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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지족하는...)의 성경 본문 딤전 6:6-8의 주경신학적 연구
최세창
- 1613
- 2022-06-10 07:25:09
[지족하는 마음]은 아위타르케이아스(αὐταρκείας)로서 “고전어에서는 ‘어떠한 도움이나 지원이 필요하지 않은 완전한 생활 조건’(Thayer)이라는 철학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말이 나타나는 신약성경의 다른 유일한 구절(고후 9:8)에서는 ‘충분한 생활필수품’이라는 객관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몫으로 만족하는 마음’ 또는 ‘만족’(EGT, 4:142)이라는 주관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R. Earle, p. 395).
[지족하는 마음](아위타르케이아스, αὐταρκείας) 또는 ‘자족’은 {스토아파의 도덕상 최고의 목표이었다. 그들은 이 말로 인간이 모든 물질과 모든 사람들에게서 무조건으로 완전하게 초연한 정신 상태, 그리고 인간이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않고,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상태에 이르는 것은 어떤 종류의 정신적인 태도에 의한다고 하였다.
⑴ 모든 욕구를 제거하라고 한다. 그들은 만족이란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욕심을 적게 내는 데 있다고 믿었다.……소크라테스가 가장 부한 인간이 누구냐고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가장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자이다. 그 이유는 자족이야말로 자연의 부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였다.
⑵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정과 정서를 배제하라고 한다.
⑶ 그와 같은 일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그것은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본 의식적인 의지 행위에 의하여 실행된다고 하였다. 그들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신의 의지가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모든 것은 다 신의 뜻이다. 그러므로 신의 뜻에 반항하는 것은 무익한 것이었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의지의 힘으로 훈련하고 굳게 하여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만족을 얻기 위하여 그들은 모든 욕구를 물리치고, 모든 감정을 배제하였다. 사랑은 인생에서 뿌리뽑히고, 염려와 생각은 금지되었다.
글로버(T. R. Glover)가 말한 것과 같이, “스토아인은 마음을 사막으로 만들고, 그것을 평화라고 불렀다”(W. Barc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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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파와 달리, 바울 자신은 빌립보서 4:11에서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믿음에 의해 전능하신 주님과 연합함으로써 어떤 형편에든지 주님 안에서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을 터득했다고 하는 것이다(빌 4:13).
한 마디로 말해, 스토아파의 자족의 근원은 자기 자신인 반면에, 바울의 자족의 근원은 주님이시다. 바울은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후 3:15)라고 말하고 있다. 또, 그는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비교: 시 23:1)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한 마디로 말해, 그 비밀은 바울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시다}(빌 4:11의 주석).
[경건]은 유세베이아(εὐσέβεια)로서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것은 인간을 존경하고, 하나님을 숭상하고,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정신 자세를 나타내는 말이다. 요세푸스의 정의에 의하면, 그것은 유일하신 하나님께 대한 경건이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생활 방식이다”(W. Barclay). 헬라인들에게 있어서 소크라테스(Socrates)는 유세베이아의 위대한 모범이었다. 크세노폰(Xenophon)은 소크라테스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는 하늘의 뜻을 떠나서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않는다고 할 만큼 신앙심이 깊고 종교적이었다. 살아 있는 영혼에 하찮은 상처마저도 입히는 일이 없었을 만큼 그는 올바른 인물이었다. 그는 아주 자제심이 강한 사람이어서 괴로운 일 대신에 안락한 것을 택한다거나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는 뛰어난 감각과 깊은 사려의 사람이었으므로 선악을 구별하는 데 실수가 없었다”(크세노폰, ‘소크라테스의 회상’ 4, 8, 11).①
이 낱말은 목회서신의 특징적 용어로 10회나 사용되었고(딤전 2:2, 3:16, 4:7, 8, 6:3, 5, 6, 11, 딤후 3:5, 딛 1:1), 그 외에는 사도행전에 1회(3:12), 베드로후서에 4회만(1:3, 6, 7, 3:11) 사용되었다.
[이익](포리스모스, πορισμὸς)은 6:5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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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족해야 하는 첫째 이유에 대해, 바울은 【7】[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문장 구조상 두 구절을 연결하는 접속사가 여러 가지로 되어 있다. 위의 접속사(호티, ὅτι: 개역 한글판 성서)가 가장 권위 있는 사본들(א*, A, G, 048, 061, 33)의 읽기인데, 이 외에 ‘또한’(카이, καί)으로 되어 있는 사본(COPsa, bo)도 있고, ‘또한……명백하다’(델론 호티, δήλον ὅτι)로 되어 있는 사본들(אc, Dc, K, P, Ψ)도 있다.②
이 구절은 구약성경의 욥기 1:21, 시편 49:17, 전도서 5:15 등의 반영이고, 신약성경의 마태복음 6:26, 누가복음 12:22-31과도 통하고 있다. 또한 “같은 사상은 동양에서나(空手來 空手去), 서양에서나(‘non licet plus efferre quam intuleris,’ Seneca, Mor., lii, 25) 격언조로 내려오는 것이다. 이는 인간에게 물욕을 경계하고 자족의 생활을 권장하는 말인 것이다”(이상근).
지족해야 하는 둘째 이유에 대해, 바울은 【8】[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의 후자는 스케파스마타(σκεπάσματα)로서 ‘가래개’, ‘피신처’, ‘의복’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을 족한 줄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본적인 생활이란 각 사람의 위치와 신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의 신분과 위치에 과분한 생활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누리고 있다.
물론, 기독교는 가난을 장려하는 종교가 아니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또한 미덕도 아니다. 영적 존재로서 영적 성장을 도모하면서 영적 사업을 수행해야 할 인간이 생활필수품 때문에 쩔쩔매야 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반면에, 지나치게 많은 재물에 질식되어 영혼의 고갈을 초래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잠언 저자는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30:8-9)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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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in W. Barclay.
2) in K. Aland and others, 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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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디모데전·후서·디도서·빌레몬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198-200.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들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 설교집 35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