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물

함창석
  • 1314
  • 2022-05-22 03:42:09
나비물

함창석

무더운 여름날이면
옛집 마당에
가끔은 나비물을 뿌렸다

식구들이 세수를 하고도 뿌렸다
마당가 꽃밭에도
우리는 나비물을 뿌렸지

가물 때 아침꽃밭
꽃들은 나비물을 맞고 자랐지

건물공사판 길 위
여기로 저기로
마치 내 어린 시절 나비물처럼
긴 호수로 물 뿌리고 있다

Sandol Method

물은 자연계에 강, 호수, 바다, 지하수 따위의 형태로 널리 분포하는 액체이다. 순수한 것은 빛깔, 냄새, 맛이 없고 투명하다. 산소와 수소의 화학적 결합물로, 어는점 이하에서는 얼음이 되고 끓는점 이상에서는 수증기가 된다. 공기와 더불어 생물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물질이다. 못, 내, 호수, 강, 바다 따위를 두루 이르는 말이나 ‘조수’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음료수나 술 따위나 일부 명사 뒤에 쓰여 그곳에서의 경험이나 영향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水자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물」을 뜻한다. 본디 물수(水(氵, 氺)물)部는 시내의 뜻이었다. 부수로 쓸 때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로 쓰는 일이 많다. ‘물’이나 ‘강물’, ‘액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水자는 시냇물 위로 비가 내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水자의 갑골문을 보면 시냇물 주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물’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부수로 쓰일 때는 대부분이 ‘액체’나 ‘헤엄치다’, ‘범람하다’와 같이 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水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氵자나 氺자로 바뀌게 된다.(디지털 한자사전 e-한자)

‘나비’가 덧붙어 쓰이는 말은 대체로 나비의 사뿐한 날갯짓과 얇게 펼쳐진 모양을 연상케 한다. ‘나비물’은 먼지가 풀풀 날리는 마당이나 대문 앞 골목길에 먼지를 재우기 위하여 끼얹는 물의 모양을 말한다. 보통 세수를 하고 난 물이나 걸레를 빨고 난 허드렛물을 나비 날개 모양으로 가로로 쫙 퍼지게 끼얹는다. 마당가에 피는 꽃들은 아침이면 식구들이 차례로 끼얹어주는 나비물을 맞으며 하루를 시작한다.(박남일, 나비물,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 말 풀이사전, 2004)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 하여 일원설을 주장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불·공기·흙이라고 하는 4원소설을 주장할 정도로 인류는 물의 존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 왔다. 생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물질 중에서도 물은 생물체 중량의 70∼80%를 차지하며, 많은 경우에 95% 정도를 차지하는 것도 물은 생물체에 매우 중요한 성분이다. 인간의 신체도 체중의 약 3분의 2가 물로 되어 있다. 인체 내에서의 물은 물질대사에서 생긴 노폐물을 용해시켜서 체외로 배출시키는 역할뿐 아니라, 체내의 갑작스런 온도를 막아 주는 등 여러 가지 기능을 해주고 있어 인간은 생리적으로 물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인류가 원시적인 농업기술과 산업기술을 바탕으로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그 중요한 장소는 큰 하천 유역이었다. 인류 문명이 큰 하천을 중심으로 발달하게 된 까닭은 인체가 생리적으로 물을 요구한다는 기본적인 필요성 외에도 농경과 산업 활동에서 물이 필수불가결한 물질이기 때문이었다. 물은 바닷물·강물·지하수·빗물·온천수·눈·얼음·수증기·안개 등의 상태로 존재하며, 지구 표면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어 지각이 형성된 이래 지구 표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즉, 바다와 육지에 있는 물이 증발하여 대기 중의 수증기가 되고, 이 수증기가 응축·집적되어 구름·안개가 되며, 다시 비·눈·우박 등의 상태로 지표면에 내리는 물의 순환을 통하여 지구 표면의 육지나 섬의 형태를 끊임없이 변화시켜 왔으며, 지구상의 기후 변화를 좌우해 왔다. 이렇듯 인류의 생활과 물은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물을 잘 이용하고자 하는 인류의 노력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왔으며, 물에 관련된 민속신앙과 설화·신화가 많이 나온 것도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민속신앙의 품에 안겨서 종교적 상상력을 촉발함으로써, 창세기적 창조력과 영속적인 생명력 및 풍요의 원리, 그리고 청정한 정화력 등으로 형상화된 것이 우리들의 물이다. 그 속에서 바로 우리들의 물이 지녔던 신화적 원형성을 찾을 수도 있다. 그처럼 종교적 상상력의 텃밭일 수 있었던 물이 문화적 상상력을 촉발하면서 갖가지 풍성한 심상을 낳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산·수’를 더불어 일컬어 왔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에 대한 대유법에 그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우리들의 윤리관·세계관, 그리고 심미감 마저 담겨 있었다. 고조선의 <공후인>에서 이미 그 모습을 드러낸 물은 신라 향가인 <찬기파랑가>에서 노래되다가, 고려에 이르러서는 <청산별곡>에서 혹은 <서경별곡>에서 또는 <동동>에서 노래불리고 있다. 그 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이른바 ‘강호도가’로 묶는 가사작품이나 시조들에서 조선시대 문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와 심상(이미지)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물은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폭넓고 긴 소재사를 형성해 오면서 민속신앙적인 상상력이 가꾼 정신적·심리적 원형성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다. 그러나 강호도가에서 절정에 이른 물의 심상은 자연과 세계, 그리고 인생의 섭리, 가장 자연스럽고 자유롭고 그러면서도 유연한 순리라는 관념을 길러낸 것이다. 이리하여 물은 세계와 삶의 가장 이상적인 이법 그 자체로 관념화되기도 한 것이니, 선비다운 기품, 유유자적한 관조, 청아한 지조 등으로 이상화되어 수없이 노래 불렸다. “청산도 절로절로/녹수도 절로절로/산 절로절로 수 절로절로/산수문에 나도 절로절로/그 중에 절로절로/자란 몸이니 늙기도 절로절로 하리라”와 같은 시조를 그 전형으로 지적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물이 언제나 이상화되어 노래불린 것은 아니다. 심리적 원형성이 짙은 심상일수록, 모순등가성이 높아지기는 물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물이 변덕과 삶의 풍파를 상징하기도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샘이 깊은 물은/가뭄에 아니 그칠 새/내가 되어 바다에 가나니”라고 <용비어천가>는 노래하고 있다. 그렇듯이 물은 우리 겨레의 종교적 심성을 위한 가장 깊은 샘에서 솟아올라 종교사와 문학사의 커다란 두 물줄기를 따라 변함없이 유구하게 흘러 마침내 겨레의 가장 속 깊은 정신적·심리적 원형의 바다를 이룩하였다.(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제 생명체 속의 화학 반응을 매개하는 물에 대해 얘기해보자. 물은 생명의 어머니다. 사하라 사막에서 길을 잃고 갈증으로 목이 타들어갈 때 사막 도마뱀이라도 한 마리 만나면 이보다 더 반가울 수가 없다. 주변 어딘가에 물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생명체에서 물은 없어서는 안 될 대단히 중요한 분자다. 우리 몸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물은 생체 내 거의 모든 화학 반응에 작용하는 용매로서 지구상에 생명이 잉태될 수 있게 해준 분자이다. 왜 생명에서 물이 그토록 중요할까?(이일하, 생명을 잉태하게 한 분자(물), 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 2014)

