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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혼잡하게 하지 마라
최세창
- 2347
- 2022-02-19 23:50:55
<고린도후서 4:1-6>
1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3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4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1. 시작하는 말
첨단 과학 시대인 이 시대는 여러 가지 병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머리를 채우는 지식과 정보와 이념과 사상과 종교의 소리는 많은데, 마음의 양식이 되는 소리는 많지 않고, 영혼의 양식이 되는 소리는 거의 없습니다. 지식과 정보와 이념과 사상과 교리들은 매우 다양하고 많아졌는데, 인격 형성과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냥 몸과 머리가 바쁘기만 해서 인간이 사는 건지, 뭔가에 휘둘리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시대적 병폐보다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구원의 복음을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구원의 복음을 바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고, 구원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이들도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2. 복음의 직분을 수행하는 태도
유대인들은 율법 행위로 구원받는 것으로 믿었고, 이방인들은 양심 행위나 도덕 행위로 구원받는 것으로 알거나, 종교 행위로 구원받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구원관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본질이 피조성과 죄성, 상대성과 불완전성, 제한적 가능성과 자율성, 나약성과 필멸성인 인간은 인류를 구원할 힘이 없습니다. 둘째, 그런 인간의 법과 양심과 도덕과 종교들의 교리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다르고, 심지어 선과 악, 옳고 그름, 의와 불의가 상반되는 것이므로 구원의 방도가 될 수 없습니다. 셋째, 인간 세상에 구원의 방도가 있다면,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넷째, 세상에 구원의 방도가 있거나, 인간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신다는 약속을 하실 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정상급 유대교 지도자이었던 바울은 히브리 종파와 사상과 관습 등에 정통하고, 헬라 종교와 사상과 관습 등에도 정통한 최상급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은, 세상 죄를 지시고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신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하는 복음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주 예수님을 메시아 사칭 죄인으로 여겨, 철저하게 그의 교회를 핍박하고 잔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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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교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다메섹까지 가는 도상에서, 출현하신 부활의 주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통해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복음은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중생과 자유와 평화와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긍휼로 다메섹 체험을 통해 주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울은 복음을 잘 알았을 뿐만 아니라,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파하였고,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생활 자체가 복음 선교였습니다. 복음 선교의 삶!
실상, 복음 선교의 삶을 사는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곳곳에서 핍박과 환난과 조롱을 당하고, 일부 교인들의 시기와 비방과 배척까지 감수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선교하여 설립해서 토대를 닦은 고린도 교회의 어떤 교인들이, 그의 사도직과 복음을 사이비라고 비방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는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직분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영생을 얻게 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이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거짓 지도자들과 다른 태도를 취했습니다.
첫째, 숨어서 하는 부끄러운 짓들을 버렸습니다. 물론, 바울 사도가 전에 남들이 알면 망신스러울 수밖에 없는 짓을 했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교인들을 실족케 하는 율법주의적 성향이 있는 가짜 지도자들과 음란의 특성을 지닌 이교의 악습을 행하는 가짜 지도자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 앞에서 공명정대하게 일했습니다.
둘째, 이기적 목적 달성을 위해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않았습니다. “궤휼”의 헬라어 파누루기아(πανουργίᾳ)는 ‘교활한 짓’, ‘목적 달성을 위해 행하는 속임수를 비롯한 온갖 악한 짓’을 의미합니다. 하와를 유혹하여 넘어뜨린 마귀의 속성이고, 유대 지도층이 예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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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도를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할 때에 드러난 마귀적 속성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행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지 않았습니다. “혼잡케 아니하고”의 헬라어 메데 돌룬테스(μηδὲ δολούντες)는 ‘속이지 않고’, ‘왜곡시키지 않고’, ‘부패시키지 않고’, ‘다른 것을 섞지 않고’ 등을 의미합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에다 율법주의나 다른 종교의 교리나 철학이나 도덕적 교훈, 또는 그 밖의 어떤 사상 및 지식을 섞지 않았고, 또 복음을 인간적인 것으로 왜곡시키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도인 복음만을 전했습니다.
오늘날에도 회개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믿어 구원받아야 할 인간의 이념과 사상이나, 인간이 만든 종교들을 구원의 길이라고 주장하는 그릇된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넷째,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했습니다. 도덕적 진리나 인간적인 진실이나 종교의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인 복음을 복음 그대로 선포함으로써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해 스스로 추천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하나님이 지켜보신다고 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복음을 그대로 드러내야 합니다.
어떤 전도자가 이태리 시실리 섬의 산속에서 강도를 만났습니다. 돈을 다 빼앗은 강도는, 짐이란 짐은 모조리 불속에 넣으라고 호령했습니다. 전도자는 다 불속에 넣었지만, 성경책들만은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이 책들을 불속에 넣기는 하겠는데,…당신은 여기에 무슨 말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내가 지금 한두 마디만 읽고, 불속에 넣어도 되겠습니까?”라고 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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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강도가 “그래 좋다.”라고 하자마자 그가 성경을 폈는데 마침 시편 23편이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로 시작해서 끝까지 읽었습니다. 강도가 “아하, 그것 참 좋구먼! 그 책은 여기에 놓으시오.”라고 했습니다.
전도자가 또 한 권을 펴자 마태복음 5장이 나와서 읽었습니다. 팔 복을 죽 읽었더니 강도가 “아하, 그것도 좋구려! 그것도 여기 놓으시오.”라고 하고는 성경책을 싸 가지고 가 버렸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뒤에, 어떤 사람이 그 전도자를 찾아와서 대화를 하게 됐습니다. “절 기억하십니까?” “아니오.” “수년 전에 강도를 만나 돈과 성경책을 빼앗긴 일을 기억합니까?” “예, 그 일은 기억합니다.” “제가 바로 그 강도입니다. 당신의 물건 속에 있는 주소를 보고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 성경책을 가지고 가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신학 공부를 하고, 지금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든 그 강도, 아니 그 목사의 두 눈에는 감격에 겨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언제 어디 어떤 상황에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복음을 그대로 나타내야 합니다.
물론, 복음을 그대로 나타내도, 복음이 가리어지기도 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러나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은 밝히 나타났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수건이 덮여진 것처럼 가려진 상태라는 겁니다. 그 원인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복음이 전파됐는데도 복음을 깨닫지 못하거나, 배척하는 사람들을 멸망 상태에 있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 하나님의 복음을 믿지 않는 것은 마귀가 마음을 혼미케 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복음의 광채를 비취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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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믿지 않는 것과 마귀인 사단이 마음을 혼미케 하는 것은 상관성이 있습니다. 아무튼, 자율성을 지닌 인간은 하나님이 아닌, 사단의 궤계를 따른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를 문책하셨습니다.
만일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빙자하여 그 자신을 전파했다면, 사람들이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고, 주 예수님을 안 믿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을 전파했습니다. 그 자신은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복음으로 교인들을 섬기는 종임을 전파했습니다. 그는 더 중요한 선언을 했습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교인들의 마음에 비취셨다는 것입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 선교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과 중생과 자유와 평화와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받는 진리인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복음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주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먼저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받은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이해될까가 아니라, 주 예수님이 어떻게 이해될까에 대해서 신경을 써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인기와 존경을 의식하는 언행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주 예수님을 나타내는 언행을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주 하나님의 복음을 더욱더 더 깊이 깨닫고 행함으로써, 모든 사람들 속에 복음이 역사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들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34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다수의 논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