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청 肅淸

함창석
  • 1714
  • 2022-02-19 01:49:39
숙청
肅淸

숙청은 어지러운 상태를 바로잡음이다. 정치 단체나 비밀 결사의 내부 또는 독재 국가 등에서 정책이나 조직의 일체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반대파를 처단하거나 제거함이다. 거세, 처단 등과 유사하다.

계유정난은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수양 대군이 정권 탈취를 목적으로 반대파를 숙청한 사건이다. 10월 10일의 정변으로, 김종서ㆍ황보인 등은 피살되고 안평 대군은 사약으로써 죽음을 맞았다.

문화대혁명은 1966년에 중국에서 시작한, 대규모 사상ㆍ정치 투쟁의 성격을 띤 권력 투쟁이다. 수정주의ㆍ반당ㆍ반사회주의자에게 마오쩌둥ㆍ린뱌오 등은 학생 중심의 홍위병과 혁명 소조 따위를 동원하여, 류사오치 국가 주석 등 당과 행정부 간부를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실권파로 몰아 숙청하였다. 그 후 십여 년 동안 린뱌오의 실각 등 내부 대립이 끊이지 않다가 마오쩌둥 사망 후 1976년에 종결되었다.

숙청은 독재정당이나 비밀결사 내부에서 조직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반대자를 추방하여 조직의 순화를 도모하는 일이다. 암살·제명·추방·처형·체포·구금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이론이나 정책의 불일치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야심이나 원한, 개인과 집단 간의 권력투쟁에서 유래되는 일도 있다. 시기적으로는 혁명이 성공하고 혁명체제가 확립되기 직전, 정책의 일대 전환기, 대외적 위기, 독재자의 야심의 절정기나 불안의 시기에 많이 일어난다. 그 예로는 영국의 크롬웰, 프랑스의 로베스피에르의 독재하에서도 피의 숙청을 볼 수 있다. 러시아혁명에서는 레닌의 '당의 통일에 관한 결의' 제안으로 해당자의 처벌이 정해졌고, 스탈린시대에는 L.트로츠키, G.E.지노비예프, L.B.카메네프, N.I.부하린, A.I.루이코프, M.톰스키가 숙청되었다. 1934년 S.M.키로프 암살 후 1938년까지는 이른바 '피의 숙청' 시대가 도래 하여 많은 사람이 처형당하였다. 이들은 1956년 N.S.흐루쇼프의 '스탈린비판'에서 폭로되었다. 독일에서는 히틀러의 E.룀 암살이 유명하다. 불가리아의 T.코스토프, 체코슬로바키아의 R.슬란스키 등이 피의 숙청에 희생이 되었으며, 중국의 문화혁명 과정에서 마오쩌둥파에 의한 류사오치파의 추방도 있다.(숙청, 두산백과)

1953년 남로당계열인 박헌영·이승엽 등 13명을 간첩행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하여 숙청한 일. 52년 12월 15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에서 당의 조직적·사상적 강화와 종파주의 잔재 청산을 강조하는 김일성의 보고가 있은 후, 노동당은 각 정당·단체들에게 당성 검토를 하게 하는 한편, 박헌영·이승엽 등을 체포·구속했다. 53년 7월 30일 이승엽 외 11명이 기소되어 8월 3일부터 6일까지 심리가 진행되었다. 기소장에는 ① 미제국주의를 위해 감행한 간첩행위 ② 남반부 민주역량 파괴·약화, 음모와 테러·학살행위 ③ 공화국 정권 전복을 위한 무장폭동 행위 등 3가지 내용의 죄상이 제시되었다. 이들 중 이원조 징역 12년에 재산몰수, 윤순달 징역 15년에 재산몰수, 나머지 10명은 모두 사형과 재산몰수를 선고받았다. 박헌영은 55년 12월에 기소되고, 그의 재판을 위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특별재판소를 설치, 최용건을 재판장에 임명했다. 박헌영의 기소내용은 ① 미제국주의자들을 위한 간첩행위 ② 남반부 민주역량 파괴·약화행위 ③공화국 정권 전복음모 행위 등이었다. 12월 15일 열린 공판에서 박헌영은 사형과 재산몰수를 선고받았으며, 그해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박헌영·이승엽 숙청, 한국근현대사사전, 한국사사전편찬회, 2005)

