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 豫定

함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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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17 03:22:52
예정
豫定

함창석

예정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나 해야 할 일을 미리 정하거나 생각함이다. 이제부터 할 일에 대하여 미리 정하여 두거나 미리 예상하여 두는 것이다. 비슷한 말로 예산, 예상, 계획, 작정 등이다.

豫자는 「예」의 본음은 「여, 서」이다. 象(상 코끼리)과 음을 나타내는 予(여 예)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코끼리가 자신이 죽을 때를 미리 알고 무덤을 찾아간다고 한다. 予자는 실패에 줄이 감긴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여→예’로의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코끼리가 일찍 사라져서인지 한자에는 象자가 쓰인 글자가 그리 많지 않다. 豫자는 象자가 들어간 몇 안 되는 글자 중 하나로 ‘미리 예측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코끼리는 자신이 죽을 것을 미리 알고 무덤을 찾아갔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해석과 코끼리는 본래 의심이 많은 동물이기 때문에 미리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는 해석이 있다. 定자는 뜻을 나타내는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음을 나타내는 글자 정(正의 고자)이 합하여 이루어진다. 正(정 바르다→정돈하다)과 사당이나 집 안(갓머리(宀 집, 집 안)部)의 물건을 정돈하여 넣기 위해 자리를 정한다는 뜻이 합하여 「정하다」를 뜻한다. 正자는 성을 향해 진격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바르다’나 ‘올바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바르다’라는 뜻을 가진 正자에 宀자를 결합한 定자는 ‘집이 올바르다’ 즉 ‘집이 편안하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집안이 무탈하여 매우 안정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은 正자의 의미가 확대되면서 ‘정하다’나 ‘바로잡다’, ‘평정하다’와 같은 뜻을 갖게 되었다.(디지털 한자사전 e-한자)

'예정'이란 말은 헬라어 동사 '프로오리조'에서 유래했는데, 이 동사는 '어떤 것을 미리 결정한다.'는 뜻이며, 신약에 여러 번 나타난다(행 4:28; 롬 8:29-30; 고전 2:7; 엡 3:11). 예정은 '죄인들의 구원과 더불어 이와 관련된 모든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다'고 정의할 수 있다(A.A. Hodge). 즉, 예정은 외부와 상관없는 하나님의 단독 사역이다. 예정의 대상은 구원받은 자, 구원에서 제외된 자, 범죄의 동기를 제공하는 악한 천사와 선한 천사 그리고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까지 포함된다. 그리고 이 같은 예정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 사역이다(벧전 2:8). 성부·성자·성령께서는 의지(will)가 완전히 동일하시므로 그 계획과 결과에 있어서도 완벽한 일치를 보인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역에 있어서 삼위의 구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예정은 삼위 가운데 특별히 성부 하나님의 주도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즉, 성부가 예정하심에 따라 성자에게 택한 백성을 주시고(요 17:6,9),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하심을 입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벧전 1:2). 이런 맥락에서 '예정론'이란, 좁게는 하나님께서 한 인간의 구원의 여부를 미리 정해 놓고 계시다는 이론이며, 넓게는 개인과 사건의 미래를 미리 결정하고 계시다는 이론('신적 작정', '영원한 성정'이라고 함)이다. 신학에서 주로 논의되는 예정론은 전자에 해당한다. 예정론은 근본적으로 구원의 선택이 인간의 조건과 자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기독교 역사상 처음 몇 세기 동안은 예정론이 별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당시 교부들은 영지주의자들 및 스토아 철학의 운명주의와의 논쟁에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유의지를 강조했고, 하나님은 믿을 자를 미리 아시고 그들을 구원하도록 미리 결정하셨다는 정도의 견해를 취했었다. 그러던 것이, 어거스틴(Augustine)에 이르러 예정론이 본격 발전하게 되었다. 그는 초기에 운명론을 주장하는 마니교에 대항해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했으나, 인간이 자유의지로 구원을 선택한다는 펠라기우스(Pelagius)와의 논쟁을 통해 자유의지에 대한 견해를 바꿔 '오직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만 구원이 주어진다'고 주장했다. 특히, 반 펠라기우스주의자들(semi-Pelagians)과의 논쟁에서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구원받을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정해진다는 예정설을 주장했다. 종교개혁 시대에 루터(Martin Luther)는 하나님이 만세 전에 미리 예지하시고 예정하셨다는 '예지 예정설', 또는 '조건적 예정론'을 주장했다. 종교개혁자 중에 최고의 예정론자인 칼빈(John Calvin)은 그의 첫 번째 판 「기독교강요」에서는 선택에 대한 항목이 없었지만, 자유의지론자와의 논쟁 중에 어거스틴의 입장을 더 강화하여 '이중예정론'을 강조하므로 「기독교강요」 최종판에는 예정(선택)론이 칼빈의 중요한 교리가 되었다. 그는 예정론을 '무서운'(horrible) 교리로 인정하면서 인류는 동일한 운명을 가지도록 창조되지 않았고, 태어나기 전부터 어떤 자는 영생에 어떤 자는 영멸에 각각 예정되었다고 설명했다. 즉, 하나님이 구원과 멸망을 각각 예정하셨다는 '선택'과 '유기'의 '이중예정설' 및 '무조건적 예정설'을 강조하였다. 이런 예정론에 반대하여 인간의 자유의지와 구원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것이 알미니안주의이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구원의 조건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인간의 실존적 믿음이라고 보았다. 이와는 별개로, 로마 가톨릭은 16세기 트렌트 종교회의(synod of Trent, 1545-1563년)에서 '예정'을 '거룩한 신비'라고 보면서 영멸로의 예정을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으로 여겼으며, 이런 논지는 이후 로마 가톨릭의 정통교리가 되었다. (가스펠서브, 예정론, 교회용어사전: 교리 및 신앙, 2013)

