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95회 V. 신천 신지[21:1-8] 1. 새 하늘과 새 땅의 출현(21:1-4)

최세창
  • 2032
  • 2022-03-23 23:20:16
큰 음녀인 큰 성 바벨론의 멸망과 최후 승리이자 최후 심판에 관한 환상의 계시(17:1-20:15)에 대해 기록해 온 요한은, 여기서는 신천 신지의 환상에 대한 계시(21:1-22:5)를 기록하고 있다. 이 부분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출현(21:1-8)과 하늘의 예루살렘(21:9-22:5)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새 하늘과 새 땅의 출현[21:1-8]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출현에 관한 환상에 대한 기록을 【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로 시작한다.
[내가]······[보니]는 4:1의 주석을 보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는 이사야 선지자도 예언한 적이 있다. 이사야 65:17에는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하였고, 66:22에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도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말씀하셨고(마 19:28),① 베드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에는 하늘과 땅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녹아지고,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고 하였다(벧후 3:10-13).②
“신천 신지 사상은 외경적 유대교 묵시 문학에서도 흔히 나타난다(I Enoch 45:4-5, 72:1, 91:16, IV Edzra 7:25, II Baruch 32:6)”(黑崎幸吉, 김철손③).
여기에 언급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현재의 하늘과 땅의 영화로운 변화라는 설④과 현재의 하늘과 땅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완전하고도 영원한 세계가 창조된 것이라는 설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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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설이 옳은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나, 왈부드(J. F. Walvoord)는 “새 창조는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묘사되어 있다. 그것이 현재 있는 하늘과 땅의 개선이 아니고, 완전히 새로운 하늘과 땅이라는 사실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라는 부가적인 언급에서 확인된다.”라고 하였다. 또한, [새 하늘]의 [새]가 질적인 새로움을 의미하는 카이논(καινὸν: 5:9의 주석을 보라.)으로 된 것도 완전히 새로운 하늘과 땅이라는 설에 대한 한 근거가 될 것이다. 아마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거나(고전 15:44)⑥ 변화된(고전 15:51-52)⑦ 성도들이 영원히 살 새로운 세계인 천국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인 것 같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에 대해, 김철손 님은 “특히, 종말사에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의 소멸(20:11[의 주석을 보라.])을 여기서 재론한 것은 옛 세계와 새 세계가 계속되거나 발전, 변화하거나 개혁된다는 것이 아니라, 전혀 질이 다른 세계로 변했다는 것을 확증하려는 것이다.”⑧라고 하였다. 시편 102:26에는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라고 하였다.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는 새롭고도 영원한 세계에는 바다가 제거되었다는 것이다. 바다는 짐승(적그리스도)의 출처이고(13:1의 주석을 보라.), 죽은 자들이 있는 곳이고(20:13의 주석을 보라.), 악으로 비유되기도 하였다(사 57:20). 묵시 문학에서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의 거처로 묘사되기도 하였다(Ass, Moses 10:6, Siby. Ora. 5:158)⑨. 그러므로 바다가 없어졌다고 하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란 죄와 타락과 그 결과들이 전혀 없는 새로운 세계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어서 요한은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라고 하였다.
‘[거룩한(하기안, ἁγίαν: 3:7의 주석을 보라.) 성 새 예루살렘]은 여기에만 사용된 표현으로, “새 예루살렘”(3:12의 주석을 보라.)이나 “거룩한 성 예루살렘”(21:10)보다 훨씬 더 장엄한 표현이다. 펜테코스트(J. Dwight Pentecost)는 제닝스(F. C. Jennings), 윌리암 켈리(William Kelly), 월터 스코트(Walter Scott) 등을 인용하여 새 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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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렘이 천년기 동안에 위성에 있는 도시였다는 생각을 제시하였고,⑩ 랑게(Lange)는 천년왕국 시대의 수도로 보지만,⑪ 이어지는 내용을 보아 한시적인 천년왕국―문자적인 의미로 볼 수도 없는(405-417쪽의 주석을 보라.)―의 수도나 도시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새 하늘과 새 땅과 관련된 영원한 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⑫
여기에 사용된 [새] 역시 앞 구절의 경우와 같은 카이넨(καινὴν)으로, 지상의 옛 예루살렘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하늘의 예루살렘(갈 4:26, 히 12:22)⑬임을 의미한다.
