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86회 나. 만 왕의 왕이요 만 주의 주(19:11-16)

최세창
  • 2207
  • 2022-02-04 21:03:29
어린양 그리스도의 혼인 잔치에 관한 환상에 대해 기록해 온 요한은, 여기서는 만 왕의 왕이시며 만 주의 주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환상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요한은 이 부분을 【11】[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로 시작한다.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는 요한이 매우 중대한 새 계시가 전개되는 환상을 본다는 것이다. 앞서 “하늘에 열린 문”(4:1)과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11:19),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15:5)라는 표현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하늘 자체가 열렸다는 것이다. 클라케(A. Clarke)는 “4:1에는 저자가 들어가기 위해 하늘의 문이 열렸으나, 이제는 주님과 그 군대가 나오기 위해 하늘 자체가 열렸다.”라고 하였다.
[보라]는 1:7의 주석을 보라.
[백마]의 흰색은 ‘승리’, ‘결백’, ‘천적 또는 신적 현상’을 상징하고, 말은 전쟁을 상징하므로(1:14의 주석을 보라.) 흰말을 탄 자가 승리자요 정복자라는 점은 분명하다. 당시에는 개선장군이 흰말을 타는 관습이 있었다.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의 [탄 자]는 6:2과 달리,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렇게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이어서 언급되는 그의 이름들과 모습이 본서 내에서 계속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C. L. Morris).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그리스도께서 여기 다시 나타나신다. 그의 나타나심은 이제 와서 어린양과 자비로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로 오신다.······그는, 이제 화목하러 오시지 않고, 땅 위의 모든 거룩하지 않은 것을 거스려[거슬러] 싸우러 오신다.”라고 하였다(Revelation of St. John, p. 249).①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의 [충신](피스토스, πιστὸς)은 1:5의 주석을 보고, [진실]은 3:7의 주석을 보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지상의 삶과 대속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충성스럽고 진실하게 온전히 성취하시고 승천하셨다. 이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마지막 내용인 마지막 심판을 하기 위해 하늘의 군대를 이끌고 재림하신다. 이 약속 역시 완벽하게 성취하실 것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충신이며 진실이시므로 [공의로 심판하며](19:2의 주석을 보라) 싸우실 수 있으며, 그렇게 하신다. 김철손 님은 “공정한 심판을 하기 위해서는 불의와 싸워야 하며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②라고 하였다.
[심판하며 싸우더라](κρίνει καὶ πολεμεί)는 모두 현재 시상으로 그리스도의 심판의 사역이 영원한 것이며, 대적자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전투와 심판이 지속적인 것임을 의미한다(C. L. Morris, G. E. Ladd).
계속해서 요한은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해, 【12】[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라고 하였다.
[그 눈이 불꽃 같고]는 1:14의 주석을 보라.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12:3의 주석을 보라.)이 있고]는, “왕의 왕으로서 세계의 모든 왕들을 지배하시며, 또 모든 성도들을 지배하시는 절대의 권세를 표시한다”(이상근).
[이름(오노마, ὄνομα: 2:3의 주석을 보라.)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는, 그리스도 이외의 누구도 그 뜻을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 자신의 새 이름(3:12의 주석을 보라.)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백마를 탄 그리스도께서는 누구의 지배도 간섭도 제어도 영향도 받지 않는 절대자이시며,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신 주이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그리스도의 복장에 대해, 요한은 【13】[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라고 하였다.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는 이사야 63:2-3의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뇨 만민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뛰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를 연상하게 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리스도께서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의 [피]에 대해 (1) 순교자들의 피라는 설(Caird),③ (2) 그리스도와 대적자들의 피라는 설(Swete),④ (3) 그리스도께서 어린양으로서 흘린 피라는 설,⑤ (4) 대적자들의 피라는 설⑥ 등이 있다.
(1)설과 (2)설은 논할 가치가 없고, (3)설과 (4)설이 그럴 듯하다. (3)설, 즉 그리스도께서 어린양으로서 흘린 피라고 하는 학자들은 피의 전투가 그 다음에서야 비로소 언급된다고 하는 논리로 대적자들의 피라는 견해를 반대하지만,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심판자로서의 재림에 관한 환상이라는 점과 그리스도의 모습이 이사야 63:1-6과 관련된다는 점과 전후 문맥을 미루어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인 (4)설, 즉 대적자들의 피로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입으신 피 뿌린 옷은 앞으로 있을 최후의 전쟁에서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승리자가 되시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는,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ὁ λόγος τού θεού)이라고 일컬어진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르는 것은 요한 문서에만 나타난다(요 1:1-14, 요일 1:1). 이 사실은 본서와 요한복음의 관련성을 나타내고, 사도 요한이 본서의 저자라는 유력한 증거가 된다(H. Alford, A. Plummer, W. Barclay).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에 언급된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세상에 거하신 구원자이심을 나타내고, 여기에 언급된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재림하셔서 대적자들을 멸망시키시고, 성도들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시는 심판자이심을 나타낸다.
