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연재 끝(103회) Ⅵ 맺음말 III(22:20-21):속히 오신다는 약속과 열망

최세창
  • 1391
  • 2022-05-14 17:31:49
7. 속히 오시리라는 약속과 열망[22:20-21]

본서의 절대적 가치에 대해 증언해 온 요한은, 끝으로 속히 오시리라는 약속과 열망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본서의 마지막 부분은 【20】[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로 시작된다.
[이것들]은 지금까지 진술한 본서의 내용 전부를 가리킨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는 다음 내용을 미루어 보아 예수 그리스도임이 분명하다.
[진실로]는 1:6-7의 주석을 보라.
[내가······속히 오리라]는 22장에서 세 번째 반복되는바 그리스도 자신의 ‘재림’(1:7의 주석을 보라.)에 대한 확약이다(22:7, 12).
“본서의 총주제라고 할 수 있는 이 선언”(김철손)①은, 지금까지 진술해 온 본서의 예언의 말씀을 보장하는 동시에 핍박과 환난 중에서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이 되는 것이다.
[아멘](ἀμήν)은 {‘견고하다’, ‘신실하다’를 뜻하는 히브리 어원에서 온 말이다(P. E. Hughes)}(고후 1:20의 주석).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 ‘서약’, ‘진술’, ‘선언’ 등을 확인할 때 사용했는데(민 5:22, 왕상 1:36, 렘 28:6), 그것이 예배 때에 기도에 동의를 표하는 회중의 응답으로 발전한 것이다(시 106:48, 느 8:6, Ⅱ 에스드라서 15:13, 18:6, 계 5:14, 7:12, 19:4). 또, 보통 문장의 서두에서 ‘진실로’, ‘참으로’, ‘정말로’라는 뜻으로, 그리고 찬양 등의 끝에 기원을 나타낼 때에 사용되기도 하였다(3:14).
{쇠트겐(Schoettgen)은 이 말이 얼마나 미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는가를 입증하기 위해 수많은 구절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중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아멘’을 말하는 자는 축복하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 “‘아멘’을 말하는 자는 누구이든 그에게는 낙원의 문이 열리게 된다.” “‘아멘’을 짧게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의 날이 짧게 될 것이다. 반면에, ‘아멘’을 분명하게 길게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의 날이 길게 될 것이다.”}(고전 14:16의 주석).
[주](퀴리에, κύριε)는 구약성경에서는 노예에 대한 주인을 뜻하며, 많은 경우에 있어서 명예와 존엄 그리고 하나님을 표현하거나 특수한 이름인 야웨(Yahweh)를 대신하는 칭호이었다.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어 그분의 신성을 나타내고 있다(고전 12:3, 고후 1:2, 빌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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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칭호는 특히 바울 서신들에 자주 나타난다. ‘주 예수 그리스도’ 또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라는 바울의 고백은 {당시의 헬라적 동방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처럼, 예배자들이 주님의 ‘노예’라는 생각을 보충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으며, 따라서 주님이라는 칭호를 기독교 예배에 적용시키는 일이 광대하게 조장되었다(Deissman).}(고후 1:3의 주석).
[예수](Ἰησού)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여호수아의 와전이다. 이는 우리 주님의 이름이다(막 1:1, 눅 1:31, 요 1:17). 구약 시대에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은 모세의 후계자로서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인 가나안을 정복하는 전쟁을 수행한 여호수아, 그리고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삼상 6:14, 18), 포로 귀환 후의 대제사장 여호수아(학 1:1, 12, 슥 3:1, 3, 4), 요시야 왕 때의 부윤이던 여호수아(왕하 23:8) 등이 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한 요한의 응답은, 초대 교회의 예배 의식에서 자주 사용되던 기도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성도들의 간절한 소망을 나타내는 것이다(C. L. Morris). 이 요한의 바람은 과거의 성도들은 물론,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성도들의 바람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는 고린도전서 16:22의 “주께서 임하시느니라”의 원문(마란 아타, μαρὰν ἀθά: 우리 주께서 오신다<빌 4:5, 약 5:6, 계 1:7, 3:11>)의 의미와 유사하다.
본서보다 약간 후대의 기록으로 여겨지는 {“12사도 교훈서(Didache) 10:6에서는 성만찬적이고 종말론적인 문맥에서 다음과 같은 기도가 나온다. ‘은혜가 임하고 이 세상이 패망하리라, 다윗의 하나님께 호산나. 누구든지 거룩한 자에게 그가 오시리라. 그러나 거룩하지 않은 자에게는 회개가 있을지어다. 마라나타 아멘’”(C. K. Barrett).}(고전 16:22의 주석).
요한은 본서를 서신 형식으로 시작한 것(1:4-5)에 적합하게 서신 형식의 끝맺는 말을 사용하였다. 【21】[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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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A. Johnson)은 “이와 같은 결론이 유대 묵시 문학에는 아주 부적절한 것이지만, 고대 교회 그리고 실지로 그리스도의 몸 전체에 대해 말하는 이 예언의 메시지에는 아주 적절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은혜]는 카리스(χάρις)이며, 헬라의 인사말이기도 하다.
{은혜(카리스, χάρις)는 “우리를 향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일” (M. Henry), “인간을 즐겁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R. T. Stamm), 그리고 “죄인인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영적 축복을 쏟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E. Huxtable) 등의 뜻이다. 한 마디로 말해, 받을 자격이 없는 인간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만으로는 아직 카리스(은혜)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카리스(은혜)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의미란 곧 “죄의 용서”(M. Luther, R. C. H. Lenski)이다. 하나님의 은혜 중 은혜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현된 속죄의 사랑이며(롬 5:7), 그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이 특수한 은혜를 체험하지 못할 때, 일반적인 은혜란 진정한 의미에서의 은혜라고 할 수 없다. 만일 누가복음 15:11 이하에 나오는 탕자가 아버지에게서 많은 선물(은혜)을 받았으나 용서를 받지 못했다면 그 선물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인간이 죽음과 멸망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죄악의 사슬에서 구속받는 은혜를 받지 못했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주시는 일반적인 은혜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이 구속의 은혜야말로 모든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것이다.}(갈 1:3의 주석).
[모든 자들]은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지만, 모든 불신자들을 포함시켜도 무방하다.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는 전자의 경우에는 구속받은 자로서 받을 은혜를 받도록 기원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구속의 은혜를 받도록 기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멘]은 20절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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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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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457-460.

newrema.com(T. 426-3051)의 필자의 저서와 번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5권
# 번역서: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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