예정설은 세계와 인간에 관한 일은 모두 전능한 신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고, 인간의 구원도 신의 계획 속에 예정되어 있다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말한다. 절대자(God)가 자연, 역사를 창조하고 그것을 지배하고 있다고 하는 종교 이데올로기는 다른 종교에서도 보여지는 것이지만, 특히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원죄를 강조하여, 인간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구원은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인간이 구원되는지 영원한 죄를 받게 되는지는 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고, 그 선택은 신에 의해 예정되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신학화되고, 교회의 권위와 결합하여 중세 사회의 사상 지배에 대한 힘을 발휘하였다. 후에 루터, 캘빈 등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었으며 캘빈주의의 교의에서는 특히 중시되고 있다.(임석진 외 21인, 예정설, 철학사전, 2009)

알미니우스주의는17세기 초 네덜란드 신학자인 알미니우스의 사상이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하는 칼빈주의 예정론(predestination)에 대해 인간의 자유의지(free will)를 강조한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는 하나님의 선택 여부는 사람의 믿음 유무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믿음을 갖는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선택이 믿음에 앞서지 않으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 될 수 없다는 칼빈주의 입장(롬 8:30; 행 13:48)과는 배치된다. 이런 주장은 알미니우스 사후인 1610년에 그의 신학적 견해를 추종하는 45명의 목사가 네덜란드 의회에 제출한 항변서(Remonstrance)에서 잘 나타난다. 네덜란드 의회는 이 항변서를 심의하기 위해서 1618-1619년 도르트 교회회의(Synod of Dort)를 소집했는데, 5개조로 된 항변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은 개인의 신앙과 불신앙의 예지에 근거해 선택과 유기를 결정한다(조건적 선택). ②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받지만 그러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보편적 속죄). ③ 인간은 하나님을 믿지 못할 만큼 타락한 것은 아니며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다(부분적 타락). ④ 하나님의 은총은 거부할 수 있다(저항할 수 있는 은혜). ⑤ 신자들은 죄를 거부할 수 있으나 은총에서 멀어질 가능성도 있다(성도의 견인의 불확실성). 이상의 항변서에서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완전한 자유의지를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최종적으로 구원을 결정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는 결국 믿음에 의한 칭의 교리를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도르트 교회회의에서 거부되었다. 그러나 1630년에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은 다시 회복되었고 후에 감리교를 비롯한 성결교, 구세군, 오순절 계통의 교단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스펠서브, 알미니우스주의, 교회용어사전: 교파 및 역사, 2013)