요한복음 12:48에는,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라고 하였고; 히브리서 4:12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하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백마를 타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군대에 대해서, 요한은 【14】[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라고 하였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에 대해 (1) 천사들(시 103:21, 148:2, 마 13:41, 24:30, 31, 25:31, 눅 2:13)이라는 설,⑦ (2) 성도들(14:4, 15:1, 2, 17:14)이라는 설(A. Barnes, A. Johnson, 黑崎幸吉), (3) 천사들과 성도들이라는 설⑧ 등이 있다.
(1)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많으나, 그들이 직접 참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미루어 보아 (3)설이 더욱 그럴 듯하다.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는 19:8의 주석을 보라.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는 하늘의 군대가 백마를 타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지만, 직접 참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피 뿌린 옷을 입으시고 백마를 타신 그리스도와 달리, 하늘의 군대가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대적자들과 싸우고, 그들은 만 왕의 왕이시며 만 주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권능을 보고, 그 승리에 참여할 뿐임을 암시하는 것이다.⑨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의 무기에 대해, 요한은 【15】[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라고 하였다.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는 이사야 11:4의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를 연상하게 한다. 데살로니가후서 2:8에도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라고 하였다.
[이한 검이 나오니]는 1:16의 주석을 보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는 “종말의 때에 그리스도의 심판의 범위와 위력은 전 우주와 전 역사에 미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김철손).⑩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는 2:27의 주석을 보라.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는 14:19-20의 주석을 보라.
끝으로, 요한은 【16】[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 왕의 왕이요 만 주의 주라 하였더라]라고 하였다.
백마를 타신 그리스도의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에 대해서 (1) 넓적다리에 이름이 쓰여진 것이라는 설(R. H. Charles), (2) 외투와 다리를 가리우는 부분의 의복에 쓰여진 것이라는 설(이상근), (3) 웃옷과 다리에 다 쓰여진 것이라는 설(C. L. Morris, C. R. Erdman), (4) 다리까지 내려온 웃옷에 의해서 가려지기 쉬운 허벅다리에 이름이 쓰여진 것이라는 설(G. E. Ladd) (5) 넓적다리 위에 있는 옷에 쓰여진 것이라는 설(J. Wesley), (6) 다리까지 내려온 웃옷에 이름이 쓰여진 것이라는 설⑪ 등이 있는데, 많은 학자들은 (6)설을 지지하고 있다.
[만 왕의 왕이요 만 주의 주]는 17:14의 주석을 보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in 박윤선.
2) 김철손, 요한계시록.
3) in A. Johnson.
4) in A. Johnson.
5) “Hippolytus, Origen, Andreas”(in A. Johnson), A. Johnson, C. L. Morris.
6) J. Wesley, A. Clarke, “Moffatt”(in 이상근), H. Alford, P. E. Houghes, R. H. Charles, W. Barclay, A. Plummer, A. C. Gaebelein, G. E. Ladd, R. Brooks, W. Hendriksen, G. R. Beasley-Murray, R. H. Mounce, H. Kraft, M. Rist, J. F. Walvoord, 黑崎幸吉, 이상근, 박윤선, 김철손, 요한계시록.
7) W. Hendriksen, W. Barclay, H. Kraft, G. E. Ladd, R. C. H. Lenski, M. Rist, G. R. Beasley-Murray, “Swete”(in 강병도 편), P. E. Houghes, C. L. Morris.
8) M. Henry, H. Alford, R. H. Charles, R. H. Mounce, A. Plummer, 박윤선, 이상근.
9) 참조: G. E. Ladd, C. L. Morris, R. H. Mounce, G. R. Beasley-Murray.
10) 김철손, 요한계시록.
11) R. H. Mounce, A. Johnson, “Beckwith, Swete”(in 黑崎幸吉), 黑崎幸吉, 김철손, 요한계시록.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390-395.

newrema.com(T. 426-3051)의 필자의 저서들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설교집 34권/ 바울의 인간 이해/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바울의 열세 서신/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다수의 논문들
첨부파일

이전 함창석 2022-02-04 폐선 위 단상
다음 현종서 2022-02-05 웨슬리 신학의 4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