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옴] 전광훈 목사님과 김용민 전도사님

임채엽
  • 1624
  • 2021-10-04 01:35:07
오늘은 이 두 분의,
꼭 닮은 목회자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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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어디 그 ‘분’을 그 ‘놈’이랑 비교하냐? 라는 이야기가 양측에서 나타날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두 목회자 중 한 분은 아주 위대한 분이고, 한 분은 아주 사악한, 차마 목회자라고,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서도 안 되는, 어쩌면 구원도 못 받았을 분이라고 믿으시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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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 목회자는 꼭 닮았습니다. 닮은 정도가 아니라, 영적으로 쌍둥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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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복음보다 정치적인 메시지로 훨씬 더 유명합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정권에게 나름의 탄압을 받았습니다. 또한 아주 거칠고 극단적인 어휘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리고 각자 섬기는 성도의 몇 백배가 되는, 수백만의 정치적 팬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또한 두 분 다 국회의원 선거 출마나 정당 창립 등으로 현실 정치를 위한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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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장 큰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공통점이 두 분의 인생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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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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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전도사님은 나꼼수 시절, ‘목사아들 돼지’의 컨셉으로, 성경이나 찬송가를 음란하게, 혹은 야비하게 패러디해서 정적들을 공격해서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 정치적인 내용들보다, 성도로서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패러디의 소재로 삼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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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선거 패배 후, 대체로 본인에게 적대 세력이며 실망스러운 개신교에 대해 ‘개종할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는 성명을 냄으로, 나름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는 했습니다. 그 후 실제로 신학을 하고 전도사가 되어 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목사 안수를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도, 당시의 언행에 대해 공식적으로 회개한 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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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목사님은 이전부터 여러 가지 음란하고 극단적인 발언으로 종종 물의를 일으켰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하나님 까불지마, 까불면 나한테 죽어’ 사건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 까불지마. 가 와전된 것이라 하는데, 실제 설교 무편집 영상을 들어보시면, 앞뒤 맥락상 하나님에게 까불지 마시라고 한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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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공개 사과를 하셨는데, ‘조직신학적으로는 잘못된 말이겠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친구‘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는 조직신학적으로 문제가 되었겠느냐?’ 라는 해명 구절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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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지점에서,
무엇이 정말로 잘못된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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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은 하나님의 아들 됨을, 한분은 하나님의 친구 됨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진정한 '경외함', 즉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나름 친밀히 여기지만, 그것은 '경외함이 없는 친밀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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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0장 7절 말씀에,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또한 시편 25장 14절에서는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라고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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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죄인’, ‘티끌과 같은 자’, ‘무익한 종’이라고 부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신부’라고, ‘자녀’라고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경외함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친밀함으로 대해 주시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 반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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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외가 없는 친밀함을 ‘방자함’이라고 부릅니다. 성경 말씀은 묵시(계시)가 없을 때, 사람들은 방자해 진다고 이야기합니다.(잠 29:18) 즉, 가장 신령해 보이는 이들이라도, 하나님에 대해서 방자함이 나온다면 그의 카리스마는 결코 주님으로부터 온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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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전광훈 목사님과 김용민 전도사님은, 정치가로서는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목회자, 아니 성도로서는 함량 미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것을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입 밖에 냄으로서 제 3 계명을 어겼으며, 이는 잠언 29장 18절에 근거하여, ‘묵시’가 없었기에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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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두 분은, 공통적으로 한국교회의 현 상황을 적나라하게 반영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이 없는 세대의 대표주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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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는 일렉기타의 신(神)이야.”,
“치느님(치킨 + 하나님)을 영접하자.”,
“고기는 사랑입니다.”,
“햄버거에 감자튀김에 콜라, 완전 삼위일체인데?”, “주(酒)님을 만납시다.”,
“아무개는 너무 예뻐, 여신이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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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들도, 약간 더 Cool하게 보이기 위해 하나님에게만, 왕에게만 쓰이는 말들이 성도들의 입에서 쉽게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에서조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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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세대가, 자기들은 전광훈 목사님이나 김용민 전도사님의 신성모독에는 무감각 하면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대통령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니 친구냐? 아무개 대통령 님이라고 불러야지!” 라고 합니다. 같은 왕을 섬기는 성도로서보다, 종교가 다르더라도 같은 보수냐, 같은 진보냐로 더 말이 잘 통하고 뭉쳐지는 안타까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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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가 비록 이방인에 이교도라도 나아만처럼 은총을 입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는, 그가 비록 엘리야와 엘리사의 후계자가 되었을, 최고의 선지자 생도라도 게하시처럼 멸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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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사도께서는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셨습니다. 그 로마서의 기나긴 안부 인사에서도, ‘아무개우스를 지지하고 그에게 표를 주라.’ 같은 구절이 하나도 없습니다. 본인도 로마시민권자셨고, 수신자의 대부분이 투표권을 지닌 로마시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만일 그리하셨더라면, 원로원 몇 석은 얻을 수 있었을 것이고 박해도 조금 더 피할 수 있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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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어 바울사도께서는 로마서 전반을 통해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원,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열방으로 전해져야 할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영원한 왕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로마서는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성도들에게 경건과 순결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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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가의 명예를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싸우면서 하나님의 명예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 될 바에야 차라리 탈정치를 하는 게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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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혹은 김용민)이 잘못은 했지만, 그래도 문재인(혹은 박근혜)를 제거할 때 까지는 하나님께서 쓰시지 않겠냐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메시지의 본질을 보라고. 나름 거칠지만, 그가 이 시대 한국과 교회를 향한 선지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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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그가 혹시 선지자였을지라도, 경외함을 잃을 때엔 바로 게하시가 됩니다. 무엇이 본질입니까? 그리고 성도들에게 본질이란 누구누구의 대통령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 되심이 본질입니다. 왕 되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사회에 임하면 사회적 정의가 실현될 것이고, 왕 되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교회에 임하면 부흥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늘의 왕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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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명예를 떨어뜨림으로서 보수가 정치적인 이득을 얻을 바에야,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게 낫습니다. 주님을 망령되이 일컬음으로 진보가 정치적인 이득을 얻을 바에야,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게 낫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막말과 조롱으로 국가가 강성하고 교회가 부흥하느니, 차라리 믿음의 선배들이 이겨냈던 박해 속에서 정화된 새로운 교회가 탄생하는 게 낫습니다. 우리 주님은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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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교회는 둘로 갈라져 있습니다.
전광훈 목사의 보수 교회와 김용민 전도사의 진보 교회가 아니라
전광훈&김용민의 경외함 없는 교회와 아직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 교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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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외함이 다시 샘솟는 한국 교회되기를.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오직 아버지께만 영원히 있기를.

[출처] 네이버블로그 <원정하 목사 이야기>
https://m.blog.naver.com/nazirite33/222524178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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