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다

함창석
  • 1887
  • 2022-02-19 21:23:27
만나다

함창석

갈린 두선이나 두길 따위가 서로서로 마주 닿다

그 어떤 사실이거나 사물 따위를 눈앞에 대하다

일기가 화창한 때나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하다

어디를 가는 도중에 눈비나 바람 따위를 맞았다

누군가 가거나 와서 둘이 서로서로가 마주 보다

천생 연분 같은 인연으로서 어떠한 관계를 맺다

Sandol Method

실존적 만남은 너와 나의 결정적인 내적 경험이 초래되는 참 만남이다. 실존주의 상담에서는 내담자와 상담자의 관계를 매우 중시한다. 상담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상담자와 내담자가 '참 만남'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참 만남이란 둘 사이의 어떤 결정적인 내적 경험이 초래되는 관계를 의미한다. 이처럼 실존주의 상담에서 만남은 일반적으로 두 개인의 우연한 만남이나 첫 대면이 아닌 두 개인 중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결정적인 내적 경험이다. 실존적 만남은 이전의 대인관계의 부활이 아니며, 이 만남 속에서 두 사람은 완전히 새로운 시야가 열리고 세계관과 성격이 변화한다. 참 만남은 무지나 착각으로부터 갑작스럽게 해방되는 경험이며 정신적 시야를 넓혀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상담 장면에서 실존적 만남은 상담자가 내담자를 단순한 병든 대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되며, 상담자는 내담자와 '너와 나'라는 동일한 인간적 존재로서의 깊은 내적 만남에 몰입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만남과 대면을 통해서만이 상담자는 내담자의 내적, 주관적 세계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김춘경 외 4인, 실존적 만남, 상담학 사전, 2016)

설렘과 떨림으로 시작되는 만남은 그 시작에서 기대한 것처럼 항상 아름답게 지속되진 않는다. 많은 경우에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헤어짐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과 헤어짐은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또한 만남과 헤어짐의 경험이 반복되며 관계 형성의 밑바탕이 된다. 일반적인 의미의 만남과는 조금 다르지만, 인간의 최초 만남은 많은 경우 부모(혹은 보호자)와의 관계에서 형성된다. 우리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애착(attachment)이라는 심리적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고 이는 향후 우리가 맺는 많은 관계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밑바탕이 된다.(김태훈, 만남과 헤어짐 - 아름답게 지속되는 것은 어렵다, 생활 속의 심리학, 2013)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여인들 중 이름이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오영자’는 네 사람이다. 처음 만난 사람은 나를 돌보아주시던 막내고모가 시집가셨는데 고모부 동생이 오영자 이었다. 나중에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다른 오영자는 양지마을 은행나무집 딸이었는데 그녀도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그 후 세월이 오래지나 성년이 되면서 결혼을 한 지금의 아내 이름이 오영자이다. 그 후 중년 교사시절 교감 선생님 사모 이름이 오영자 이었으니 흔한 이름이었나보다.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여인들 이름 중에 제일 많은 이름은 순옥 이었다.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윤순옥, 초년교사 시절 같이 근무하였던 김순옥, 담임을 맡았던 배순옥, 같은 교회 출석을 하는 이순옥 권사님도 있었다. 교감 시절 같이 근무하였던 안순옥은 이름이 별로라고 하여 훗날 안수지로 개명을 하기도 하였다. 순옥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은 대체로 순한 심성을 갖고 있었다.

가끔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동명이인들이 참 많이 등장한다. 내 이름 함창석도 네 명이나 등장을 하는데 울산지역 경감도 있고 광주지역 상공회장도 있다. 족보에 보면 함창석이라는 이름이 여럿 등장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름을 짓는 방식이 있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북한당국에서는 김정은 이름을 지으며 여타 다른 사람들은 강제적으로 모두 개명을 하라고 하였다 한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김정은’이가 오직 삼대 세습을 한 ‘김정은’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땅에는 흔한 이름이 김정은이 아닌가? 그러니 인간심술은 요지경이 아닌가?

노사연의 ‘만남’은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 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운명 이였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돌아보지 말아 후회하지 말아/ 아 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말아/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돌아보지 말아 후회하지 말아/ 아 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말아/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지금까지 이 땅에 살아오면서 가장 귀한 만남은 한 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교회 지체들이다.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모임이 내게는 삶의 활력소가 되었으니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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