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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연재 97회 2. 가. 하늘의 예루살렘의 외형(21:9-17)
최세창
- 1261
- 2022-04-02 20:08:57
하늘의 예루살렘이 속한 새 하늘과 새 땅의 출현에 관한 환상의 계시에 대해 기록해 온 요한은, 여기서는 하늘의 예루살렘에 관한 환상의 계시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 부분은 하늘의 예루살렘의 외형(21:9-17), 하늘의 예루살렘의 재료(21:18-21), 하늘의 예루살렘의 생활(21:22-27), 그리고 하늘의 예루살렘의 음식(22:1-5)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 하늘의 예루살렘의 외형<21:9-17>
요한은 이 부분 곧 ‘하늘의 예루살렘의 외형’을,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로 시작한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1:1의 주석을 보라.) 중 하나]는 17:1의 주석을 보라.
심판을 받을 큰 음녀 곧 큰 성 바벨론을 소개한 천사가, 본절에서는 어린양 그리스도의 신부(아내)인 하늘의 예루살렘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것은 그 큰 음녀 바벨론과 어린양 그리스도의 신부인 하늘의 예루살렘을 대조시키기 위한 것이다.①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는 환상 중에 그 천사가 요한에게 와서 말한다는 것이다.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의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는 19:7-9의 주석을 보라.
그 천사가 한 일에 대해, 요한은 【10】[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에스겔 40:2의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를 연상하게 한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는 17:3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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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이하에서는 요한이 광야로 이끌려 가서 심판을 받아 멸망할 큰 음녀인 큰 성 바벨론을 보았으나, 이번에는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21:2의 주석을 보라.)을 본다. “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성취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R. H. Mounce)이며, 장차 영광을 받게 될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다(A. Johnson, W. Hendriksen).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대해, 요한은 【11】[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의 [영광](독산, δόξαν)은 1:6의 주석을 보라.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는 영광의 하나님께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임재하신 것을 의미한다(참조: 15:8, 겔 43:5). 리스트(M. Rist)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전에 계실 때에 영광 또는 임재의 연기로 가득하였다(15:8). 이제 거룩한 성이 내려오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현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영원한 빛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성취이기도 하다(사 60:1-2, 19).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17:4, 18:12) 같고 ‘벽옥’(4:3의 주석을 보라.)과 ‘수정’(4:6의 주석을 보라.) 같이 맑더라]의 [빛]은 포스테르(φωστὴρ)이며 {‘발광체’, ‘빛남’, ‘광휘’, ‘광채’, ‘훌륭함’(빌 2:15) 등을 의미한다. 이 낱말은 “하나님께서 땅 위에 빛을 주시기 위해 하늘의 궁창에 두신 빛과 해와 달의 창조 설화에 사용된 것과 같다”(W. Barclay). 또한, 이 낱말은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단 12:3)의 ‘빛나다’로 번역된 말의 70인역과 같다. 본래 광채가 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尾山令仁).}(빌 2:15의 주석).
어린양 그리스도의 신부(아내)인 하늘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인 성도들은, 지상에서도 빛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그 빛을 받아 도덕적 및 영적으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세상의 빛이 되었었다(마 5:14-16, 살전 5:6. 참조: 엡 5:8-9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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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요한은 【12】[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라고 하였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는 하늘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성 전체의 범위를 한정하고, 성밖의 사람들과 구별하고, 침략자로부터 성과 시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참조: 겔 48:31-35). “그런데 지금 하늘나라에서는 그러한 위험이나 불안이나 위협이나 침략이나 부정한 것이 일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성도들을 보호할 성벽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종말적 최후 심판의 형벌의 장소인 ‘유황 불 못’과 구별하기 위해서 그 사이에 성벽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유대교에는 지옥과 낙원 사이에 성벽이나 구렁이 있다고 생각했다(눅 16:23-26 참조)”(김철손).②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는, 열두천사가 하늘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열두문을 통제하여 출입을 제한하는 것을 나타낸다(사 62:6).③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는, 에스겔서에 나타난 종말론적 예루살렘 성의 환상과 연결되는 것이다(겔 48:30-34).
이 구절에서 중요한 것은 ‘12’(열두)라는 숫자이다. 본서에서 ‘12’는 ‘하나님의 백성’ 또는 ‘하나님의 나라’, ‘구원받은 총 수’ 등을 상징한다.
