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이기자

함창석
  • 1392
  • 2022-01-21 19:51:34
성경: 요한복음 16장 31-33절
설교: 고독을 이기자

"이제는 믿느냐? 너희가 다 흩어져서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나를 혼자 버려 둘 때가 오는데 그 때가 벌써 왔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므로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얻게 하려고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하였다. 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고난을 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설교에 등장하는 지옥이나 무덤, 사막 같은 곳이 두려운 이유 또한 다른 무엇보다도 외로움 때문이었다. 외로움과 고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상기시켜 종교 지도자들은 신도들에게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설교했다. 존 밀턴이 1667년 발표한 서사시 “실낙원” 속의 악마는 영국 문학작품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첫 번째 등장인물일 것이다. 에덴동산에 있는 이브를 유혹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악마는 자기가 사는 지옥을 벗어나 “외로운 걸음”을 내딛는다. 밀턴은 구체적으로 악마가 어떻게 느꼈는지 묘사하거나 서술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악마가 내디딘 지옥과 에덴동산 사이에 있는 궁극의 황야가 지금껏 그 어떤 천사도 발을 밟아본 적 없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위태하다고 하는 악마의 말 속에 외로움이 묻어난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밤 너희는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 성경에도 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 양떼가 흩어질 것이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내가 다시 살아나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겠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린다 해도 저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가 분명히 너에게 말하지만 바로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하셨다. 그러나 베드로는 "내가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하고 장담하였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다 그렇게 말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는 곳으로 가셨다. 거기서 제자들에게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 너희는 여기 앉아 있어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만 데리고 가셨다. 예수님은 몹시 괴로워하시며 그들에게 "지금 내 마음이 너무나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하시고 조금 더 나아가 땅에 엎드려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할 수만 있으면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은 세 제자에게 돌아와 그들이 잠든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시험에 들지 않도록 정신 차려 기도하라. 마음은 간절하지만 몸이 약하구나." 예수님은 두 번째 가셔서 "아버지,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떠날 수 없다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하고 기도하신 후 다시 돌아와 보니 그들은 몹시 피곤하여 또 자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그냥 두고 세 번째 가셔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돌아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직도 자고 있느냐? 이제 때가 왔으니 내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일어나라, 가자. 나를 팔아넘길 사람이 가까이 왔다." 예수님의 말씀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다.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보낸 많은 무리도 칼과 몽둥이를 들고 같이 왔다.(마 26:31-47)

고독의 개념이 인적이 뜸한 도시 밖, 사회의 울타리 밖으로 국한됐던 17세기만 해도 그 해결책은 간단했다. 다시 사회에 돌아와 공동체에 속해 살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외로움은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고, 이를 치유하기란 너무나 어려워졌다. 심지어 사람이 넘쳐나는 활기찬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외로움이 가득하다 보니, 이웃을 사귀고 친구를 가까이해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됐다.

현대적 의미의 고독이나 외로움이란 물리적으로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둬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다른 이들과 가까이할 수 없다는 감정이자 심리 상태이다. 실제로 다른 사람과의 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사는 사람도, 심지어 친한 친구들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사람도 고독이나 외로움을 느끼고 외로워서 힘들어한다. 이제 인적이 뜸한 황야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고독이나 외로움은 질병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독이나 외로움을 느낄 수 있고, 고독이나 외로움을 느낄 만한 상황에 처하면 당연히 외로워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이 사실을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어야 외로운 사람들이 스스로 더욱 고독으로 몰아넣는 껍데기를 깨고 나와 경험을 공유하고 고독이나 외로움을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문학작품을 읽는 것도 마음속의 고독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다. 외로울 때만 책을 읽으라는 법 같은 건 물론 없지만, <프랑켄슈타인>부터 <투명인간>까지 실제로 많은 문학작품이 수없이 다양한 외로움을 다루고 있다. 등장인물이 겪는 외로움을 읽는 이가 공감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공허하기만 한 마음에 무언가 들어차는 것처럼 느끼기에 독서만큼 좋은 것이 없다. 책을 읽으면 또 어떻게 해야 함께 외로워할 수 있는지 배우기도 한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은 종종 다른 작가들의 외로움이 가득한 문장을 그대로 베껴 적으며 영감을 얻고 또 글을 쓰기도 했다. 외로움이 만연한 사회라도 우리가 외로움을 알리고 나누려 하면 공동체가 그 외로움을 달래주러 올 것이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든 아니면 문자를 주고받든 방법은 다양하다.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기도 하는 외로움은 이렇게 처음에는 그저 물리적인 고립의 다른 이름이었다가 세월이 흐르며 뜻이 바뀌어 왔다. 시인 오션 부옹이 썼듯이 “외로움도 이 세상과 함께 세월을 보내며 변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너희가 다 흩어져서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나를 혼자 버려 둘 때가 오는데 그 때가 벌써 왔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므로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하셨으니 우리도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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