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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을 열매를 팔지 않아" 출판콘서트
신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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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8 20:47:11
2022년 4월 24일(주일), 오후 3시 30분, 신생교회
“존영(尊靈)이시여!
단기 2354년 4월 7일 한국농어촌공사 고양지사장은 금년 농사 때를 맞아 오천여 농업인과 임직원은 통수에 앞서 양곡 이가순 선생의 관개송덕비 전에서 정성을 다하여 주과포(酒果脯)를 차려놓고 감히 고하나이다. 평생 나라를 위해 중국, 러시아 국내 등지에서 독립운동과 교육 사업을 하시고 노년에 이곳 행주벌 황무지에 오셔서 한해(旱害)와 수해(水害)의 고통 속에서 굶주리는 백성을 위하여 베푸신 위대하고 고귀한 수리관개 시설의 창업을 하시어 농민을 잘 살게 하여주셨습니다.
존영(尊靈)이시여!
금년 한 해 통수가 원활하고 재해없이 풍년이 들게 도와주시옵고 농어촌공사와 농업인 가정에 평안과 행복이 깃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이 되어 선친의 고향인 송화군(松禾郡) 대야리(大也里) 방아다리 마을에 선조와 후손에게도 이 소식 전해지게 하옵소서. 우리 농업인 모두는 선생의 높은 뜻을 받들어 정성을 다하여 조합을 더욱 발전시키겠습니다. 고양시에도 화합과 사랑으로 풍요로움이 깃들게 보살펴 주시옵소서.
존영(尊靈)이시여!
삼가 정성으로 그 은혜를 보답코저 하오니 흠향(歆饗)하시옵소서”
고양시 농민들은 매년 4월 7일 행주양수장에서 한 해 농사의 풍요를 바라는 고유제를 갖고 첫 통수식을 할 때 이가순 장로, 의사 이원재 부자(父子)를 ‘존영(尊靈)’으로 부른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평전 제목을 『영웅은 열매를 팔지 않아』로 정했다.
이 책은 2009년 9월에 고양시씨족협의회에서 ‘이가순 선생’을 네 번째 ‘자랑스런 고양인’으로 발표한 것에서 출발했다. 하마터면 세상에 영원히 묻힐 뻔 했던 이야기이다. 이가순기념사업회가 조직되었다. 일산호수공원에 커다란 빗돌을 세워지고, 수로 옆 농로가 ‘양곡길’로 개명되었다. 호수공원까지 양곡길을 따라 시민걷기 행사가 있었다.
필자는 감리교회 장로인 이가순, 이원재(강릉중앙교회 장로, 공덕교회 장로, 능곡감리교회 설립) 부자를 더 가까이서 만나고 싶었다. 그들의 사랑, 인간관, 가치관, 그리고 역사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이리저리 흩어지고 묻혀있는 행적의 파편을 찾아 다녔다. 명백한 사실이 있다. 두 부자(父子)는 3•1운동을 같이 원산 주도했던 상리교회 담임목사 정춘수 감독이 친일 앞잡이고 변절하는 통한의 시절에도 죽는 날까지 애국애족의 실천을 멈추지 않았다. 연해주 불라디보스톡, 만주 하얼빈, 원산, 강릉, 특히 고양군에서의 족적은 뚜렷하다.
이가순은 황해도 사람들의 교육입국 정신을 실천했다. 원산 3.1만세운동으로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르고도 원산에서 대성학교를 세워 젊은이들을 가르쳤다. 82일간 부두노동자 파업을 지원하고, 수해구호단체를 이끌며 빈민의 대변자로 살았다.
이원재는 원산 구세병원 근무를 시작으로 하얼빈 고려병원, 강릉 관동병원, 서울 금강병원을 운영하며 민중의 고통을 치료했다. 한인 민회 회장으로 민족운동의 중심에 섰다. 동서 박정욱 의사(醫師)를 하얼빈으로 불러들였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장인 노백린 장군의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이들은 4년 동안 원산과 강릉신간회 대표로 지도력을 발휘했다.
두 부자는 66세와 47세에 서울(고양군)에 이주하였다. 자녀들의 고등학교와 대학교육을 등한시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남은 생명과 힘을 쏟아 민족을 위해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궁리하다가 1930년대 중반부터 피폐해진 농촌경제 자립을 위해 살기로 뜻과 재원을 모았다. 무엇보다도 기독교 신앙은 숨은 재원이다. 이들을 애국지사 혹은 의사(醫師)로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가순관개송덕비는 행주대첩비 처럼 영웅의 표상이 되었다. 부모는 자녀에게 생활로 가르쳤다. 정트리오의 어머니는 “너희 할아버지는 일흔 살이 넘어서도 산을 뚫고 물길을 냈어”라는 말로 경쟁에 힘들어 하는 자녀들에게 국위를 선양하는 정신으로 음악하기를 권유했다. 후손들은 이런 정신으로 피나는 노력으로 한국의 이름을 빛냈다.
영웅은 황무지를 개간하고 옥토를 만들어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건국의 기초를 만들었다. 이승만(조봉암) 보다 15년 먼저 실제로 농지개혁을 하였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빛나는 업적이다. 영웅이라는 호칭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존영(尊靈)으로 불러 주는 게 맞다. 이제 새로운 영웅을 기다리며 두 분 영웅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2022년 4월 일
신기식
자료를 제공해 주시고 고견을 주시고 출판을 도와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