감리회는 18세기 영국에서 출범한 기독교의 한 종파다.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의 예정론이 강하게 반영된 장로교와는 달리 감리회는 예정론이 아닌 만인구원의 사상을 신앙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예정론이란 구원을 받을 사람은 하나님이 창세전에 이미 예정해 놓았다는 교리이다. 반면 감리회가 신앙의 기초로 삼는 만인구원의 사상은 모든 사람은 이미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구원의 과정에는 인간이 신앙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 하는 자유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감리회는 사회봉사를 중시하기 때문에 장로교에 비해 사회 현실에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하는 모습을 띠는 경우가 많다. 감리회가 처음 결성된 것은 1729년이다. 감리회의 설립자는 영국의 종교개혁가이자 신학자였던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였다. 그는 동생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및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1729년부터 신앙 모임을 조직했는데 감리회에서는 이것이 종파의 모태가 된 조직으로 보고 있다. 이 때 사람들은 이 조직을 격식주의자라는 뜻의 메서디스트(Methodist)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오늘날 감리회의 영어 표현인 메서디즘(Methodism)의 어원이 됐다. 웨슬리가 주도한 당시 모임은 주로 빈민들과 병든 사람을 돌보는 등 엄격하고 헌신적인 사회 봉사활동을 중시했다. 1738년 웨슬리는 감리회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된 회심경험을 하게 된다. 웨슬리는 예배를 보던 중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한 뒤 이후 열정적으로 길거리나 야외에서 설교를 하는 방식으로 전도여행을 나섰다. 1784년 웨슬리는 미국에 파견할 선교사를 자체적으로 선정하면서 영국 성공회와 사실상 결별했다. 이 일을 계기로 미국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활약을 했는데 프랜시스 애스버리(Francis Asbury, 1745~1816) 등이 큰 활약을 하면서 감리회는 독자적인 종파의 모습을 갖췄다. 감리회의 규범은 장로교에 비해 복잡하지 않은 편이다. 가장 중요한 규범은 설립자 웨슬리가 제정한 25개의 신조와 표준설교집, 그리고 그가 지은 신약성서 주석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에는 1884년 미국의 선교사 맥클레이가 처음 들어와 고종으로부터 의료선교와 교육사업을 시작한 것이 감리회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배재학당 설립자인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 목사가 한국 감리회의 초석을 닦았다. 1930년 조선감리교회가 세워지면서 조선감리회의 교리가 형성됐다. 조선 최초의 여자 학교였던 이화학당도 미국 감리교 선교사 스크랜튼(Scranton) 부인이 세운 교육 기관이었다.(감리회, 네이버기관단체사전: 종합)

결정론이란 자연의 여러 가지 현상이나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 심지어는 사람의 의지까지도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미리 규정되어 있다고 보는 철학이다. 결정론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인간의 의지는 어떠한 외적인 힘에 의하여 정해진 때와 장소에서 이루어지도록 미리 정해져 있다고 주장하므로 자유 의지론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 때 사건과 인간의 의지에 작용하는 외적인 힘을 정신적인 범주로 보느냐 물질적인 범주로 보느냐에 따라 결정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외적인 힘을 정신적인 것으로 보는 경우에는 다시 예정론과 목적론적 결정론으로 나누어진다. 예정론은 이 세계가 절대자에 의해 미리 계획되어 있으며 거기에는 어떠한 변경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학설로 아우구스티누스(T. Augustinus)나 토마스 아퀴나스(T. Aquinas)의 신학적 학설과 불교의 인과응보설 등이 이에 해당한다. 목적론적 결정론에는 라이프니츠(G.W. Leibniz)의 예정 조화설, 칸트(I. Kant) 및 신칸트주의의 이상주의가 포함되며 기본적으로 인간의 자발성을 인정하는 학설이다. 외적인 힘을 물질적인 범주로 간주하는 경우에도 기계적인 인과법칙과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나누어지는데, 기계적인 인과법칙은 다분히 관념론으로 기우는 성격을 지니고 있고, 유물론은 인간의 의지가 경제적 기초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는 사적 유물론으로 대표된다. 19세기 고전 물리학의 전성시대가 도래하면서 어떠한 사건의 발생이나 인간의 의지의 원동력을 종교적인 계시에서 구하는 정신적 범주의 결정론 대신 과학적 결정론이 올바르다는 입장이 주류를 이루게 되고, 양자역학이 등장하는 20세기에 와서는 모든 상황이나 인간의 의지가 정해진 때와 장소에서 이루어지도록 결정된 것이 아니고, 오로지 일어날 수 있는 확률만이 결정되어 있다는 확률론적 결정론이 유력한 결정론으로 추앙받았다. 현대의 사상과 관련해서는 경제적 토대가 일정 집단의 문화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맑스주의(Marxism)와 언어의 형성력이 인간의 사상을 능가한다고 여기는 언어철학에서 가장 빈번히 결정론의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문예비평에 있어서의 결정론은 설득력이 미약한데, 그것은 지역이나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문학적 예술 작품의 속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결정론, 문학비평용어사전, 한국문학평론가협회, 2006)

