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루살렘의 복/3월20일주/사순절3주/강단보라색.

박영규
  • 2486
  • 2022-03-20 03: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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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루살렘의 복
성경-에스겔48장35절

오늘은 성지의 성도 예루살렘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교훈으로 삼고 예루살렘이 주는 영적인 복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1.예루살렘의 의미와 근대역사
예루살렘은 Jerusalem(영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3대 종교의 성지가 모두 모여 있는 곳으로, 히브리어로‘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의 예루샬라임 יְרוּשָׁלַיִם (Yerushalayim), 아랍어로는 ‘신성한 도시’라는 뜻의 알 쿠드스(Al Quds)라고 불립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모두 자신들의 수도로 주장하고 있는 분쟁 지역으로, 유엔은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을 앞두고 열린 총회 결의안을 통해 예루살렘을 국제법상 어떤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지역으로 선포한 바 있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도시는 동예루살렘(요르단령)과 서예루살렘(이스라엘령)으로 분리됐으나,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거치면서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 지역까지 점령했습니다. 이후 1977년 수도를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공식 이전한 이스라엘은 1980년 7월 ‘예루살렘은 분리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는 내용의 예루살렘법을 기본법으로 제정했습니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는 즉시 이를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하고, 모든 회원국 외교관을 예루살렘에서 철수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를 통과시켰습니다. 이 결의에 따라 현재 이스라엘에 있는 각국의 대사관과 대표부는 예루살렘 대신 텔아비브에 있으며 사실상 텔아비브가 이스라엘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17년 12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주재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라고 지시하면서 아랍권은 물론 전 세계의 거센 반발을 일으켰습니다. 미국도 이전까지 '2국가 해법'에 따라 예루살렘을 어느 국가의 수도로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1995년 미의회가 미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이 법안을 6개월마다 유예하면서 실행에 옮기지 않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크게 서예루살렘과 동예루살렘으로 나눠져 있는데 이 중 핵심은 3대 종교의 주요 성지인 통곡의 벽(유대교), 알아크사 모스크(이슬람교), 성묘교회(기독교)가 모두 위치하고 있는 동예루살렘의 올드시티입니다.
이슬람교도들은 올드시티에 있는 템플마운트(성전산)를 이슬람 창시자이자 예언자인 무함마드가 서기 7세기에 승천한 곳으로 믿고 하람알샤리프(신성한 안식처)로 부르고 있습니다.

당시 이곳을 통치한 무슬림들은 무함마드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는 템플마운트를 종교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팔각형의 황금 바위돔(Dome of the Rock)과 함께 알아크사 모스크를 세웠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템플마운트를 둘러싼 통곡의 벽(Wailing Wall)을 유대교 최고 성지로 여기고 있습니다. 여기에 템플마운트 인근에는 예수님께서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뒤 안장되고 부활하신 묘지에 세워진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있어 기독교인들에게도 신성시되고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11월 영국 정부는 예루살렘이 있는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적 고향 건설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밸푸어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바로 2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에게 전후 독립국을 약속한 것(맥마흔 선언)과 상반된 입장이었습니다.

이 밸푸어 선언 이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아랍인들과의 갈등이 격화됐습니다. 이에 유엔은 1947년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지구와 아랍지구로 분할하는 결의 181호를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거주민 상당수가 아랍인인데도 유대지구의 면적이 팔레스타인 전체 땅의 56%를 차지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48년 5월 영국군이 철수하자마자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고, 이는 제1차중동전쟁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1차 중동전쟁(1948)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포하자, 유대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아랍국가들은 이에 반발해 일제히 공격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제1차 중동전쟁은 이집트, 요르단,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등에서 참전하며 대규모 전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전쟁 초기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제국의 협공이었기에, 전세가 아랍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지속되면서 아랍 진영 내에 불화가 일기 시작하였고,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 시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이스라엘을 적극 지원하면서 점차 이스라엘에 유리한 전세가 조성되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80%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또 이때 예루살렘은 서쪽(이스라엘)과 동쪽(요르단)으로 분열됐으며, 약 80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난민으로 전락했습니다.

