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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四旬節, 넷째주간에...
오재영
- 1756
- 2022-03-28 20:40:54
그리스도인 에게 성경 말씀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귀하다. 개인이든, 단체든, 죽고 사는 문제가 이 말씀의 소유 여하에 달려있다. 말씀은 성령의 검(劍)이다(엡6:10-20). 예나 지금이나 사탄의 가장 우선 되는 목표는 우리에게서 믿음의 기쁨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허락하신 공격적인 유일한 무기가 있다. 그것은 성경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의 칼집에서는 그 칼을 꺼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그 칼집을 차고 있지 않으면, 결코 그 칼을 사용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있지 않으면(요15:7), 우리는 적들이 공격해 올 때 칼을 잡으려고 해도 소용없다. 그러나 그가 그 말씀을 지니고 그 말씀이 자기 안에 서 살아 있다면, 그 어떠한 대적도 정복할 강력한 군사들이 된다.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 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4). 이처럼 존귀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는 이들이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을 거스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수고하고 고난을 당한 성도들을 멸시하는 것이다. 타락한 시대, 당대의 세속적인 교회 권력 앞에 당당히 섰던 마르틴 루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트리어’의 대주교 앞에서 한 루터의 고백이다.
“폐하와 각하들께서 정직한 대답을 원하실 것이오니, 저도 주저 없이 그리고 반항하지 않고 대답하겠습니다. 성경과 명백한 이성에 비추어(나는 교황의 권위와 공의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둘은 서로 상충되기 때문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면, 나의 양심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어떤 것도 철회할 수 없고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내 양심을 거스르는 일은 옳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기 서 있는 일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
묵상에 관하여...
생애 6만 번 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하는 조지 뮬러(1805-1898), 영국에 고아원을 설립하고 자신의 모든 필요를 전적으로 그리고 기쁘게 하나님께 의존했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 믿음을 어떻게 더욱 불붙게 하였는가? 1841년, 그는 인생을 바꿀만한 것을 발견했다. 그의 전기에서 발췌한 이 간증은 그 인생에 어마어마하게 값진 보화가 되었다.
네일스워스(Nailsworth)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은 내게 인간적인 도움을 통하지 않고도 진리를 가르치시기를 기뻐하셨고, 4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나는 그 유익을 계속 누리고 있다.
요점은 이렇다. 나는 내가 매일 해야 하는 가장 우선되고 중요한 일은 주 안에서 내 영혼이 행복해지는 것임을 이전보다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내가 맨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주님을 섬겨야 하는가, 혹은 내가 어떻게 주님을 영화롭게 해드릴까 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어떻게 나의 영혼이 행복해질까, 어떻게 내적인 존재가 성숙해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불신자 앞에서 진리를 전할 수도 있다. 신자들의 유익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낙심한 자를 위로할 수도 있다. 그 밖에 여러 모양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인 듯 행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 안에서 행복하지 않고 속사람이 매일 성숙하고 강건해지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을 올바른 정신으로 행하지는 못할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아침에 옷을 갈아입은 후 기도하는 것이 내 습관이었다. 그런데 이제야 나는 내가 했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것을 묵상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것으로 내 마음이 위로와 격려를 받고 경고와 질책을 들으며 훈계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말씀을 묵상할 때 내 마음은 주님과 체험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아침 일찍 신약 성경을 처음부터 묵상하기 시작했다.
주님의 귀한 말씀에 주께서 복 주시기를 몇 마디 간구한 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기 시작했다. 구절구절 살피면서 거기서 복을 얻으려고 하되, 공적인 말씀 사역을 위해서나 설교 거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영혼의 양식을 얻기 위해 묵상하였다. 그 결과는 거의 늘 한결 같았다. 몇 분 안에 내 영혼은 고백, 감사, 참회, 혹은 간구에 이르게 되었다. 즉, 나는 기도하지 않고 묵상에 몰두했을 뿐인데 그 묵상이 거의 즉시 기도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잠시 참회, 간구, 혹은 감사를 드린 후 단어나 구절을 묵상하기 시작하면, 그 과정에서 말씀은 이 모든 것이 나 자신이나 이웃을 위한 기도로 바뀌도록 인도해 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 영혼의 양식을 얻는 것이 묵상의 목적이라는 사실만은 잊지 않았다. 그 결과 늘 많은 고백, 감사, 간구 혹은 참회가 내 묵상과 결합되었고, 내 속 사람은 지속적으로 눈에 띄게 자라갔고 강건해졌으며, 아침 식사 시간까지 거의 예외 없이, 행복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내 마음은 평안했다. 내가 묵상에 전념한 것이 공적인 사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의 속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였는데도, 주님도 곧 내가 다른 신자들에게도 필요한 양식을 찾을 수 있도록 말씀해주시기를 기뻐하셨다.
나의 이전 습관과 현재 습관 간의 다른 점은 이렇다. 전에는 일어나면 가능한 빨리 기도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대개 아침 식사 전까지 기도하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무슨 일이든 나는 거의 한결같이 기도로 시작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내 영혼이 위로와 격려를 얻고 마음이 겸손해진다는 것을 의식하기까지 무릎을 꿇고 15분, 30분, 때로는 1시간 동안 기도하곤 하였다. 그리고 처음 10분, 15분, 심지어 30분 정도는 마음을 잡지 못해서 많이 고생한 후에야 진짜 기도에 들어가기 시작한 적도 종종 있었다.
이제 이렇게 고생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내 마음이 진리로 양육을 받고 하나님과의 체험적인 관계를 누리기에, 나는 주님의 고귀한 말씀으로 내 앞에 두신 것들에 관해 내 아버지께 그리고 내 친구 예수님께(나는 천하고 그분의 친구가 될 만한 자격도 없지만)이야기 한다.
종종 내가 좀 더 빨리 성경 묵상을 몰랐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어떤 책에서도 묵상에 대해서 읽은 적이 없다. 어떤 공적인 사역도 이 문제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다. 형제들과의 어떤 개인적인 교제를 통해서도 내가 묵상해야 한다는 도전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묵상의 유익과 의미를 내게 가르치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매일 아침 자기 속 사람을 위한 양식을 얻는 것임을 나는 다른 어떤 일 못지않게 확신한다. 밥을 먹지 않으면 장시간 일할 수 없기에 우리 겉 사람이 아침에 맨 먼저 식사부터 하듯이 속 사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대로 우리는 속사람을 위해서도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그럼 속사람을 위한 음식은 무엇인가?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단지 성경을 읽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물이 파이프를 지나가듯 단지 성경이 우리 마음을 통과하는 데 그칠 것이다. 우리는 그 말씀을 상고하고 다시 한 번 깊이 숙고하고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적용해야 한다. 내 자신이 이 묵상으로부터 엄청난 영적인 유익과 회복의 유익을 얻었기에, 나는 아주 특별히 이 문제를 강조하며, 깊은 애정을 담아 그리고 엄숙하게 내 모든 동료 신자들에게 성경을 묵살하도록 간절히 부탁한다.
나는 전에 겪었던 것보다 더 크고 다양한 시련을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힘입어 평안 중에 잘 지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묵상하는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40년 이상 이 방법을 시도해 보았으니 이제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이 묵상의 삶을 강력히 추천할 수 있다. 영혼이 원기를 회복하고 행복해지면서 시작한 하루와 영적인 준비 없이 예배와 시련과 유혹과 맞닥뜨리는 하루는 얼마나 다른가!
(존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하라.P.198-201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