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결혼과...)의 성경 본문 엡 5:31-33의 주경신학적 연구

최세창
  • 1494
  • 2022-05-11 21:00:57
이어서 바울은 【31】[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창세기 2:24(칠십인역)의 결혼에 관한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예수께서도 그 말씀을 인용하신 적이 있다(마 19:5).
이 구절에 대해서는 신비적이고 풍유적인 해석, 즉 [사람]을 그리스도(초림주 혹은 재림주)로, [아내]를 교회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지만①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 말씀은 단순히 결혼의 원리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②
[부모를 떠나]는 부모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 의존해 살던 자녀의 가정을 이끌어 나갈 자립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아내와 합하여]는 마음과 뜻의 일치를 의미한다. 부부란 서로 자라온 조건과 환경, 기질과 성격, 인생관과 세계관, 가치관과 종교관 소질과 취미 등의 차이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획일적인 연합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는 연합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이 일을 위해 필수 요소가 바로 사랑의 지도와 사랑의 복종이다.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란 “성적인 결합을 지시한다. 이러한 목적에서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의 성을 창조하신 것이다. 성은 결코 간음을 위한 것이 아니고, 결혼과 자손의 번성을 위한 것이다(고전 6:16)”(R. C. H. Lenski). 부부의 성행위란 본래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하나로 생육과 번성을 위한 것이었다(창 1:27-28).
한 마디로 말해, 부부의 연합이란 하나님과 사회를 위한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결속이다. 이는 사랑의 속성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중매하시고 부부가 되게 하셨다는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다(창 2:22-25, 마 19:6, 막 10:9).
바울은 그와 같은 부부 일체의 비의를 높이 평가한 후에, 이를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인 교회(막 2:19-20, 계 19:9, 마 25:1 등)의 관계에 적용하여, 【32】[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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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밀](1:9과 3:3, 4의 주석을 보라.)이란 결혼에 의한 부부의 밀접한 관계의 원형인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영적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다.③ 이 외에도 (1) 아담과 하와의 관계(창 2:24)에 내포된 영적인 뜻을 바울이 알게 된 것으로 보는 설(H. A. W. Meyer),④ (2)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 관계의 신비성으로 보는 설(J. A. Bengel), (3) 부부의 관계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의 비교로 보는 설(Estius),⑤ (4) 결혼 관계로 보는 설(카토릭 교리, Tertullian)⑥ 등이 있으나,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한 것과 다음 구절이 [그러나]로 시작된 것을 보아 모두 다 받아들이기 어렵다.
바울은 【33】[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라고 권하였다.
[그러나](플렌, πλὴν), 즉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연합의 비밀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그 모형인 부부 관계도 그에 못지않은 영적 비의를 가지고 있으므로 남편들은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25절, 28절과 같은 개념)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는 것이다.
[경외하라]는 5:21의주석을 보라.
참된 복종이란 깊은 존경에서 비롯되는 두려움에서만 가능하고, 그러한 복종은 참된 사랑에 의해 유발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논해 온 결혼에 관한 교훈이 모든 시대나 모든 문화를 초월한 영원한 진리임(비교: 고전 7:8-, 11:4-7. 14-15)은 그 당시의 상황을 보면 아주 명백해진다. 이 점에 대해 바클레이(W. Barclay)가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여성을 매우 천대하였다. 유대인의 아침 기도문 속에는, 유대 남자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방인이나 노예나 여자로 만들지 않으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여자는 아무런 법적인 권리를 갖지 못하였다. 여자는 전적으로 남편의 소유물이었으므로, 남편은 아내를 자기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이론적으로는 가장 이상적인 결혼관을 가지고 있었다. 랍비들은 “모든 유대인은 우상 숭배, 살인, 간음죄를 범하기보다는 차라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 낫다.”라고 하였으며, 또한 “한 남자가 젊은 날에 얻은 아내와 이혼하면 제단조차도 눈물을 흘린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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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그 당시의 교회에서까지도 이혼은 비극적인 것이라고 할 정도로 쉬운 일이 되어 버렸다. 이혼법은 신명기 24:1에 잘 요약되어 있다.