제3차 중동전쟁(1967)
제3차 중동전쟁(6일전쟁)은 시리아와 이스라엘 간 빈번한 충돌이 계기가 되어 발발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1967년 4월 제1차 중동전쟁의 정전협정에서 비무장지대로 설정된 골란고원 일대에 농작물을 경작한다는 일방적인 조치를 발표하면서 시리아의 분노를 촉발시켰습니다. 이에 이집트가 아카바만의 입구인 티란 해협을 봉쇄한 것을 계기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또다시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의 원조를 받는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지배에 들어간 영토 면적은 이스라엘 독립 초기의 8배가 넘는 영토로 확대되었고 동예루살렘마저 이스라엘이 점령하게 되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예루살렘 (시사상식사전, 지식연구소)

2.예루살렘의 역사
예루살렘의 원래 명칭은 살렘입니다(창14:18)
여부스족속의 성읍이었다(삿19:10-11)
여호수아가 정복 후 베냐민 지파가 차지하게 되었다(수18:28) 유다지파가 예루살렘을 공격하였다(삿1:8)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족속과 함께 살았다(삿1:21) 후에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다윗성이라고 명명하였다(삼하5:6-9) 다윗이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성으로 옮겼습니다(삼하6:12) 다윗이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였습니다(삼하24:18-25)

솔로몬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성전을 세웠는데 그곳이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곳입니다(왕상5:5-8) 예루살렘은 애굽왕 시삭의 침략(왕상14:25)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공격을 받았다(왕하14:13)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공격을 받았다(왕하16:5) 블레셋과 아라비아 사람들의 공격을 받았다(역대하21:16) 앗수르 왕 산헤립의 공격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앗수르군 18만 5,000명을 진멸시키셨다(왕하18-19장)

애굽(이집트)왕 바로느고가 여호아하스 대신 여호야김으로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게 하였다(왕하23:33-35)
여호야긴 왕, 시드기야 왕 때 바벨론 왕 느브갓살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였다(왕하24-25장) BC586년 예루살렘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정복 당한 후 성전은 불타고 성벽은 무너지고 예루살렘 거민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 노예생활을 하는 70년 동안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다(렘25:11)

바사왕 (파사=페르샤)고레스가 BC532(538)년경 바벨론을 정복하고 고레스 왕 원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였다(역대하36:23)(스1:1-4) 1차귀환은 (BC538-515)지도자 스룹바벨의 인도로 49,897명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스1-6장)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중건함(느2장-12장) AD70년에 예수님께서 예고 하신대로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멸망을 당했습니다(마24:1-2)


더 상세한 예루살렘의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예루살렘의 역사
가나안 시대로 알려진 기원전 14세기에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의 '우루살림(Urusalim)'으로 불렸다. 기원전 935년 북쪽 이스라엘(Kindom of Israel)과 남쪽 유다왕국으로 분열된 뒤 예루살렘은 유다왕국의 종교적·정치적 수도로 기능했다. 기원전 586년 신바빌로니아의 침략으로 포로로 억류되었던 유대인들이 페르시아 왕에 고레스에 의해 석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유대교의 신전인 솔로몬 성전(聖殿, temple)을 재건했다.

이후에도 로마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37년에 성전산에 또다시 성전을 재건했지만, AD70년에 로마의 공격으로 이 성전은 다시 파괴되었다. 유대인들은 당시 파괴된 성전 중 유일하게 남은 서쪽 성벽(Western Wall)에 찾아와 통탄하는 풍습이 생겨나 '통곡의 벽(Wailing Wall)'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로마 콘스탄틴 대제의 비잔틴 시대가 열리면서 예루살렘은 AD638년까지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아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베들레헴, 갈릴리와 더불어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에 성묘교회(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er)와 주기도문교회(The Eleona Church), 성 시온 교회(The Church of Holy Zion), 승천교회(The Church of the Ascenson) 등 교회와 수도원이 건설되었다. AD614년 페르시아가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기독교를 박해할 때 당시 유대인들은 페르시아를 지원하고 예루살렘을 재탈환했지만 AD629년 비잔틴 군대의 재점령으로 다시 축출되었다.

638년에는 아랍인에 의해 다시 함락되어 4세기가 넘게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7세기와 8세기에 통곡의 벽 근처에 바위 사원과 알아크사 모스크가 건립되었다. 유대인 공동체는 '딤미(Dhimmi)'의 지위를 받아 자유를 보장받는 대신 특별 인두세와 토지세를 내야 했다. 이후 1099년에는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200여 년간 지배했다.

이 시기에 예루살렘은 십자군 국가인 기독교 왕국(Kingdom of Jerusalem)으로 존재했으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비기독교인들은 학살당하고 유대인들은 박해당했다. 1291년 십자군이 당시 이집트와 시리아 일대를 통치하던 마물루크 술탄(Mamluk Sultanate) 군대에 패함으로써 십자군 지배기는 종식되었다.

