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설교

함창석
  • 1919
  • 2022-04-07 02:57:48
성경: 히브리서 11장 1-3절
설교: 균형이 잡힌 신앙생활

히브리서 11장 1-3절에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물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입니다.”라, 옛날 사람들도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으며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압니다.

신취시소망지사적실저 시미견지사적확거 고인재저신상득료미호적증거(信就是所望之事的實底 是未見之事的確據 古人在這信上得了美好的證據) 한문성경을 소개하는 것은 뜻이 정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믿음은 소망하는 것의 실제적인 밑바탕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확실한 근거이다. 선조들은 이러한 최상의 신앙을 가지고 있어 아름답고 훌륭한 신앙의 근거를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았다.”고 한다. 소망이 없으면 믿음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가 없고, 확실한 믿음의 근거가 없는 사람의 믿음은 가짜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가짜는 겉으로 보기에는 진짜와 똑같다. 그러나 형태는 같으나 내용은 다르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뚜렷한 근거 있는 신앙생활 때문에 훌륭한 신앙인으로 인정을 받았다. 믿음의 확실한 근거, 뚜렷한 근거란 무엇인가? 말과 행동의 변화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으나 확실한 근거는 내 개인의 인격이 신격을 어느 정도 닮아 있어야 한다.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하나님은 무한한 존재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적인 제한을 받고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다 제한을 받기 때문에 인간들의 인격을 초월하여 무한한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 인간들이 완전하게 닮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최대의 노력은 하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 사랑의 에너지와 내 자신이 하나님 닮은 사랑의 에너지가 만나서 핵융합이 이루어지면 엄청난 위력을 발산시킬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인간들에게 전달해 주는 唯一無二한 책이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문구나 문장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들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문구나 문장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치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는 것으로 착각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의 문구나 문장이 아니라. 문구나 문장이 가리키는 달을 발견해야 하는데 가리키는 그 달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도구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는 안테나이다. 십자가의 정신은 찾아볼 수 없는데 복음회복운동한다고 야단법석을 피우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 십자가 정신이 결여된 복음운동은 캠페인이지 순수한 복음운동은 아니다.

기독교의 전도란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 십자가의 정신을 알려주고 그 사랑을 본받고 따르게 하는 것이다. 단순히 예수만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 기독교의 교리이지, 복음 그 자체는 아니다.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될지언정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는 아니다. 내 자신의 확신에 찬 믿음으로 복음회복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짓이다. 내 믿음의 확신에 치우치면 비탈길에 미끄러져서 엄청난 죄악의 강으로 휩쓸려 내려간다. 내 신앙의 확신을 자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믿음을 내 자신이 확신해야 믿음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 확신이 없으면 어떤 것도 시작할 수 없다. 내 믿음을 실천에 옮기려면 확신에 찬 믿음이 있어야 한다. 자기 계발을 하는 사람들은 확신을 굳게 믿는 사람들이다. 확신이 없으면 나 개인적인 일은 실행할 수가 없다. 사적인 일이 아니라 공적인 일에는 사적인 확신에 찬 믿음을 배제해야 한다. 민주주의란 스스로 옳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체제가 바로 민주주의이다. 피차간에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들 사이에서 타협이나 협치가 이루어지겠는가? 내 자신의 확신을 포기해야만 민주주의를 따를 수 있다. 내 믿음생활을 독선으로 이끌고 나아가는 것은 수많은 생명을 짓밟은 독재자의 길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

우리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다. 신앙은 내가 소유하는 것이지만 존재하는 것은 나와 하나님 사이에 존재한다. 나와 너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우리 기독교의 신앙이다. 하나님의 작품의 정품은 70억이 넘는 인류를 보더라도 천태만상이다. 언제나 새롭게 만드시기에 똑같은 작품은 없다. 하나님은 결코 획일적인 똑같은 작품을 만들지 않으신다. 고로 믿음의 형태도 시대에 따라서 새롭게 발전해 간다. 하지만 우리 어리석은 인간들은 자신이 체험한 은혜와 신앙을 제일 중요시하고 표준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보수적인 신앙으로만 지키려고 한다. 하나님은 보수주의자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다. 보수는 진리가 아니다. 성령은 언제나 새롭게 하시는 영이다.

어제의 지식은 오늘은 무가치한 것일 수도 있다. 저는 학교에서 태양은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불덩어리라고 배웠다. 하지만 요즘 물리학자들은 불덩어리가 아니라고 한다. 태양은 핵융합으로 발생하는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라고 한다. 선조들의 신앙의 얼, 그 정신을 물려받지 않고 종교적 儀式이나 형태만 고집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0.001% 믿음과 99.999% 믿음의 량이 동일하다. 그러므로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면 0.001%의 신앙인을 무시하지 않고 존경하고 받들어 우러러보는 신앙인이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이다. 인간들은 자기 교만에 빠진 자를 상대하거나 대적할 수 없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상대하고 대적하신다. 이 세상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색깔을 자기와 동일시하려는 자들은 자기 믿음의 교만의 극치를 보여주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는 창조주 하나님의 영, 구세주 예수의 영, 보혜사 성령을 믿어야 한다. 지적으로는 진리를 추구하고, 진실한 양심으로, 진지한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정적으로는 순수한 정서로 순결한 삶을 이루고, 감화, 감동의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물적으로는 재능이나 은사를 살려 맡은바 자기직업을 잘 수행하며 효율적인 생산과 분배에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종교의 세속을 경계하고 경건을 이루며 정치의 독단을 경계하며 민주를 이루고, 학문의 표절을 경계하고 선구적이어야 하며 기술의 낙후를 경계하고 첨단을 이루어야 한다. 예술의 말초를 경계하고 순수화를 추구하고 유흥의 퇴폐를 경계하고 건전을 이루어야 한다. 시장의 사기를 경계하고 신용을 이루며 경제의 차별을 경계하고 공평을 이루어야 한다. 이와 같이 영적, 지적, 정적, 물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균형이 잡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평화롭고 자유로우며 행복한 삶을 이루고 가정, 직장, 교회를 비롯한 모든 공동체생활이 이루어지는 정치사회, 종교사회, 학문사회, 기술사회, 예술사회, 유흥사회. 시장사회. 경제사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민족사회, 인류사회,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역사, 하나님나라 완성이 시대적인 소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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