물에는 고대 성스러운 힘이 있다고 생각되었으며, 거기에서 수신신앙과 불정신앙이 탄생했다. 전자의 수신은 시리아의 아스타르테, 바빌로니아의 이슈타르, 페르시아의 아나히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여신의 모습을 취하는 경우가 많으며, 생산과 풍요의 원천으로 보아서 주로 농경ㆍ관개의 수호신으로서 숭배되었다. 물에는 원래 단순히 음료나 농경을 위해서만 아니라 물심양면에 걸친 더러움을 씻어내 주는 영위가 있다고 믿어서, 거기에서 다양한 불정의례가 탄생했다. 한편 그리스도교 세계에서는 옛날부터 물에 의한 청결 의식을 도입해서, 세례 의례를 입신의 전례로서 정식화했다. 또한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하천이 풍요ㆍ불정의 원천으로서 신성시되고, 특히 갠지스 강의 물은 모든 사자의 혼을 승천시키는 정화력이 있다고 믿었다. 일반적으로 종교행사에는 물을 머리에서 붓는 관정의식이 있었는데, 그것이 불교에도 도입되어 불제자로서 재생하기 위한 각종 관정식이 만들어졌다. 또한 많은 민족 사이에서는 물의 숭배와 함께 성천숭배가 발견되며, 각지의 영장이나 성지에서는 땅에서 솟아나는 샘물로 목욕하거나 마셔서 병의 치유를 기원하는 풍습이 퍼졌는데 우물에도 동일한 숭배가 보이는 경우가 있다. 동시에 물에는 사자의 더러움을 씻어서 사령을 타계로 인도하는 영이 있다고 하며, 거기에서 사자의 사수를 퍼서 묘에 물을 바치는 것이 행하여지게 되었다.(물, 종교학대사전, 1998)

물항아리는 물을 담는 항아리이다. 물을 긷는 데 사용되었다. ‘물동이’로도 번역된다. 생활에 필요한 도구 중 하나이다. 히브리 문학에서 죽음은 종종 물항아리가 깨어지는 데 비유되고 있다.

