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최세창
  • 1226
  • 2021-10-23 19:39:28
(설교 동영상: 유튜브)

(빌립보서 1:19-26)

19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22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24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1. 시작하는 말

사람은 다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있습니다. 야심가들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출세하여 권력을 얻는 것입니다. 학자와 교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독창적이며 탁월한 논문이나 학술 서적을 써 내는 것입니다. 군인들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진급하는 것입니다. 상업 또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돈을 많이 버는 것입니다. 모든 부모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자녀들이 잘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기대와 소망이라고 할 것도 없는 것이, 간절한 기대와 소망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의 이산가족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속히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통일되어 만나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도둑질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들키지 않고, 계속해서 절도와 사기와 뇌물 수수와 공금 횡령 등의 부정축재를 해 대는 것입니다.

2. 주 안에서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그리고 생사의 초월

서구 문화의 2대 조류인 히브리 사상과 헬라 사상에 능통하고, 율법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율법주의적인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살던 바울은, 예수님과 교회를 핍박하고 잔해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다메섹의 교인들을 체포하러 가던 도상에서, 나타나신 부활‧승천하신 주 예수님을 만나는 영적 체험을 통해서 변화되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종교적이자 사회적인 높은 지위에 대한 기대와 소망도 달라졌습니다.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누구 또는 무엇을 간절히 기대하고 소망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의 성취란, 결국에는 무너지거나 결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2:22을 보면,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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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에게는 주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답게 남들과는 다른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중생과 자유와 평화와 영생의 구원을 얻게 하는 복음을 전하다가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신의 옥살이와 교인들의 시기 등의 악조건이 다른 교인들의 간구와 성령의 도우심을 초래했으므로, 자신이 성결과 영원한 구원에 이를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런 바울 사도는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명예욕이나 물욕이나 감투욕에 대한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울 만큼 배웠고, 지식도 갖출 만큼 갖췄고, 출세도 할 만큼 했고, 재산도 매우 많은데도 불구하고, 탐욕의 종이 되어 그 모든 것에 대한 간절한 기대와 소망 때문에 온갖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는 어리석은 지성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는 간음과 근친상간과 수간만이 아니라 동성애도 정죄하는데, 동성애 합법화가 간절한 기대와 소망인 신학교 교수와 교역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성경을 왜곡하기도 하고, 성경을 대세에 맞게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주경신학 지식이 절실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현상을 생각하면, 바울 사도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인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않고, 언제나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자기 신앙인격과 언행과 삶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는 것은 정말 고귀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스갯소리입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려고 자녀들이 둘러앉아 있는 중에, 아버지가 마지막 힘을 다해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말했습니다. “얘들아, 너희 엄마의 음식 솜씨를 따라갈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단다. 지금도 너희 엄마가 만드는 부침개 냄새가 나는구나. 갑돌아, 너 가서 부침개 한 쪽만 가져오렴.” 부침개를 가지러 간 갑돌이가, 잠시 후에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애가 탄 아버지가 “아니, 왜 그냥 왔어?” 하자, 갑돌이가 “엄마가 그러시는데요. 아버지 드릴 건 없고, 내일 문상하러 오시는 손님들 대접할 것밖에 없다는데요.”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곧 죽을 텐데, 한 쪽 먹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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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남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세상적인 기대와 소망이 아니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살든지 죽든지 인격과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갖기 바랍니다. 믿는 우리는 우리의 몸을 예수 그리스도만을 존귀케 하는 무대로 여겨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자신을 존귀케 하는 무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무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정주부로서 어떻게 생활하는 것이, 믿는 직장인으로서 어떻게 근무하는 것이, 믿는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나랏일을 하는 것이, 믿는 과학자로서 어떻게 연구하는 것이, 믿는 학생으로서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교육자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학자가 남의 글을 도용하거나 표절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히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것은, 매사에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섬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인생길을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인생길을 가든지 상관없습니다. 각자의 인생길을 통해 살든지 죽든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존귀히 되게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할 때에 비로소 그 인생길이 영원과 연결되며, 따라서 영원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않고, 생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갖는 까닭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바울 사도에게 예수 그리스도란 진정한 의미의 생의 시작이요 과정이요 이유요 목적일 뿐만 아니라, 삶의 원리요 방법이요 능력이요 지혜라는 뜻입니다. 또, 바울 사도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바울의 전부였습니다. 바울처럼 우리 모두 물욕이나 감투욕이 아닌, 그리스도가 전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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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만 되면, 바울 사도처럼 죽는 것도 유익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영생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는 죽음의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 시공의 제한과 육체적 제한을 초월한 영원한 생명이 완전히 성취되는 것입니다. 둘째, 주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온전히 연합하는 것입니다. 셋째,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명백한 지식을 얻는 것입니다. 넷째, 고난과 고통과 슬픔과 죽음의 공포가 종식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천국 기업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먼저 천국에 간 사랑하는 이들과 재회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처럼, 자신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맡김으로써 생사를 초월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의 장로의 어머니가 권사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천국에 가셨습니다. 문상하러 온 모든 사람들과 교인들이 다 얼마나 슬프냐고 위로의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교회의 장로님 한 분이 기쁜 표정으로 문상을 와서는, 얼떨떨해 하는 장로님 내외에게 말했습니다. “얼마나 기쁘십니까? 권사님이 천국에 가셔서.” 그러자 장로님 내외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후에, 장로님은 “얼마나 좋아! 우리가 다 기대하고, 가고 싶어하는 영원한 나라, 영생 복락을 누리며 주님과 영원토록 살 그 나라에 갔으니. 난 지금도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무튼, 지당한 말씀인 것은 틀림없는데.
영생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사를 초월한 믿음의 사람인 바울 사도에게도 고민이 있었습니다. 석방되어 계속 육의 몸으로 더 사는 것이 좋은지, 죽어서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 좋은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빨리 죽어서 신령한 몸으로 그리스도와 영원토록 사는 것이 더욱 좋지만, 교인들을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계속 사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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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자신이 석방될 것과 교인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랑거리가 풍성해질 수 있도록 그들과 함께 거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교역자에게는 교인들의 믿음이 자라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기쁨과 자랑거리가 풍성해지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큰 기쁨과 보람이 없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세상적인 기대와 소망은 필요하기는 하지만, 일시적인 것이지 영원한 것은 못 됩니다. 설령 세상적인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이뤄진다고 해도, 그로 인해 자신이 망가지기도 하고, 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상실하기도 합니다.
서구 문화의 2대 조류인 히브리 사상과 헬라 사상에 정통한 지성적인 유대교 지도자인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달라졌습니다. 바울 사도처럼, 우리도 사람이나 세상에 걸어 왔던 기대와 소망을 버려야 합니다. 바울 사도처럼, 우리도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않고, 살든지 죽든지 영생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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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8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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