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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까지니이까
최세창
- 1879
- 2022-03-24 20:56:23
<시편 13:1-6>
1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
1. 시작하는 말
‘언제까지인가?’ ‘언제나 끝나나?’ ‘도대체 언제까지 당해야 하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런 시기에, 종종 목 놓아 통곡하고, 가슴을 치며 절규하는 때가 있습니다. 일이 잘되지 않고, 애쓸수록 더욱더 꼬여 가기만 할 때가 있습니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넣고, 마음과 정신을 다 쏟아 넣고, 시간과 노력을 다 기울여 성취한 일이 오랜 세월 빛을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하여 한 말과 행동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해나 왜곡이나 비아냥이나 핍박으로 돌아오는 때가 있습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의 시기나 배신으로, 인격이 땅에 떨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병고로 남들까지 힘들게 할 때가 있습니다.
탄식과 통곡과 절규를 더 심하게 하게 되는 사람들은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내게 왜 이런 고통이 지속될까?’ 어느 때까지니이까?
2.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본문은, 다윗의 시로 알려져 왔습니다. 다윗 왕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연전연승하며 부국강병을 이루었고, 찬란한 신정 국가를 이뤘습니다. 아들인 솔로몬 왕이 건축한 성전도, 거의 모든 준비는 다윗 왕이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 다윗의 인생에도 밝은 낮만 있은 것이 아니라, 어두운 밤도 있었습니다.
다윗은 목동 시절에, 전쟁터에 심부름을 갔다가 블레셋의 골리앗과 맞상대하여 죽이고 구국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개선 길에,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창화하는 바람에, 불안과 시기심에 사로잡힌 사울 왕의 집요한 살의와 추적을 피해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돌변과 모함과 배신은, 견디기 힘든 심적 고통이 되었습니다. 가깝던 사람들이, 사울 왕의 명령을 복종하여 추적하고 있다는 소식은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공 좀 세웠다고 공치사하더니 꼴좋다.”라고 하는 조롱도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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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숨을 데가 없어서 망명하려다가 정체가 드러나는 바람에, 가드 왕인 아기스 앞에서 미친 짓을 해서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지기도 했습니다. 천하에 명성을 떨쳤던 다윗이 말입니다.
역대 최고의 왕으로서 통치하던 중에, 맏아들 암논이 배다른 여동생인 다말을 겁탈하는 기막힌 일도 겪었습니다. 그 일로 앙심을 품은 셋째 아들이자 다말의 오빠인 압살롬이, 형인 암논을 살해하고 도망친 일도 겪었습니다. 셋째 아들이 맏아들을 죽이는 끔찍한 살인으로 죽기보다 더한 고통을 겪은 것입니다.
신하의 충고를 듣고 셋째 아들인 압살롬을 힘들게 용서하여 받아들였지만, 결국엔 그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던 뼈에 사무치는 고통도 겪었습니다. 아첨하며 찬양하던 신하들의 배반과 민심의 이반도, 감내하기 힘든 심적 고통이었습니다. 한껏 누리던 부귀영화가,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노숙자가 된 것입니다. 그것도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노숙자입니다.
하나님이 외면하셨고,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생각과 영원히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다윗 왕을 괴롭혔습니다.
누구나 이러한 고통과 고난을 겪으면, 스트레스로 인해 심신이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목동이었던 다윗 왕이 억울한 고통과 고난만 당한 것은 아닙니다. 연전연승하던 다윗 왕은 어느 날 저녁 때,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 밧세바를 보고 반했습니다. 전쟁 중에 있는 충성스러운 무신인 우리아의 아내인 줄 알면서도 동침하여 잉태케 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런 후에, 죄를 감추기 위해 우리아에게 특별 휴가를 주어서, 아내인 밧세바와 동침하게 할 간계를 꾸몄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의 교활한 짓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아는 생긴 대로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집으로 안 가고, 왕궁 문에서 다윗 왕의 신복들과 잠을 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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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를 들은 다윗 왕이, 우리아에게 왜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사무엘하 11:11을 보면, “우리아가 다윗에게 고하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영채 가운데 유하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신복들이 바깥 들에 유진하였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치 아니하기로 왕의 사심과 왕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 이런 충신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다윗 왕은 편지를 써서, 충신인 우리아에게 주면서 지휘관인 요압에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편지 내용이 사무엘하 11:15에 있습니다.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저로 맞아 죽게 하라”
그렇게 다윗 왕은 간통죄를 숨기려고, 충신인 우리아를 사지로 몰아넣는 교활한 짓을 했습니다. 우리아를 도와 싸우던 다윗 왕의 신복들 중 몇 사람까지 죽게 했습니다. 손도 안 대고, 우리아를 비롯한 여러 충신들을 살해한 것입니다. 다윗은 용맹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머리도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다윗 왕이 하나님이 아닌 여인에게 쏠리니까, 마귀에게 연전연패하는 줄도 모르고, 전심전력을 다해 죄악의 종노릇을 계속한 것입니다.
