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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정리하다 삼십년전 써놓았던 글을 발견, 지금 보아도 바른 인식의 글로 보인다.
현종서
- 1490
- 2021-12-05 05:40:44
감리교 신학대학교의 전통을 지키는 일이란 무엇을 말하는 가? 감리교 신학의 비본래적인 신학, 소위 자유주의 신학을 고수하겠다는 것인가? 감리교회 신학은 본래적으로 경건주의, 복음주의 신학이었다. 소위 복음적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하에선 교회가 큰 발전을 이룩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5000교회 100만 신도 운동같은 복음주의적 운동하에 교회는 크게 성장하게 된 것이었다. 이에 힘입어 7000교회 2백만 신도운동을 추진하고 있는데 당시 자유주의 신학에 빠져있는 감리교 신학 대학교의 교수들은
이 운동의 발안자도 아니었고 신학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도 없었다. 그리고 목회현장과 유리된 자기들의 신학만 재확인할 뿐이었다. 복음주의적 교회들이 국내 교회 개척만이 아니라 해외 선교에 까지 뻗어나가자 교단 본부는 이러한 현상을 수용하여 단일창구를 낼 필요성을 느껴 국외선교위원회를 구성하고 간사도 채용하였다. 그런데 감리교신학대학교는 선교신학을 전공한 복음주의 신학자 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소위 교수 인사위원회가 거짓말을 해서라도-무자격 교수라는- 그들을 안받고자 하였고 자유주의 신학이 감리교회의 정체성인줄 오해하고 있는 학생들은 교회와 학교의 권위가 보낸 교수의 강의실을 학생들이 자유롭게 듣고 판단할 수 있는 학문의 자유를 막는 일까지 하였다. 총장을 교내에 못 들어오게 하는 일도 그러한 맥이다.
감리교 신학 대학교는 그동안 복음주의 신학자들을 계속 배제하고 자유주의 신학자 일색으로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 홍현설 학장이 세운 선교교육 연구원도 없애 버렸다. 변선환 학장 이전의 모든 학부의 졸업논문들도 비학문적이라?며 없애 버렸다.
급기야 감리교회는 교단신학교를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려 하나 소위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학생들을 이용한 저항을 하며 최근에는 운동권에 호응하고 있는 목회자들까지 부추겨 자기들의 신변보호를 위해 광분하고 있다.
감리교단의 기본적인 노선인 복음주의 신학노선에 부딪치자 교회 현장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이들이 주로 해 온 자유주의 신학을 지키려고 안간 힘을 쓰도 있는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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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30여년전 시론의 글이었다.
그러나 2021년 11월 현재의 감리교 신학대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몇년동안 학생들은 등교를 못하고 비대면 수업을 해 왔다. 한편 교수들은 매주 금요일 총장을 위시하여 십여명의 교수들이 삼각산 감람산 기도원에 모여 경건주의적 성경읽기와 합심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다.
타골이 예언하였던 동방의 등촉이 다시 밝혀 지는 날이 다가오는 비젼을 가지게 한다. 대한 감리회 신학교수들을 포함한 신학도들이여, 구라파와 미국의 자유주의 신학학풍은 저 동성애 를 지원하는 퀴어축제를 간접지원하는 형태를 띠고 있고, 교회는 날로 쇠퇴해 가도록 부채질 하고 있다.
1907년도 대부흥을 경험한 한국교회여 세계교회의 향방을 바로 이끌어 달라는 요청이 들리며 그 지도력을 기대하는 때가 오고 있음이 보이지 않는가? 교회와 신학이 새로워지려면, 경건과 성결추구의 기도운동과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최고의 계시의 책으로 받아들이는데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자 해야하며, 이성지상주의에 빠져 내 옅은 지식과 경험으로 그 말씀을 평가하고 내 상상의 소견을 말하고자 함에 있지 않은 것이다. 신학은 학문(철학적)이 아니라 복음이라 말한 어느 신대의 총장 말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믿음의 학문이라는 말은 이성으로 납득이 안되는 초이성적, 초과학적( 현대과학은 18세기 산물),초역사적( 현대의 역사의 대부분은 의도가지고 조작 편집함)인 사실을 그 시대 수준에서 기록한 것이다.-그래서 성경은 일점 일획이라도 바꿀 수 없다 하는 것 아닌가? 맑스의 삼단론법에 맞춘 역사,지극히 논리적이나, 사실과 다른 역사임에도 아직도 많은 이들이 매료되어 있다. 프로레타리아 편이라 생각하며 걸고 험한 말 쏟아내는 이들은 성서적 역사관으로 사물과 사건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리고 언어도 순화되어야 한다.
변, 홍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분들의 신학하는 도상의 미완성 신학을 영성의 깊이를 통해 바닥을 치고 나와 완성의 신학으로 이끌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