에베소서(Ephesians) 1:4-5, 예정과 자유의지(Predestination and Free Will)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셔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For He chose us in Him before the creation of the world to be holy and blameless in His sight. In love He predestined us to be adopted as His sons through Jesus Christ, in accordance with His pleasure and will)(엡 1:4-5)

오늘 저의 메세지에서 주제는 성경에서 밝히고 있는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조화 시킬 것인가? 하는 것 입니다. 특별히 우리 인간의 구원을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칼빈과 알미니우스는 신학적으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예정’과 ‘자유의지’를 살펴봄에 있어서 양쪽 모두에서 마주치게 되는 주요쟁점의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악의 문제’ 입니다. 이런 죄의 문제는 20세기에 C.S. 루이스에 의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되어졌습니다.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 C.S 루이스는 자유의지를 ‘하나님께서 가장 고등한 피조물, 바로 인간에게 주셔서 사랑과 즐거움 가운데 자발적으로 자신과 연합하고, 더 나아가서 이웃과 연합 할 수 있는 선택의 능력’ 이라고 설득력 있게 정의 했습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자유의지에 따른 이슈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첫 인간 부부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할 줄 모르셨는가? 입니다. 물론 전지하신 하나님은 그것을 아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할 줄 아시면서도 그것을 허락하신 것일까요? 왜냐하면, 이 자유의지를 소유한 그의 피조물이 아니고서는 하나님과 진정한 영적 교제는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 입니다. 이것을 아셨기에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기도 전에, 아니 천지가 창조되기도 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자녀를 택하여 예정하셨다고 사도바울은 구원의 예정하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존 웨슬리>는 “구원은 100% 하나님의 예정하심이요, 100% 인간의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구원이 나의 자유의지로 선택되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 (엡 2:8)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통해 허락하신 구원을 열매 맺어야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 ~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격려하고 도전한 뜻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자발적 결단을 통해 드림으로서 철이든 자녀의 풍성한 열매 맺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손영만 목사 설교집)

C.S. 루이스는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 에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고등한 피조물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행복은 사랑과 즐거움의 절정에서 자유로우면서도 자발적으로 하나님과 연합하며 이웃과 연합하는 데서 생겨나는 행복으로서, 거기에 비하면 지상에서 남녀가 나누는 가장 황홀한 사랑조차 물탄 우유처럼 싱거울 것 입니다. 바로 이런 행복을 누리기 위해 인간은 자유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라고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격려 하듯이, 우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인격적 결단을 우리 모두 행해야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각자의 자유의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나아가는 삶임을 믿습니다.

창조주 성부 하나님은 태초부터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예정에 의해 이 땅에 인간의 생명을 보내시며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 그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다. 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선한 결단을 할 수 있게, 알찬 결실을 이룰 수 있게 인도하시고 복을 더해 주신다. 이 땅에서의 인간의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고 신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과정까지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예정대로 진행이 될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불순종으로 타락한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본체이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언약하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제3위 하나님이신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고 중보하시며 구원의 사역은 지속이 되며 종말로 다시 오셔서 심판을 통하여 새 하늘, 새 땅, 새 역사를 이루시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이루신다고 언약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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