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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 집사와 종교다원주의
최세창
- 2285
- 2022-03-29 20:17:17
<사도행전 6:8-15>
8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새 10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11사람들을 가르쳐 말 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1. 시작하는 말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믿음으로 죄 사함과 거듭남과 자유와 평화와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었다고 해서,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진다고 해서, 실수나 잘못이 없는 완전무결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한 사도들은 믿는 사람이 더 많아졌기 때문에, 매일의 구제에 헬라파 과부들을 빠뜨리는 실수를 했습니다. 그로 인해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는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열두 사도가 교인들에게 말씀을 제쳐놓고 구제나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않으니, 그런 일을 맡을 만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을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했습니다. 열두 사도는 기도와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겠다고 했습니다. 온 무리가 기뻐하여 일곱 명을 택했고,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했습니다. 그 선택된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 바로 스데반입니다.
2. 스데반의 선교
구제나 섬기는 일을 위해 뽑힌 일곱 사람 중에서 으뜸가는 스데반에 대해 의사요 역사가인 누가는,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라고 했습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의 유무와 상관없이, 인간을 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입니다. 징계나 채찍이 사랑인 사람도 있습니다. 히브리서 12:6을 보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을 모르거나, 보다 더 값진 것을 모르는 인간에 의해 외면될 때도 있고, 거부될 때도 있고, 화가 될 때도 있습니다. 마치 돈이 뭔지 모르고, 먹는 것만 아는 아기에게 지폐를 주면 내버리고, 동전을 주면 삼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받으려면, 하나님을 믿고 순종케 하는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성령의 은사인 지혜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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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 중 은혜는 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현된 구원의 사랑이며, 그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이자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특수한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면, 일반적인 은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은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만일 회개한 탕자가 아버지에게서 많은 선물을 받는 은혜를 받았으나 용서를 받지 못했다면, 그 선물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인간이 죽음과 멸망으로 끌고 가는 죄악을 사함 받는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반적인 은혜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스데반은 구원의 은혜와 일반적인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은혜 중 하나인 권능도 충만했습니다. 성령 충만으로 인한 재능과 능력이 충만했습니다. 스데반은 잘 믿는 사람답게 충만한 은혜와 충만한 권능을 사욕이나 자기 뜻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했습니다.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한 것입니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기사”의 헬라어 테라타(τέρατα)는 주로 자연계에 보이는 기적들이고, “표적”의 헬라어 세메이아(σημεία)는 주로 인간계에 나타나는 기적들을 의미합니다.
자연계에 나타나는 큰 기적들이나 인간계에 나타나는 표적들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으로 생기는 초지각적이며 초자연적인 현상입니다. 기사 중 기사, 표적 중 표적은 불완전한 세계와 죄 아래 사는 인간이 십자가의 대속제물이 되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는 영적 사실입니다. 고린도전서 2:12을 보면,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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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J. Wesley)의 일기의 한 내용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세인트 토마스 교구에서, 미쳐 날뛰는 젊은 여인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고, 자신을 몹시 괴롭히는 그녀에게 말을 해 주고 싶은 강한 욕망이 생겼습니다. 말을 시작하자 그 여인은 잠잠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님은 당신을 구원하실 능력이 있는 분이고, 당신을 구원하실 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여인의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의 기적들은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도, 파악되지 않은 자연 현상이나 우주의 기운이나 우연이나 마법이나 주술이나 부적이나 최면술이나 심리적인 현상으로 왜곡하거나 곡해합니다.
난치병과 불치병, 그리고 인생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치유와 축귀의 기적을 행하고, 복음으로 위로와 힘과 영생의 구원을 얻게 하는 스데반을 공격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의사요 역사가인 누가는,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새”라고 했습니다.
각양각색의 회당에서 온 사람들이, 스데반과 변론했습니다.
“리버디노”(Λιβερτίνων)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주전 63년에 폼페이의 포로가 되어 로마로 끌려갔다가 자유민이 된 유대인들과 그 후손이라고 합니다. 지명이라고도 합니다.
“구레네인”(Κυρηναίων)은 북아프리카의 중요한 다섯 도시 중 하나에 사는 사람들이며, 유대인들도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인”(’Αλεξανδρέων: 복수형)은 애굽의 대도시인 알렉산드리아의 사람들이며, 그곳에는 유대인들도 살고 있었습니다.
“길리기아”(Κιλικίας)는 소아시아의 동남부 연안 지대이며, 그 수도는 바울의 고향인 다소이었습니다.
“아시아”(’Ασίας)는 소아시아의 서부 해안 지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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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은 쉬나고게스(συναγωγής)이며 ‘같이 모이다’라는 뜻입니다. 화이트로우(T. Whitelaw)와 렌스키(R. C. H. Lenski)는 당시의 예루살렘에는 480개의 회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회당 제도는 유대 민족의 초기인 모세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회당에는 회당장과 장로들이 있었고, 이곳에서 안식일의 예배 외에 아이들 교육도 했습니다. 안식일 예배 때에는 율법을 봉독하고 해석하며 기도했습니다. 회당장의 허락 아래 나그네인 순회 랍비들도 자유로이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했다는 것은 헬라파 유대인들이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설교한 스데반을 물고늘어졌다는 뜻입니다.
유대의 땅이 아닌 이방의 여러 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은 유대교인들이었지만, 이방인들의 다양한 종교들과 우상 숭배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 헬라파 유대인들은 스데반이 전하고 가르치는 하나님의 복음이, 유대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들과 차별화된 내용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의 유대교 신앙이나 신학의 관점으로는, 스데반의 복음 설교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신성 모독이자 혹세무민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복음이 아닌 화음이었습니다.
복음 설교를 한 스데반을 물고늘어지던 유대인들은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기 때문에, 능히 당하지 못하자 비열한 음모를 꾸몄습니다. 사람들에게,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다고 거짓말을 하라고 시켰습니다. 유일신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스데반을 모함하려고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사주한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스데반을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렀습니다. 백성들까지 충동질해서 데려 온 것은,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백성들과 공회 사이의 반목과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의 비열하고 사악한 처사는
주도면밀했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도면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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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듣고, 열두 사도의 기사와 이적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했더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대신에 믿고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위증하는 자들은, 스데반이 예루살렘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했다고 거짓 증언을 했습니다. 또, 스데반이 나사렛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을 헐겠다고 한 말을 들었고, 모세가 전해 준 규례를 고치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거짓 증언을 했습니다.
위증하는 자들의 왜곡된 증언을 듣는 스데반의 얼굴은, 분노와 불안과 초조와 두려움에 질린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았는데,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천사의 얼굴과 같은 스데반의 얼굴을 본 교권자들은 충격은 받았지만, 회개할 만큼 감동적인 은혜는 받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시기심과 율법주의적 선입관 및 고정 관념입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다종교, 다문화 시대에 기독교만이 구원이 있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산 정상은 하나이나 등산로는 다양한 것처럼, 모든 종교는 구원이 있다고 하는 종교다원주의신학이 있습니다. 첨단 신학이라고 하지만, 실상 원시 시대부터 구원을 표방하는 종교는 다원화 현상이었습니다.
구원의 방도가 있다면, 메시아이신 주 예수님이 오실 리가 없고,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신다는 약속도 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약속대로 오신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이 구원의 복음은 믿음으로 죄 사함과 중생과 자유와 평화와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물론, 타 종교의 종교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스데반은 타종교들과 대화는 했지만, 구원의 복음에 대해 타협하거나 혼합하거나 절충하거나 영합하지 않았습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들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 / 설교집 34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