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듣다 성령 받은 이방인들

최세창
  • 1402
  • 2022-01-23 02:31:51
(설교 동영상: 유튜브)

<사도행전 10:44-48>

44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46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48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1. 시작하는 말

신학은 신에 관한 이야기를 체계화하는 학문입니다. 신 곧 절대자요 무한자요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영이시고, 체계화하는 학문은 유한하고 상대적인 피조물인 인간의 이성의 작용입니다. 따라서 영과 이성을 조합한 신학이란 용어는 모순 개념입니다. 여기에 신학의 특성이 있습니다. 신학은 이성만의 작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시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학자는 학문적인 역량이 있어야 하고, 보다 더 성령의 체험과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인한 영적 사고와 영적 지각이 발달해야 좋은 신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 체험조차 없는 신학자가 판치고, 성령 없는 신학이 난무하고, 성령 없는 목회가 늘어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2. 성령 받은 이방인들

이성이 발달한 율법의 전문가인 유대교 지도층은 율법의 속뜻인 영적 의미를 알지 못했고, 따라서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처럼, 성령 없는 이들의 신학 교육을 받은 교역자들이 성령 없는 설교와 강해를 한 결과가 어떻습니까? 성령 없는 설교와 강해를 듣는 교인들이, 성령 없는 언행을 하며 사는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런 서구 교회가 현저하게 쇠퇴하고, 한국 교회가 감소하고, 회개하고 믿어 구원받아야 할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신학자이건 교역자이건 교인이건,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받은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의 출발선에 서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성령 체험이나 성령의 감화와 감동에 의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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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16:17입니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 아버지이시라는 뜻입니다. 그처럼 성령 체험, 또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주 예수님을 그냥 인간이라고 하거나, 성인이라고 하거나, 동성애자라고 왜곡하게 되는 것입니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눈부시게 부흥하고 발전한 초대교회의 역사가 기록된 사도행전은, 엄밀히 말하면, 사도들과 성도들을 통한 성령의 행적입니다.
사도행전 10:1 이하에,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할 정도로 구제에 힘쓰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던 유대교인인 백부장 고넬료가, 하나님의 환상의 계시를 받아 사람들을 보내서 욥바에 있던 베드로를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베드로에게 명한 말씀을 함께 듣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모았습니다.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서, 시몬 베드로는 만유의 주님으로 오셔서 메시아적 권능으로 기적의 신유와 축귀를 행하시고, 십자가의 대속제물이 되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해진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자기 이야기나 세상 이야기가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사랑 이야기를 하라고 강단에 세우는데, 그 강단에서 자기 자랑을 하고, 선거 운동을 하고, 성경에 근거한 비판이 없이 진영 논리를 설파하는 교역자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니 듣는 교인들에게, 무슨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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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설교를 한 베드로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성령께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모든 사람인 고넬료 백부장과 그의 친지와 친척들, 그리고 베드로를 수행한 욥바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려오셨습니다. 그 현상은 오순절 때, 유대인들에게 나타나신 것과 같았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자 그리스도의 영이신데, 보혜사나 진리의 영이나 예언의 영으로도 일컬어집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의 섭리를 따라 오셔서, 세상 죄를 지시고 운명하신 후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그분을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하시고, 그 고귀한 신분에 합당한 성결한 생활을 가르치시고, 영력과 지혜와 각종 은사들을 주십니다. 한마디로, 성령께서는 인간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그의 복음에 관련된 모든 영적 지식을 일깨워 주시고, 성결한 생활을 하게 하십니다.
그토록 중대한 일인 성령을 영접하는 방도는 성경 본문의 경우처럼 말씀을 듣거나,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거나(행 2:38), 말씀을 듣고 믿거나(갈 3:2), 순종하거나(행 5:32), 기도하거나(눅 11:13), 사도들에게 안수 기도를 받는 것(행 8:17, 19:6) 등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기도와 말씀과 순종입니다.
베드로의 복음 설교를 듣던 백부장 고넬료와 그의 가족과 친척과 친지들에게 성령이 내려오시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과 베드로를 수행한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 모두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물론, 유대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의의 개종자들을 제외한 모든 이방인들은 다 멸망한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시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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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를 수행한 유대 그리스도인들조차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 놀란 것은 그리스도를 믿기는 하면서도, 여전히 중요한 점들에 있어서는 유대교적인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는 했지만, 여전히 믿기 전의 옛사람에 머물러 있는 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의와 진리와 사랑과 자유가 아닌, 불의와 거짓과 미움과 탐욕과 염려의 종살이를 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영적 사고가 아닌 적극적 사고를 하고, 복음에 합당하지 않은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고수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교훈이 아닌, 좌경적 이념이나 우경적 이념이나 중도적 이념이나 기타 이념 등의 세상 풍조를 따르고, 주 예수님이 아닌 유력한 사람이나 사상가나 종단의 장을 추종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서구 문화의 이대 주류인 헬라 사상과 히브리 사상에 정통한 대 지성인으로서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은, 부활하여 승천하신 주 예수님을 만나게 된 영적 체험을 통해서 사도가 되었습니다. 새사람이 된 바울 사도는, 세상 모든 종교나 교훈이나 사상이나 이념이나 지식 등등을 가리켜, 구원이 없다는 의미에서 초등학문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주 예수님을 알고 나니까 믿기 전의 옛사람이었을 때에 귀중히 여겼던 모든 것이 배설물로 여겨진다고 했습니다.
각 교파의 교단장 선거 후유증으로 한국 교회의 위상이 땅에 떨어지기도 하였고,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온 세계 교회, 특히 한국 교회 모두가 영의 귀를 기울여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4:22 이하를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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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베드로를 수행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놀란 또 한 이유는, 온 영을 기울여 복음 설교를 들은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아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자기들처럼,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을 능히 금할 자가 없다고 하면서 세례를 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백부장 고넬료 측에서 수일 더 유하기를 청했다고 한 것을 미루어, 성도의 교제를 나누면서 신앙 교육과 훈련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 중에 설교를 듣고 난 후에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높이기는커녕, 예배 중에도, 심지어 설교 중에도 하나님을 높이는 심령으로 듣지 않는 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사자의 설교에 대한 최고의 대접과 그 결과가 뭔지 압니까? 데살로니가전서 2:13을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 설교를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어떤 부흥사는 말씀을 개떡 같이 전해도, 찰떡 같이 들으라고 강조했습니다. 설교를 듣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지만, 농담이라도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설교자는 충분히 기도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석서들과 성경 사전들과 설교들과 신학서들을 참조하며 설교의 성경 본문을 깊이 연구하여 그 속뜻까지 깨달아야 합니다. 또, 성도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효과적인 설교 방법도 강구해야 합니다. 영의 소리인 설교는 머리나 가슴이 아닌, 영으로 듣는 것임을 일깨워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배 때마다 타성을 버리고, 온 영을 기울여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의 임재와 성령의 충만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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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34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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