새 예루살렘의 배경은 구약성경이나(사 54-55장, 60:2-3, 65:18, 겔 40-48장) 외경에 풍부하다(Siby. Ora. 5:423-426, Baruch 묵시 32:4, II Baruch 4:2-7, 6:9, Test. Dan. 5:12, II Esd. 13:36, IV Edzra 10:27, 13:36, I Enoch 90:28-29).⑭ 이러한 유대교적 사상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을 종말적인 최대의 축복의 성취이다. 그러나 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충성스런 성도들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거나 변화하여 영원히 거할 무궁한 세계이다. 이 예루살렘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공동체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의미하기도 한다.⑮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인간의 능력과 지혜에 의해서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설하여 하늘에서 주시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는 장차 나타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모습과 특성을 묘사한 것으로, 새 예루살렘이 지리적이거나 공간적인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들인 교회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로우시게 하기 위해 곱게 꾸민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19:7의 주석을 보라).
그 환상 중에 들린 음성에 대해, 요한은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라고 하였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는 본서의 저자 요한이 보좌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보라]는 1:7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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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는, 레위기 26:11-12의 “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를 연상하게 한다(참조: 겔 37:27, 슥 2:10-11).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의 [장막](스케네, σκηνὴ)은 ‘거룩’을 의미하는 것(R. C. H. Lenski)이 아니라, 지성소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쉐키나, ????)를 의미하는 것이다(R. H. Charles).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즉 무궁한 새 세계에 거하는 성도들에게 영광스럽게 영원히 임재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영원히 함께 거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신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단독적인 은혜로운 역사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다”(R. C. H. Lenski).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의 최종적 성취이다(창 17:7-8, 렘 7:23, 24:7, 30:22, 31:33, 겔 11:20, 13:9, 37:27, 슥 8:8, 호 2:23, 빌 3:20).
성도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 그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에 대해, 요한은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라고 하였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는 7:17의 주석을 보라.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겨 주신다는 것은, 그 다음에 언급된 모든 불행들인 [사망과 애통과 곡하는 것]과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다. 그 모든 불행한 일들이 다시 있지 않게 된 이유(원문에는 호티, ὅτι가 있다.)는 [처음 것들], 즉 옛 세상의 모든 것들이 옛 세상과 함께 [다 지나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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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필자의 마태복음 19:28의 주석을 보라.
2) 필자의 베드로후서 3:10-13의 주석을 보라.
3) 김철손, 요한계시록.
4) M. Henry, J. Wesley, H. Alford, “Greijdanus”(in 박윤선), F. B. Meyer, R. C. H. Lenski, C. R. Erdman, A. Barnes, M. Rist, W. Hendriksen, A. C. Gaebelein, P. E. Houghes, G. E. Ladd, 박윤선.
5) J. A. Bengel, G. R. Beasley-Murray, E. A. Schick, A. Johnson, J. F. Walvoord, C. L. Morris, R. Brooks, R. H. Mounce, R. H. Charles,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6) 필자의 고린도전서 15:44의 주석을 보라.
7) 필자의 고린도전서 15:51-52의 주석을 보라.
8) 김철손, 요한계시록.
9) in 이상근.
10) in J. F. Walvoord.
11) in 이상근.
12) J. Wesley, J. A. Bengel, R. H. Charles, M. Rist, J. F. Walvoord, C. R. Erdman, A. Johnson, 박윤선,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13) 필자의 갈라디아서 4:26의 주석과 히브리서 12:22의 주석을 보라.
14) 참조: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15) W. Hendriksen, C. R. Erdman, R. H. Mounce, A. Johnson, G. E. Ladd, 박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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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423-427.

newrema.com(T. 426-3051)의 필자의 저서들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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