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문제는 수치되는 일이란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유명한 샴마이가 주동이 된 엄격한 랍비들은 그 구절이 오직 간음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그런데 역시 유명한 힐렐이 주동이 된 보다 자유주의적인 랍비들은 그 구절을 여러 가지로 해석하였다. 그들은 어떤 아내가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 음식물을 먹지 못하게 만들었거나, 머리에 너울을 쓰지 않고 거리를 걸어갔거나, 거리에서 다른 남자와 말을 했거나, 남편이 듣는 데서 시부모에게 멸시하는 말을 했거나, 싸움을 좋아하거나 말썽꾸러기라고 생각될 때, 그 남편은 이혼해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심지어 랍비 아키바는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이란 구절을, 만일 남편이 보다 더 매력적인 여자를 발견하면 자기 아내와 이혼해도 좋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어느 학파의 주장이 더 우세했던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유대의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두 가지 사실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1) 아내는 자기 남편이 문둥이가 되거나 배교자가 되거나 또는 아주 흉한 직업을 갖지 않는 한 절대로 이혼할 수 없다. 유대인의 결혼법에 있어서 여자는 아무런 힘도 없으며, 또한 보호받을 수도 없다. (2) 이혼 수속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하였다. 모세의 법은 어떤 남자가 아내와 이혼하고 싶으면 아내에게 이혼 증서를 써 주라고 하였다. 그 증서는 다음과 같다. “이것은 내가 주는 이혼장이며 축출장이며 해방 증명이니, 그대는 그대가 원하는 어떤 사람하고라도 결혼해도 무방함.” 남자가 하는 일이란 랍비가 정확하게 정서한 이혼 증서를 두 사람의 증인 앞에서 아내에게 주는 것뿐이며, 그것으로 이혼은 완전히 성립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조건은 아내가 결혼 때 가져왔던 지참금을 되돌려 주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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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 세계의 상태는 그보다 더욱 나빴다. 매춘 행위는 그들의 세계에서 불가결한 요소이었다. 데모스테네스는 매춘 행위란 흔히 있는 일이며 용인된 생활의 규칙인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쾌락을 위하여 매춘부를 두고 있다. 우리는 날마다 동거하기 위해 첩을 둔다. 우리는 합법적인 자녀를 두기 위해 그리고 모든 집안 일을 충실히 관리하도록 하기 위해서만 아내를 얻는다.”
상류 사회의 부인들은 완전히 격리된 생활을 강요당하였다.······헬라에는 법적인 이혼 수속이 없었기 때문에 사태가 더욱 악화되었다.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이혼은 단지 기분만으로 해치웠다. 아내에게 있었던 유일한 구제책이란 결혼 지참금을 되돌려 받는 일 뿐이었다. 헬라에 있어서는 가정생활이나 가족생활이 거의 소멸 단계에 있었으며, 절개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로마의 상태는 더욱 악하였다. 로마의 타락은 비극적인 것이었다. 로마 공화국의 최초의 500년간에는 한 건의 이혼도 없었다. 기록에 남아 있는 최초의 이혼은 주전 234년에 있었던 스푸리우스 카빌리우스 루가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바울 당시의 로마의 가정 생활은 파괴되어 있었다. 세네카는 “부인들은 이혼하기 위해 결혼하고, 결혼하기 위해 이혼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제롬(Jerome)은 분명히 말하기를 “로마에는 스물세 번째의 남편과 결혼했는데, 그 여자는 그 남편에 대해 스물한 번째의 아내이었다.”라고 하였다.
고대 세계의 전체 분위기는 간음으로 꽉 차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결은 증대되는 사치 문명 속에서 하나의 조난자에 불과하였다. 결혼의 인연은 완전 파멸의 도상에 있었다.
현대 역시 가장 큰 병폐 가운데 하나는 가정의 붕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오늘의 세계에 있어서 이혼과 성 문란은 점점 더 무섭게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결혼관은 모든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탁월한 위치를 점유한 영원한 진리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부부의 참다운 연합, 즉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과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의 복종은 반드시 부부가 다같이 그리스도의 교회(신부)로서의 영적 연합의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롬 5:5)⑦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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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참조: 이상근.
2) T. K. Abott, E. F. Scott, W. G. Blaikie, R. C. H. Lenski, J. R. Stott, A. S. Wood, W. H. Taylor, 박윤선, 이상근.
3) M. Henry, A. Barnes, A. Clarke, W. G. Blaikie, R. C. H. Lenski, F. W. Beare, O. Wedel, H. Alford, A. S. Wood, H. C. G. Moule, H. Hendriksen, G. H. P. Thompson, J. R. Stott, 小畑 進, 윤성범.
4) in 이상근.
5) 상동.
6) in R. C. H. Lenski.
7) 저자의 로마서 5:5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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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464-469.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들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 설교집 35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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