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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연재 100회 라. 하늘의 예루살렘의 음식(22:1-5)
최세창
- 1252
- 2022-04-24 03:30:16
하늘의 예루살렘의 생활에 관한 환상에 대해 기록해 온 요한은, 이제는 그 음식에 관한 환상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요한은 이 부분을 【1】[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로 시작한다.
이 구절은 창세기 2:10-15과 에스겔 47:1-12을 연상하게 한다(참조: 시 46:4, 슥 14:8, 욜 3:18).
[저]는 천사(21:9)로서 요한에게 마지막 환상을 보여 준다.
[수정(4:6의 주석을 보라.)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의 [생명수의 강]은 7:17의 주석을 보라.
[내게 보이니]는 새 환상의 전개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과 및 어린양] 그리스도의 [보좌로부터 나]는 [생명수의 강]에 대해 (1) 불멸의 약속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G. E. Ladd), (2)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주시는 풍성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W. Barclay), (3) 성령을 의미하는 것(요 7:38-39)이라는 설,① (4) 영생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설② 등이 있는데,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인 (4)설을 취해야 할 것이다.
생명수의 강에 대해, 요한은 【2】[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에스겔 47:12의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를 연상하게 한다.
[생명수의 강]이 “하늘의 은하수처럼”(M. Rist) [길 가운데로 흐]르고,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의 [생명나무]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서 열매를 따먹을 수 없게 되었던 생명나무를 가리킨다(창 3:21-24). 그런데 구원받아 천국 백성이 된 이제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참조: 겔 47:12).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는, 생명나무의 생명력이 왕성하여 영생을 의미하는 열매가 풍성함을 의미한다(R. H. Mounce, A. Johnson, C. L. Morris). 생명나무는 왕성한 생명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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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다 완벽하게 아름답고 탐스럽고 다양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숫자 ‘12’([열두 가지])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 ‘구원받은 총 수’ 등을 상징한다는 점을 미루어 “생명나무를 영생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박윤선)으로 볼 수도 있다.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의 [소성하기]는 테라페이안(θεραπείαν)이며 ‘고치다’, ‘섬기다’, ‘봉사하다’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말은 영생을 얻은 천국 시민들이 질병이나 귀신들림이나 부족함이나 죄와 죽음의 고통이 없는 완전한 복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③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하늘나라에서 성도들이 더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하는 해석”(김철손)④과 “죄로 말미암아 상한 만국 백성들이 고침을 받는다고 하는 해석”(이상근)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계속해서 요한은 【3】[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라고 하였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는 스가랴 14:11의 “사람이 그 가운데 거하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안연히 서리로다”를 연상하게 한다.
[저주]는 카타테마(κατάθεμα: 히브리어로는 케렘, cherem)이며 {‘인간의 소유나 용도에서 제외된 것’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단절된 어떤 것’과 같은 개념이다”(R. C. H. Lenski). 흠정역(AV)에서는 ‘저주받은 것’ 그리고 ‘빛의 왕국으로부터의 파문’ 등의 뜻으로 번역되었다. 구약성경의 번역자들은 이 낱말을 ‘멸망을 위해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지시하는 데 사용하였다.}(롬 9:3의 주석).
천국에서는 어떤 형태로든지 다시 저주받는 일이 없고, 오직 복만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는, 천국에는 저주가 없는 대신에 영원한 사랑의 본질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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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의 그는 일체로서의 하나님과 어린양 그리스도를 의미하고(G. R. Beasley-Murray), [종들](둘로이, δούλοι)은 천국의 성도들을 의미하며, [섬기며](라트류수신, λατρεύσουσιν)는 예배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섬기며]에 대해, 어떤 학자들은 새 예루살렘에 참여하는 모든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어린양을 예배하고 경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⑤ “이것은 가장 존귀한 직책이다”(J. Wesley).
하나님과 어린양 그리스도께 경배하는 하늘나라의 성도들에 대해, 요한은 【4】[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라고 하였다.
천국 성도들 곧 하나님의 종들에게 주어진 최고 최대의 복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마 5:8, 히 12:14, 요일 3:2). 본래 하나님이 너무 거룩하셔서 인간이 그 얼굴을 볼 수 없다고 하였고, 보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였다(출 33:20, 23. 참조: 창 32:30).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라고 말씀하셨다(요 14:7, 9). 그런데 하늘의 예루살렘에서는 성도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의 ‘이름’(오노마, ὄνομα: 2:3의 주석을 보라.)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14:1)는 3:12의 주석을 보라.
요한은 천국의 밝음에 대해, 【5】[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라고 하였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는 21:23의 주석과 21:25의 주석을 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는, 하늘의 예루살렘에 거하는 성도들이 영원무궁토록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할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의 왕 노릇은 통치권이나 지배권이 아니라, 왕 같은 영광과 영예인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영원히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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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J. F. Walvoord, “Swete, Allo”(in 박윤선), 黑崎幸吉.
2) F. B. Meyer, “Hadorn”(in 박윤선), W. Hendriksen, A. Plummer, C. L. Morris, R. C. H. Lenski, R. H. Mounce, M. Rist, A. Johnson, 이상근, 박윤선. 김철손, 요한계시록.
3) 참조: R. H. Mounce, G. E. Ladd.
4) 김철손, 요한계시록.
5) G. E. Ladd, C. R. Erdman, A. Johnson, P. E. Houghes, C. L. Morris, 黑崎幸吉,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6) 필자의 요한복음 14:7, 9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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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444-447.
newrema.com(T. 426-3051)의 필자의 저서들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4권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