1950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북한의 문학은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된다. 전쟁이 끝난 뒤에 휴전과 함께 사회적 혼란이 어느 정도 평정되자, 북한에서는 문학 예술인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단행된다. 김일성은 먼저 남로당 박헌영 일파를 숙청하고 월북문인들 가운데 남로계 문인으로 지목된 임화, 김남천, 이태준, 설정식 등 상당수의 문인들을 문단에서 제거한다. 전쟁 직후의 복구 작업에 들어서기 전에 이루어진 문인숙청은, 문학 예술가들의 당적 통일성을 파괴하려는 일체의 종파주의적 행위를 거부하고, 대중의 혁명투쟁 의식과 전투의식을 마비시키는 부르주아 문학사상을 분쇄해야 한다는 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문단숙청과 사상통제를 실현한 후에, 북한당국은 전후 복구사업과 경제발전을 위해 문학 예술인들을 다시 조직 동원하게 된다. 천리마운동으로 지칭되고 있는 전후 복구사업의 수행은 북한에서 사회주의 체제의 정착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대중에 대한 사상적 통제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권영민, 북한의 문인숙청,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13)

현재의 김정은도 숙청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공산당정권에 높은 위치에 있던 이들이 사라진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기관총으로 처형하였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때로는 열차나 자동차 사고로 위장하여 거세하기도 한다고 한다. 세습왕조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극단적 공포정치이기도 하다.

적폐청산이란 오랜 기간에 걸쳐 쌓여온 악습의 청산을 의미하는 것이다. 적폐청산이라는 단어는 21세기 이전에도 사용되었으며, 정치권, 비정치권을 막론하고 적폐가 존재할 수 있으므로 가리지 않고 사용하는 말이었다. 제6공화국에서 적폐청산의 선두주자로는 김영삼의 문민정부를 꼽을 수 있다. 군사반란의 수괴로 지목된 전두환과 노태우를 구속에 이르게까지 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2014년 4월 국무회의에서 박근혜가 "오랜 세월 사회 곳곳에 누적된 적폐를 개혁하겠다."고 하면서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2016년 가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사용량이 급증하여 박근혜 퇴진 운동의 주된 구호 중 하나로서 사용되었다. 이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은 적폐청산을 공약 중 하나로 내걸기도 하였다. 적폐 청산 자체는 과거의 쌓아온 폐단을 없애야 한다는 용어지만, 지금은 적폐 청산하자, 적폐몰이를 한다는 말이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 혹은 세력 집단을 적폐로 규정하고, 본인들에 대한 비판을 무조건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단어로 의미가 오남용 되었다. 이후 2020년대에 들어서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코로나19에 많은 사람들이 집중하게 됨에 따라 자연스레 적폐와 적폐청산이라는 말이 유행이 지나고 정치권에서 사라지며 적폐 청산이라는 단어 자체가 안 쓰이는 사어인 상태다. 2022년 현재 20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 힘 후보가 "문 정부는 스스로의 적폐부터 청산하라" "문재인 정부의 적폐를 수사하겠다."라고 하며 적폐라는 단어가 다시금 떠오르고 있다.

적폐(積弊)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다. 민주세력으로 대변되는 무리가 정권을 획득한 후 보수, 수구세력으로 대변되는 무리 정권의 적폐를 처리하였다. 전직 대통령이 3명이나 구속되었다. 그 후 현재의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세력의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니 두고 볼 일이다.

마태복음 21장 12-13절에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 거기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다 쫓아내시고 돈 바꿔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다. 라고 성경에 쓰여 있는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하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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