여기의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7:5-8)은 혈통상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모든 백성을 의미하는 것이다.④ 14절을 미루어 볼 때, 구약 시대에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약속을 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곽의 문들의 위치에 대해, 요한은 【13】[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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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의 순서는 에스겔 42:16-19을 따른 것인데, 에스겔 48:16-19에는 북편, 남편, 동편, 서편의 순서로 기록되어 있고, 에스겔 48:31-34에는 북편, 동편, 남편, 서편의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 순서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이다.
물론, 여기의 문들은 지상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환상 중에 보인 하늘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성곽에 있는 문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성곽의 기초석에 대해, 요한은 【14】[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라고 하였다.
12절의 경우처럼, [어린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마 10:1-4, 행 1:26)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따라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한다(참조: 눅 9:12, 요 20:24, 엡 2:20).⑤
열두지파와 열두사도의 이름이 병행되어 나열된 것은 구약 시대의 교회와 신약 시대의 교회의 통일성을 암시하는 것이고, 하늘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 곧 하늘의 교회가 하나의 신령한 교회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요한은 자신에게 말하는 천사에 대해, 【15】[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라고 하였다.
이 구절 이하 17절까지의 하늘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척량은 에스겔 40:3 이하를 반영하는 것이다.
11장의 성전 척량은 요한이 직접 하는데 비해, 이 구절 이하의 성전 척량은 천사가 직접 한다. 이 성전 척량은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게 보존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에스겔서의 성전 척량이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처럼(겔 43:12),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히 거하는 성의 거룩함과 어린양의 신부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완전한 성취를 나타내는 것이다(A. Johnson, R. H. Mounce, P. E. Houghes).
[금 갈대]는 11:1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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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요한은 【16】[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라고 하였다.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에스겔 선지자의 묘사와 같다(겔 42:16-20, 45:2, 48:16-17, 20). [네모가 반 듯]한 것은 “안정, 정의 등을 표시하고, 그러므로 유대인에게는 완전을 상징했다”(이상근).
[일만 이천(12000=12×1000: 완전 또는 구원의 수와 많음을 상징하는 수를 곱한 수) ‘스다디온’](σταδίων)은 약 2200㎞이다.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는 각각 약 2200㎞나 되는 완전한 입방체라는 뜻이다.
이 규모에 대해 (1)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나타내는 완전한 숫자라는 설(C. L. Morris), (2) 성이 12각형으로 되어 있어 12×12000을 하면 144000이 되는데, 이 숫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수라는 설(Farrer),⑥ (3) 하늘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하늘의 신령한 교회)의 완전함과 거대함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⑦ 등이 있다. (3)설이 가장 그럴 듯하다.
하늘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성곽의 척량에 대해, 요한은 【17】[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라고 하였다.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πηχών)이니]는, 하늘의 예루살렘의 성곽의 두께가 약 65m라는 것이다. 물론, 이 숫자 역시 상징적인 것이다. 즉, 144는 완전 또는 구원의 수 ‘12’를 제곱한 수로 볼 수도 있고, 12지파와 12사도를 곱한 수로 볼 수도 있으므로, 구약과 신약 시대를 망라하여 완전한 구원을 받은 모든 성도들의 안전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⑧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는 사람의 척량을 따라 천사가 척량한 것이라는 뜻이다(H. Kr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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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R. H. Charles, A. Plummer, G. E. Ladd, “Kiddle”(in 이상근), R. C. H. Lenski, H. Kraft, M. Rist, A. Johnson, 이상근.
2) 김철손, 요한계시록.
3) G. E. Ladd, R. H. Mounce, C. L. Morris, A. Johnson.
4) A. Barnes, R. H. Mounce, A. Johnson, W. Hendriksen, W. Barclay, P. E. Houghes, 黑崎幸吉, 박윤선, 김철손, 요한계시록.
5) C. L. Morris, A. Johnson, R. H. Mounce, G. E. Ladd. 이상근.
6) in 강병도 편.
7) R. H. Mounce, G. E. Ladd, “Beckwith”(in 강병도 편), A. Johnson, 박윤선.
8) 참조: A. Johnson, C. L. Morris, R. H. Mou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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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432-437.
newrema.com(T. 426-3051)의 필자의 저서들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