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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스크랜턴과 아펜젤러 공헌 정리
민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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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6 04:59:25
1. 배재와 이화의 기초를 서울에 처음으로 입경하여 의료사역을 시작하므로써 놓았고
의료의 공은 다대하여 대한인과 기독교 = 복음 = 개화 = 미국 등과의 사이를 급격히 제일 빠른 시간안에 좁혔다.
특히, 무료민중의료와 여성과 어린아이를 위한 전문 병원치료 시설을 전국화하여 대한인과 기독교와의 사이를 급격히 좁혔는데, 이중 여성의사로 하여금 여성과 어린아이 전문 병원은 이는 전 세계 의료사이든 민족운동사이든 선교역사이든간에 없던 것을 스크랜턴이 창조한 것인데, 여성으로 남성 의사에게 몸을 보이는 것을 어려워하던 조선의 여인과 아이들을 위한 스크랜턴의 창조적 아이디어였다. 지금처럼 편하게 소아청소년과 부인과 만드는게 절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 매우 이례적이며 특별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 아펜젤러의 사후 모든 감리회의 행정 책임자로서 신학회 운영, 인재양성, 특히, 민족지도자 양성에 모든 힘을 기울였다. 전덕기를 통한 민족지사들의 활동을 해리스 감독의 방해에도 방조하고 모른척하여 도왔다.
3. 해리스 감독의 민족운동 방해시엔 감리회 선교사직을 던지고 성공회로 이적하여 투쟁하여 상동교회에 친일의 마수가 뻗혀 간섭할 수없도록 조치하고 자신은 감리회를 탈퇴하였으면서도 전덕기 목사가 신민회를 통한 민족운동 진영을 총지휘할수 있도록 상동교회를 떠나지도 않고 어머니를 살피며 지켰다.
*. 아펜젤러의 최고의 공헌 3가지 정리
1. 배재학당과 감리회신학회, 연합 종합대학교 설립시도의 열매로 연희전문 맹아로 민족 인재 양성 및 서재필, 이승만 등 요인 보호와 독립협회 창설, 독립문 건립시 기도와 배재학생들 애국가 제창 그리고 춘생문 사건 관여와 광무황제의 호위무사.
2. 독립신문, 한글 성경, 각종 문서 보급으로 대한인의 민도(문자와 언어생활 일치) 급상승하여 3.1 혁명 인자 배출
3. 독립신문에 민주공화정 보도로 대한민국 정체의 실체를 알리고 실현케 하기 위해 독립협회 지원이 자원화되어 신민회로 임정의 정체로 채택케 됨
그리고 추가로 한국인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순직하심으로 딸과 아들까지 대를 이어 선교사가 되어 진정한 한미정치군사동맹의 기초인 한미감리회종교동맹의 선구자*이며, 아들과 딸이 이를 완성하였다는 사실 = 이 사실이 경장히 중요하다.
*. 아펜젤러가와 노블가는 아들과 딸이 혼인하고 대를 이어 선교사로 활약하니 인연이 끊어질 일이 없었다.
*. 감리회라는 종교는 전래 이 후 시종일관 정치를 지향하여 미국식 기독교국가를 목표로 햇다. 물론, 자신들이 다스리겟단건 아니었다. 조선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조신한 행동, 대군주 폐하와 황태자 저하 탄신축하예배, 명성황후 추모예배, 춘생문 사건, 황실 시의, 황실 호위무사 = 식사담당과 야간경호 등
+. 부친 : 이 기록은 아펜젤러의 부친은 아들이 감리회 선교사로 임명되어 활동하는 것이 맘에 안들어 아들의 배재학당 건축시 거듭된 도움 요청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기에 기록한다. 교단의 배신자로 느꼇단 말이며 아들은 이에 아랑곳 않고 한국 선교를 하였다는 말이다.
+. 아펜젤 : 스위스의 한 고장 이름이며 동네 이름을 사람의 성으로 썻다. 이 동네는 생긴 지형이 알(산)이 피어오르고 평평한 분지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