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박혀 희롱당한 예수

최세창
  • 1568
  • 2022-04-05 19:28:38
<마태복음 27:32-44>

32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33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 35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36거기 앉아 지키더라 37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42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43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1. 시작하는 말

진심으로 사랑하고, 희롱당하는 황당한 때가 있습니다. 생각하지도 않은 나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재수가 옴 붙듯 하다고 투덜댈 만도 합니다. 그러나 투덜대며 불평하고 원망하느라 자기 마음과 남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괴롭히는 것은 지혜로운 태도는 아닙니다. 때론 재수가 옴 붙듯 한 일이 영광스런 일이 되기도 하고, 놀라운 복이 되기도 합니다.
죄와 죽음과 멸망 아래 사는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주 예수님의 고난과 대속 제물의 길에, 본의 아니게 한 몫을 감당하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구레네 사람인 시몬이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사형수가 피투성이가 되어 지고 가는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 일은 영광스럽게도, 죄와 죽음과 멸망 아래 사는 인류를 구원하시는 주 예수님의 고난의 길에 한 몫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2.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조롱하는 사람들

주 예수님은 군인들에게도 희롱을 당하시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못박힐 십자가를 지시고, 레위기 24:14의 예언대로 예루살렘 성밖에서 처형되려고 끌려 나가셨습니다. 이 주 예수님의 그림자로, 교부들과 주석가들은 이삭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데 사용할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간 일을 들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기진맥진하며 가시던 예수님을 호송하던 군인들이 구레네 사람인 시몬을 보고 강제로 따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지고 갈 힘이 없는 것을 보고, 대신 지고 해골의 곳이라는 골고다까지 가게 했습니다. 시몬은 북아프리카의 중요한 도시인 구레네이자 오늘날의 리비아에 살던 유대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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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처럼 생긴 언덕인 골고다에 도착한 후에, 군인들은 일종의 마취제인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주어 마시게 하려고 했습니다. 이 인도적 행위는 유대의 관습이었는데, 주로 예루살렘의 경건한 여인들이 자원했습니다.
주 예수님은 쓸개 탄 포도주를 맛만 보시고,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최후 만찬 때,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제자들과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않겠다고 하신 마태복은 26:29의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또한,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극도의 고통과 극도의 치욕을 그대로 감수하신 것입니다.
드디어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런 후에, 그들 자신의 죄와 죄의 값인 필연적인 죽음과 영생의 구원 문제는 아랑곳없이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었습니다.
십자가형에 대해, 주전 106년에 태어난 로마의 정치가요 철학자인 키케로(Cicero:주전 106~43)는 인간이 행할 수 있는 형벌 중 가장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형벌이라고 했습니다. 극도의 고통과 극도의 수치심 때문에, 로마에서는 자국민이 아닌, 식민지인이나 노예나 반란자나 강도 같은 극악한 죄수에게만 행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죄수는 빨리 죽지 않았습니다. 7일간이나 못박힌 채, 매달려 있는 죄수도 있었습니다. 대개는 3일 정도 되면 미칠 것 같은 극도의 고통과 굶주림으로 탈진하여 죽었습니다. 그 고통과 치욕이 오죽했으면,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천 가지의 죽음으로 죽는다.”라고 하는 말이 있을 정도이었습니다. 때론, 못박힌 죄수의 다리를 큰 망치로 쳐서 빨리 죽게끔 했는데, 이 잔혹한 행위를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고 할 정도이었습니다. 죄수가 죽으면 매장해 주기도 했지만, 그대로 십자가에 방치하여 뭇사람에 대한 경고와 짐승들의 밥이 되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의로운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는 그 옷을 제비뽑아 나눈, 영적으로 죽은 군인들은 자기들이 하는 짓거리가 하나님의 예언에 맞아떨어지는 것임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시편 22:18을 보면,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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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포함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목숨을 버리시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서 멸망이나 구원은 아랑곳없이, 예수님의 옷 조각이나 더 가지려고 제비를 뽑는 그들의 모습은 얼마나 기막힌 대조입니까? 인류 구원을 위한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치욕과 고통은 아랑곳없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감투와 재물의 복만을 구하는 현대인들도 그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 옷을 제비뽑아 나눈 군인들은, 혹시나 무슨 일이 벌어질까 염려되어 거기 앉아 지키고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스러워하시는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라는 죄패를 붙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모욕과 희롱입니다. 그런데 실은 그들이 본의 아니게 진리를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이신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십니다.
그때에 집행된 십자가형이 또 있었습니다. 두 강도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우편과 좌편에서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님이, 강도들 사이에서 강도들과 같은 취급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보다 더 억울하고 부당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섭리라는 점에서 볼 때, 주 예수님이 행악자들 사이에서 운명하시는 것은 영예로운 죽음입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 극도의 치욕과 극도의 고통인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 예수님에 대한 행인들의 반응은, 기막혀서 말을 못할 정도입니다. 머리를 흔들며 주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모욕하는 행인들의 말은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라는 것입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는, 요한복음 2:19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를 왜곡한 것입니다. 그 말씀은, 주 예수님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행인들이 말씀만 왜곡한 것이 아니라, 의미까지 왜곡한 것입니다.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기 위해서 남의 말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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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의미를 모르는 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신을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빈정거리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며, 하나님에게서 버림받는 것임을 알 영적 지각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남의 일이나 문제나 불행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머리를 흔들며 모욕하거나 경멸하며 비아냥거리는 것은, 반드시 버려야 할 나쁜 습성입니다.
그 행인들과 달라도 너무 달라야 할 유대교 지도자들이, 어떠했는지 압니까?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못박히신 예수님을, 그 행인들과 함께 희롱했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영적으로 몰지각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남들을 구원한 기적의 치유와 축귀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사단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왜곡하여 비방한 것입니다. 못박힌 이제는 사단의 도움이 끝나서, 제 한 몸도 구원할 수 없다고 희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사단의 종이라고 희롱하는 것입니다.
천박하고, 영적으로 무지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희롱의 소리가 자기들을 희롱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희롱의 소리는 실상 구원의 진리입니다. 주 예수님은 자신을 버려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고, 그 일을 결정적으로 수행하시는 것입니다. 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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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영적 무지와 영적 몰지각을 볼 때, 정말 중요한 것은 목사나 신학자나 신학교 교수라는 신분이 아니라 성령 충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못박힌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믿겠다고 계속 희롱했습니다. 또,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얼빠진 메시아 참칭자라고 비아냥거리는 겁니다. 시편 22:8을 보면,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희롱의 대열에 두 강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 강도는 나중에 회개하고, 못 박힌 주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누가복음 23:42 이하를 보면,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믿음으로 죄 사함과 거듭남과 자유와 평화와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었습니다. 인류의 모든 것을 동원해도 안 되는 구원을 얻은 것은, 주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형은 한순간에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사형수로 하여금 극도의 고통과 치욕으로 미칠 것 같이 괴로워하면서 서서히 죽어가게 하는 끔찍한 처형입니다. 주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채,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강도들에 이르는 갖가지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경멸과 모욕을 당하시고, 희롱과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부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써 인류 구원의 대업을 완수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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