나그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온전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갖추는 데까지 나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현존한다’는 그리스도 중심적 신앙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깨어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우리의 존재와 소유를 하느님께 맡길 때 우리는 진정 하느님의 도성, 새 예루살렘의 시민으로 초대받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하느님의 도성 시온은 하느님께서 설계하신 미래의 도시인 동시에 하느님께서 지금 여기에 임재하시는 거룩한 곳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여러분이 나아가서 이른 곳은 시온 산 곧 살아계신 하느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다.‘(히12:22)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도성은 환상이나 유토피아가 아니라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가사처럼 ”우리 주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신앙을 힘입어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고 영원한 생명을 만끽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과 가정, 교회와 사회 그리고 세계와 우주 전체가 곧 하느님의 지배 아래 사랑과 정의, 자유와 평화가 충만한 새 예루살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고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몸소 막강한 로마 권력에 대항하여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실현하다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은 시온 공동체는 예수의 역사적 사명을 계승하고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에 구현하며 이에 대한 보상으로 따라오는 우리의 십자가를 몸소 지고 오늘의 골고다로 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온교회의 신앙전통은 영국의 정치적, 종교적 박해를 등지고 오늘의 신대륙을 건설한 청교도와 같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북한 독재의 억압과 위협에서 벗어나 자유의 나라를 찾아온 실향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서 무위도식하지 않고 시민으로서 어떤 미국학자의 말대로 ’한국이 기독교 신앙과 자유민주주의 및 시장경제가 융합된 아시아의 유일한 선진국이 되는 데 적극 힘썼던 것입니다.
‘하늘의 시민인 동시에 이 땅의 시민인’ 한국교회는 지금 두 가지 시대적 및 역사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난 70년 동안 우리가 쌓아 올린 신앙과 자유의 금자탑이 왜곡된 이념과 파괴적 집단으로 인해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분신인 북한 동포들이 3대 독재로 인해 전대미문의 굶주림과 박해과 죽음에 직면하여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온 공동체는 먼저 옛날 가난과 절망 가운데 품었던 하느님 절대 신앙의 전통과 역경 중에서도 서로 나누고 돕고 위로하던 사랑의 공동체를 회복하고 강화하므로 스스로 하느님 나라의 향연을 즐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저력을 힘입어서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 가운데 정의사회의 구현과 북한 동포들을 구원하고 남북의 통일을 이루는 동시에 온 인류가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놀라운 역사의 발원지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마지않으며 말씀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