다윗 왕은 충신인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가 호곡하며 남편의 장사를 마친 다음에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왔고, 밧세바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다윗의 악한 소위를 보신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 왕에게 행인을 맞은 부자가 자기의 많은 소와 양을 아껴 잡지 않고,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 행인을 위해 잡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다윗 왕은 하나님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까지 하면서, 그 부자는 마땅히 죽어야 할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나단 선지자는, “당신이 그 사람이라”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다윗 왕의 집에 재앙이 임할 것이고, 아내들이 다른 사람에게 넘겨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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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큰 충격을 받은 다윗 왕은 회개하여 죄 사함은 받았지만,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들은 하나님께서 데려가셨습니다.
성경 본문이, 그처럼 파란만장한 다윗의 생애 중 어느 고난의 시기, 어떤 고통의 때에 다윗이 쓴 시인가에 대해 궁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모든 고난과 고통은 물론, 어느 한 고난의 시기나 한 가지 고통의 때에라도 나올 수밖에 없는 탄식이기 때문입니다.
실은, 모든 인생에는 그러한 아픔과 슬픔, 고난과 고통의 밤이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해결하느냐 포기하느냐, 극복하느냐 좌절하느냐, 이겨 내느냐 패배하느냐,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밤은 포기와 좌절과 패배와 죽음의 시기가 아닙니다. 어둠 속에 갇혀 허우적거리면서 그런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그런 자신의 손발을 놀려서는 밝은 낮을 맞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영육의 문제 해결자이시며, 죽음 너머 영생까지 예비하신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는 것 같고,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버림받은 것 같더라도, 바로 그 하나님을 붙잡고 매달려 간구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전능하신 하나님께 언제까지 이 고난을 당해야 하느냐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믿는 나로 하여금 순탄케 하시고, 연전연승하며 부국강병을 이루게 하시더니, 이젠 영영히 잊으실 것이냐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주님의 자비로운 얼굴을 언제까지 숨기실 것이냐고 애타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께 마음과 정신을 다 쏟는 정도가 아니라 온 영까지 기울였습니다. 온종일 마음에 근심하기를 언제까지 해야 하며, 원수가 치며 자긍하기를 언제까지 하게 두실 것이냐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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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왕은 사망의 잠을 자게 되면 그만이므로, “전능하신 내 하나님이시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라고 했습니다. 자기에게 하신 약속을 생각하여 간구에 응답하시고, 고난으로 흐려진 눈을 밝혀 하나님의 자애로운 얼굴과 권능의 손을 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어둠 속에서 죽기 전에 빛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다윗 왕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까 염려했습니다.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하나님을 믿는 다윗이 고난과 고통에 흔들리다가 쓰러져 버리면, 우상 숭배를 하는 원수와 대적들이 다윗이 사단의 궤계에 말려들어서 이겼다고 기뻐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고난과 고통의 밤을 토로한 다윗 왕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해결과 극복과 승리를 체험했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왕 중 왕이 됐습니다. 다윗 왕은 오직 주님의 인자하심을 의뢰했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주님의 구원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겨우 구원을 맛보게 하시지 않고, 후대하셨기 때문에 전능하신 주님을 찬송했습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종종 잊어버리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믿는 사람은 종종 하나님을 떠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 모두 인생의 밤에는 더욱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며 순종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해결과 승리와 후대를 체득하시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들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 설교집 34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