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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는 이뤄져야 합니다.
오재영
- 1825
- 2022-02-11 00:04:20
지금 유력한 이들 중에 한 사람도 외국에 나가 견문을 쌓은 이가 없다…,
물론 외국에 나간다고 대수? 아니나 지구촌 시대에 방구석에서 패거리 지어 하는짓들이 네거티브에나 매달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상대편 헐뜯는 그와 그의 패거리들의 생각 속에 미래祖國의 운명이 보이며,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할 희생과 헌신할 마음의 각오가 있겠는가?
이제 또다시 제20대 대통령을 선출할 기회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회자되는 비스마르크의 어록 중 하나다. “지혜로운 자(者)는 역사를 통하여 배우고, 어리석은 자는 경험으로 배운다.” 남다른 위치에서 책임 있는 職을 감당하고자 하는 이라면 당연히 이미 오랜 사생관(觀)에서 우러나오는 의연함이 있어야 하건만, 지난 날 온통 자신과 가족 먹고살기에 전전긍긍하며 수단 방법 가리지 않던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여 허둥대는 꼴이 與野를 불문하고 참으로 안쓰럽고 측은 지심이다. 과연 이들이 오늘의 형편, 수많은 이들의 시선 앞에서 이처럼 혹독한 검증이 있을 줄 꿈엔들 생각이나 했을까?
최근에 유력한 대통령후보에 오른 한 인사의 말(言)이 화제다.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고 말했다. 그에 따라 그 이후에 가는 곳마다 그의 발언에 따른 온갖 패러디가 뒤따른다. 상대 당 대변인은 “000 후보의 진짜 모습은 다음과 같다”라며 ‘문재인 존중한다 했더니 진짜 존중하는 줄 알더라’ ‘특검하자 했더니 진짜 특검 하는 줄 알더라’ ‘조국 사과한다 했더니 진짜 사과한 줄 알더라’ ‘국토세 철회한다 했더니 진짜 철회한 줄 알더라’ ‘검사 사칭했더니 진짜 검사일 줄 알더라’ ‘깨끗하게 살았다 했더니 진짜 깨끗하게 산 줄 알더라’ ‘000은합니다 했더니 진짜 하는 줄 알더라’라고… 어느 논객의 표현, “000의 위기는 신뢰(信賴)의 위기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말(言)은 존재의 집”이라 했다. 즉 한 인간의 말은 그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뜻으로, 그러므로 경박한 말을 하는 이가 신중한 사람일 수 없고, 사려 깊은 자가 천박한 말을 함부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욕이라 하지 않는가?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생각과 몸에 배어버린 나쁜 습성을 버리고 좋은 언어의 습관을 통해 탁월한 인물이 된다는 것은 부단한 각고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 하다. 그러므로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 비트켄 슈타인,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했다.
신앙 빙자하여 기독교의 위상을 허무는 사람들...
최근에 신앙을 빙자하여 한편에 치우친 안목으로 선동하는 이들이 있다. 누가 보더라도 정상적인 위치를 이탈한 모습에 저들의 뜻대로 동조하는 이들이 있을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계(警戒)할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자신의 피(血)를 끓게 하는 이들이다. 피를 끓게 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선동(煽動)일 뿐이다. 이미 100여 년 전, 좌옹(佐翁), 유치호(伊致昊)의 표현대로 “조선 사람들은 10%의 이성과 90%의 감성으로 산다.” 언제나 자신의 실력을 기를 마음은 없이 남의 약점만 들추고 허물어뜨리는 통에 이 땅에는 인물 다운 인물이 성장해 본적이 없다. 그 자리에 걸 맞는 자기 훈련과 도덕적 수련을 쌓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대마다 영성이 희미해지면 시대의 조류에 휩쓸린 혹세무민(惑世誣民)한 이들이 등장하여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미혹하여 속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한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이들에게는 그분의 곁에 머물다온 이들만이 소유한 독특한 체취와 기운이 그들의 언어와 삶에 배어 있다. 누군가 그런 표현을 했다. “牧師의 영성과 성숙의 깊이는 그 시대에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그분 앞에서 침묵하는 시간의 길이와 비례한다.”
그러나 그 앞에서 입을 다물고 지금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의 기록대로 수많은 이들 중에도 거룩함이 우선 되어야 할 聖職에 합당한 품격을 구비하지 못하였음에도 대표적 정실인사인 엘리제사장과 홉니와비느하스, 이처럼 엄위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행한 그들은 한날에 아비는 목이 부러져 죽고, 아들들은 전쟁터에서 처참한 생을 마감했다(삼상3장).
오늘 우리가 5천만 인구 중에(25%로 4명중 한명이라는 이들도 있으나 실상 그리 믿는 이들은 없다). 소수에 속하는 목회자요 신앙인들 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그들은 당연히 영적 지도자의 길을 걷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후예들로서 영혼을 구원할 福音전파자의 소명과 함께 시대가 어떠하든지 긴장 속에서 설계하며 바른 방향을 따라 성찰 함으로 수시로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
정권 교체는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집권 여당의 지난 5년 간의 국가 경영의 사실적 평가와 점검을 받아야 한다는 個人的인 생각이다. 그동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한번이라도 정독(精讀)한 이들이라면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본인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아니었다면, 삼고초려(三顧草廬)하려 했다는 소문 들어 본적이 없다. 무엇보다 압권은 법무부(정의부)장관을 임명한 것이다. 온갖 갈라치기와 프레임으로 쑈통? 에 몰입하는 통에 제대로 남아있는 것 없이, 이제는 무능하고 부패했다는 이들마다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으로 환생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개인(個人)적인 바램이다.
많은 이들이 야당의 단일화를 언급하는데, 개인의 생각이지만 그리 됐으면 좋겠다. 서로 일방적이 아닌 협조하는 모습으로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 널리 인재들을 모아 함께 미래를 바라보는, 시대에 적합한 眼目있는 이들이 등장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지금 거론되는 인사가 지난 날 코로나 와중에 의료 봉사하면서 뱉은 말,“실력 없는 정권이 실력 없는 국가를 만든다.”했으니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미래 조국을 위하여 자신들을 희생함이 바람직하리라는 생각이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남을 중상 하면 세 사람이 해를 입는다. 말하는 사람에게 해롭고, 듣는 사람이 더러워지고, 중상 당하는 그 사람이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너나 없이 신앙인들 다운 위치와 성숙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