그 종은 주인의 낙타 열 마리에 여러 가지 좋은 물건을 싣고 메소포타미아로 가서 나홀이 사는 성에 이르러 그 성 밖에 있는 우물곁에 낙타들을 쉬게 하였다. 때는 여자들이 물을 길러 오는 저녁 무렵이었다. 거기서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가 맡은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하셔서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이 우물 곁에 서 있다가 마을 여자들이 물을 길러 오면 내가 한 처녀에게 "항아리를 기울여 물을 좀 마시게 해 주시겠소?" 하고 물어 보겠습니다. 이때 만일 그녀가 "마시세요.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물을 주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면 그 여자가 바로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해 정하신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이런 일이 있으면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셨음을 내가 알겠습니다." 그가 미처 기도를 끝내기도 전에 리브가라는 처녀가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왔다. 그녀는 아브라함의 동생인 나홀과 그의 아내 밀가가 낳은 브두엘의 딸로서 지금까지 남자를 가까이하지 않은 아주 아름다운 처녀였다. 그녀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 항아리에 물을 채워 가지고 올라오자 그 종은 달려가서 그녀를 만나 "항아리의 물을 좀 주시겠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마시세요." 하며 급히 물 항아리를 내려 마시게 하였다. 그가 물을 다 마셨을 때 그녀는 "내가 물을 길어 와 당신의 낙타들에게도 실컷 먹이겠습니다." 하고 급히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우물로 달려가서 물을 긷고 또 길어 모든 낙타들이 실컷 마실 때까지 그렇게 하였다. 한편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그의 길을 잘 인도하셨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녀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낙타가 물을 다 마셨을 때 그는 5.7그램의 금고리 한 개와 114그램의 금팔찌 한 쌍을 그녀에게 주면서 "아가씨는 누구 딸이오? 아가씨 집에 우리가 잘만한 방이 있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내 아버지는 브두엘이며 할아버지는 나홀이고 할머니는 밀가입니다" 하며 다시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집에는 낙타가 먹을 짚과 먹이가 충분히 있고 또 주무실 방도 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은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주께서는 내 주인에게 주의 자비와 신실하심을 버리지 않으시고 나를 곧장 내 주인의 동생 집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리브가가 집으로 달려가서 이 일을 가족에게 말하자 그녀의 오빠 라반은 자기 동생이 받았다는 금고리와 팔찌를 보고 또 그 사람이 자기 동생에게 한 말을 전해 듣고 우물로 달려갔는데 이때 그 사람은 우물가 낙타 곁에 서 있었다. 라반이 그에게 "나와 함께 집으로 들어갑시다. 당신은 여호와의 축복을 받은 사람인데 어째서 밖에 서 계십니까? 당신이 쉴 방과 낙타를 둘 장소를 내가 이미 마련해 놓았습니다." 하고 말하므로 그 사람은 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래서 라반은 낙타의 짐을 부리며 낙타에게 짚과 먹이를 주고 그 사람과 그와 함께 온 사람들에게 발 씻을 물을 주었다.(창 24:10-32)

너는 아직 젊을 때, 곧 고난의 날이 오기 전에, 아무 낙이 없다고 말할 때가 되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네가 너무 늙어 해와 달과 별이 보이지 않고 슬픔이 떠날 날이 없을 때 그를 기억하려고 하면 늦을 것이다. 그 때에는 너를 보호하던 팔도 떨 것이며 지금 강한 너의 다리도 약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빨이 거의 다 빠져 음식을 잘 씹지 못할 것이며 눈은 어두워서 보지 못할 것이다. 귀는 어두워서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며 음식을 씹는 소리가 적을 것이다. 그리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할 것이며 음성도 떨릴 것이다. 그때 너는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걷는 것도 위험할 것이다. 머리는 온통 희어지고 거동하기가 불편해서 몸을 제대로 끌고 다닐 수 없을 것이며 모든 의욕과 정욕은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조객들이 네 집을 찾아들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은줄이 끊어지고 몸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며 육은 본래의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 12:1-7)

물거울은 건물이나 산 경치가 그대로 비치는 맑고 잔잔한 호수를 말한다. 가끔 소공원 작은 호수에는 주변의 건물이나 경치가 비치기도 한다. 내 마음은 물거울과 같다. 이 세상 모습도 그대로 비쳐지고 있으니까. 이 세상은 맑은 물거울과 같다. 이 물거울 속에 내 모습은 그대로 비쳐지고 있을 것이다. 유명사진작가들은 호수풍경을 촬영하고 물거울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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