1517년부터 오스만 터키제국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4구역으로 분할되었고 행정구역상 다마스쿠스 소속으로 이스탄불의 지배를 받았다. 유대인의 유입으로 예루살렘의 인구밀도가 높아지자 19세기부터 성벽 밖에 유대인 거주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올드시티의 통곡의 벽이 재건되어 오늘날의 구조를 갖추게 되었으며 19세기에 올드시티는 아르메니안, 크리스챤, 유대인, 무슬림 쿼터로 구분되었다. 19세기에는 서구 열강이 들어오기 시작한 때로, 1892년에는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을 잇는 최초의 철로가 건설되었다.
예루살렘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 미국 영사관이 개설되었다. 1917년에 영국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되면서 오스만의 지배는 종결되었다.

영국 군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뒤 많은 유대인과 아랍인이 예루살렘에 정착하면서 전체 인구수는 1922년 52,000명에서 1948년 165,000명으로 증가했다. 영국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올드시티 서쪽과 북쪽으로 새로운 거주지역을 건설해나갔다. 유대인의 계속된 유입과 1917년 영국의 밸푸어선언으로 아랍 폭동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1947년 국제연합(UN)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유대인지구와 아랍인지구로 분할할 것을 권고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1948년 5월 14일 영국위임통치가 종료되면서 이루어진 이스라엘 독립선언은 주변 아랍국가들이 참전한 아랍이스라엘분쟁(제1차 중동전쟁)으로 이어졌다.

제1차 중동전쟁은 예루살렘의 분리를 초래했다. 국제연합(UN)은 예루살렘을 UN의 관리 하의 중립지역이자 국제도시로 계획했으나, 결국 올드시티와 동예루살렘은 트란스요르단(요르단)에,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 분할되었다. 당시 유대인과 아랍인의 주거지 이동이 이루어졌으며, 3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건국과 동시에 예루살렘을 도시로 선언했으며, 요르단은 1950년에 동예루살렘을 공식 병합하여 1953년에 요르단의 제2수도로 선언했다. 1967년 6일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제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뒤 국회의사당과 대법원 등 주요 정부 기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함으로써 예루살렘을 수도로 주장하였다.

국제법상 예루살렘은 어느 쪽의 영토도 아니므로 지금까지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1967년 이전의 서예루살렘 지역만을 수도로 인정하며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을 텔아비브에 두고 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예루살렘의 역사 (두산백과)

3.예수님과 예루살렘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성지와 예루살렘을 1987년 2004년 2008년 3번 다녀왔는데 1987년 8월 38세 때 안양광림교회를 개척하고 3년 후 연세대 신학대학원 주관으로 성지세미나가 있어서 21일 동안 성지를 가서 감람산에서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예루살렘을 보며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를 드린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께서 다니셨던 예루살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예루살렘을 보는 순간 감격스러워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시며 예루살렘 백성들의 멸망을 안타까워하시며 구원을 위해 기도를 드리셨습니다(눅19:41)

예수님께서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루살렘 골고다에서 가까운 곳에 있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루살렘 감람산에서 예수님께서 승천을 하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하시고 주님의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4.예루살렘의 영적인 의미와 축복.
1)예루살렘-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신다고 약속을 하심(왕하19:32-34)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다고 하셨다(대하6:6) 다니엘이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를 드림(단6:10)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보좌라 하심(렘3:17)

여호와 삼마[하나님께서 거기(예루살렘)에 계신다](겔48:35)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시며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성산이 되리라고 약속하셨다(슥8:3)

2)새 예루살렘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계22:1) 성도들의 본향이 새 예루살렘인데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해 예비하신 새 예루살렘(히11:10, 16절) 장차 올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히13:14)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활동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루살렘을 기억하고 가보고 싶을 것입니다.

성지 예루살렘도 가보시고 장차 영생하게 될 새 예루살렘과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다는 소망을 갖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루살렘은 흥망성쇠가 있었지만 새 예루살렘은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양입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시122:6)



*박 영 규 목사:서울제자교회 원로목사, 동대문교회 협동 목사,
*한국 위안부 소녀기념교회 담임목사,
*위안부 소녀 기념교회 설립추진 위원:배성기 목사,
국회의원 김민석 집사.
*북에 억류된 선교사, 국군포로, KAL승무원,
납북어부귀환 추진운동본부 공동대표. *북한선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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