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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망 예수그리스도(메시아)
함창석
- 1243
- 2022-04-13 16:49:39
(부활 후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부활
復活
함창석
너희는 열매를 맺고 모든 잎들을 떨어뜨리고
창조의 섭리를 따라 살아가며
숨결을 거두는 것처럼 한 잠으로 들고 있었지
너희가 겨우내 죽은 줄로 알았던 산천초목이
창조의 섭리를 따라 살아오며
봄날이 오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있었지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빈 무덤에서 다시 살아 나셔 부활을 하시었다
하나님 아들로 오신 예수는 구세주 되시었고
메시아 구속사 절정에 오르며
그 제자들에게 나타나 다시 사심을 확증 했지
Sandol Method
그 후 예수님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제자들에게 다시 자기를 나타내셨는데 그 나타내심은 이렇다.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고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그 밖의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그때 시몬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나서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가겠다고 따라 나섰다. 그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으나 그 날 밤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날이 밝아 올 무렵, 예수님이 바닷가에 서 계셨으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얘들아, 고기를 좀 잡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이 말씀대로 했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그때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다!" 하고 말하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주님이라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르고 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고기가 든 그물을 끌면서 배를 저어 육지로 나왔다. 그들이 나갔던 곳은 육지에서 100미터도 안 되는 곳이었다. 제자들이 육지에 올라와 보니 숯불 위에 생선이 놓여 있었고 빵도 준비되어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금 잡아 온 고기를 좀 가져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가 그물을 육지로 끌어올려 놓고 보니 그물에는 큼직큼직한 고기가 153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이와 같이 고기가 많아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그분이 주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예수님은 빵을 집어 제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생선도 그렇게 하셨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이것이 세 번째였다.(요 21:1-14)
사전적인 의미로 부활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이다. 쇠퇴하거나 폐지한 것이 다시 성하게 되거나 그렇게 함이다. 기독교 성경에 십자가에 못 박혀 세상을 떠난 예수가 자신의 예언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일이다. 부활은 한 번 행하여지지 않게 된 것을 다시 한 번 행하여지도록 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세상을 떠난 예수가 자신의 예언대로 사흘 만에 구주 그리스도로 되살아난 일이다. 톨스토이가 지은 장편소설이다. 세계적 명작의 하나이다. 공작 네플류도프가 여주인공) 카추샤를 유혹하였으나 뒤에 양심에 가책되어, 창부로 전락한 그를 갱생시키고 자신도 종교적인 사랑에 의하여 부활했다는 줄거리이다. 죄악과 허위에 찬 사회를 통렬히 비판했다.
復자는 뜻을 나타내는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와 음을 나타내는 글자 复(복)이 합하여 「돌아오다」, 「다시」를 뜻한다. 复(복)은 아래 위가 같은 모양이고 중배가 부른 그릇과 발의 모양과를 합한 글자이며 본디 온 길을 다시 돌아가는 일,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는 가는 일, 復(부)는 오가는 일, 나중에 돌아가다→돌려보내다→거듭하다→다시→또 따위의 뜻으로 썼다. 复자는 성을 되돌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돌아가다’나 ‘돌아오다’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复자 이미 ‘돌아오다’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 彳자를 더한 復자는 ‘(길을)되돌아오다’라는 뜻을 좀 더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 復자는 후에 ‘회복하다’라는 뜻이 파생되었는데, 몸이 아팠다가 낫는 것도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活자는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을 나타내는 舌(설→활)로 이루어진다. 活(활)은 물이 바위에 부딪치며 물결이 합치고 하여 소리를 내면서 힘차게 흘러가는 것, 전하여 힘차게 활동하는 일을 뜻한다. 舌자는 뱀의 혓바닥을 그린 것으로 ‘혀’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活자는 혀(舌)에 수분(水)이 있다는 의미에서 ‘살아있다’를 뜻하게 된 것으로 해석하곤 한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舌자가 아닌 ‘원활하다’라는 뜻을 가진 ‘氏+口(괄)’자가 쓰였었다. 이것은 ‘물의 흐름이 원활하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물의 흐름이라는 것은 몸속 혈액이 원활히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나 소전에서는 글자의 조합이 바뀌면서 해석 역시 달라졌다.(디지털 한자사전 e-한자)
부활은 죽은 자가 다시 생명을 얻어 되살아나는 것을 말한다(요 6:39; 고전 15:12-13). 구약 시대에는 부활 사상이 그리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욥이나 다니엘 선지자(욥 19:25-27; 단 12:2-3, 13) 그리고 다윗(시 16:9-10; 17:15; 71:2), 고라 자손(시 49:15), 아삽(시 73:24), 이사야(사 26:1, 19), 호세아(호 6:2; 13:14) 등이 부분적으로나마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부활 사상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 신구약 중간기에 오면서 ‘누가 부활하는가?’, ‘어떤 모양으로 부활하게 되는가?’ 등의 논제들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등 부활에 대한 좀 더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생각들이 나타나게 된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부활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지니고 있었지만(요 11:24), 예수님의 제자들의 경우처럼 주님의 부활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었다(마 16:21-22; 막 8:31-33; 9:9-10; 16:14; 눅 18:33-34). 더욱이 유대 종교계에서는 부활을 절대 부인하는 사두개파가 있었는가 하면 철저하게 부활을 인정하는 바리새파가 존재했었다(마 22:23). 원어이해로 (아나스타시스) - ‘일어나다’는 뜻의 헬라어 ‘아니스테미’에서 파생된 말.(마 22:31; 행 1:22; 롬 6;5; 고전 15:12; 히 6:2; 벧전 3:21). (에게르시스) – ‘다시 살리다’, ‘깨우다’는 뜻의 헬라어 ‘에게이로’에서 파생된 말(마 27:53). (엑사나스타시스) – ‘일으키다’는 뜻의 헬라어 ‘엑사니스테미’에서 파생된 말(빌 3:11). 성경에서는 거의 대부분 ‘아나스타시스’가 사용되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이룬다(행 2:23-24; 10:39-41; 롬 1:4). 그분의 부활은 역사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실재한 객관적이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편,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이 참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그분의 인성을) 확인시켜 주는 동시에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는 참 하나님이심을(그분의 신성을) 보여 주는 사건이기도 하다(롬 1:3-4; 계 1:18). 이 같은 그리스도의 부활은 시편에 예언되었고(시 16:10-11; 행 13:34-35), 사도들에 의해 전파된 것이자(행 2:32; 3:15), 서신들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이다(롬 10:9; 고전 15:4; 벧전 1:3). 그리고 부활은 그리스도 자신의 약속이자(요 6:39-40), 당신이 친히 그리고 미리 알리신 메시지다(마 16:21; 17:23; 20:19; 27:63; 막 9:9-10; 요 2:19-22). 그리스도는 스스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26)라 하셨다. 실로, 예수님은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위해 부활하셨다(롬 4:25). 그분의 부활은 우리 신자들의 부활의 보증이요(롬 6:5; 8:11), 성도들이 마지막 날 부활할 것에 대한 일종의 전조다(마 27:52-53). 이 같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을 것이며(고전 15:17), 참으로 불쌍한 존재가 될 것이다(고전 15:19).(가스펠서브, 부활, 라이프성경사전, 2006)
십자가 없이 면류관은 없는 것이다. 십자가의 고난, 죽음, 희생 없이 부활의 승리, 영광, 기쁨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의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이 제자로 부름 받은 성도들에게 생활화가 되는 것이 신앙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복이다. 새 하늘, 새 땅, 새 역사 즉 그리스도 예수의 세계, 하나님나라의 완성을 소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