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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하는 마음이 있는가
최세창
- 2057
- 2022-06-10 07:21:29
6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7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1. 시작하는 말
한때 길을 가다가 이상한 사람들을 보고는 깜짝 놀라기도 하고, 어이없어 하기도 하고, 실소하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혼자 걸어가면서 키득거리는 학생, 울먹거리면서 계속 만나자는 젊은이, 큰소리로 떠드는 아저씨, 욕하며 말하는 초등학생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같이 핸드폰을 귀에 대고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부자들만 집에 전화기가 있고, 보통 사람들은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전화기를 빌려 쓰거나, 공중전화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초등학생들도 핸드폰, 그것도 학습 자료가 저장되어 있고, 또한 편하게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갖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인터넷을 할 수 있는 핸드폰을 들고 다닙니다. 돈만 있으면 참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2. 지족하는 마음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과학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 문명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환경 파괴와 환경오염 등의 부작용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옛날엔 전쟁이 일어나도 한 번에 한 명을 죽이기도 쉽지 않았지만, 과학 문명이 발달한 이제는 전쟁이 아니라도 한 번에 많은 사람을 살상할 수 있습니다.
또, 만병의 원인이라는 스트레스, 그것도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다양한 면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핸드폰이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핸드폰이 있어도 성능이 더 좋은 핸드폰을 갖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집이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집이 있어도 더 큰 집에 사는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렇다고 그 모든 스트레스를 해소할 많은 돈이 쉽게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떠나 살 수도 없고, 원시생활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잠깐의 만족이 있으나, 새로운 불만을 초래하곤 합니다. 이 모든 생각 또한 스트레스를 받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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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은, 신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바울 사도는,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분수를 지켜 만족할 줄 아는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지족하는 마음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르친 지족하는 마음은 다릅니다.
“지족하는 마음” 또는 ‘자족’의 헬라어 아위타르케이아스(αὐταρκείας)는 스토아학파의 도덕상 최고의 목표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말로 인간이 모든 물질과 모든 사람들에게서 무조건으로 완전하게 초연한 정신 상태와 인간이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고,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상태에 이르는 것은, 어떤 종류의 정신적인 태도에 의한다고 했습니다.
첫째, 모든 욕구를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만족은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욕심을 적게 내는 데 있다고 믿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가장 부한 인간이 누구냐고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자이다. 그 이유는 자족이야말로 자연의 부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둘째, 자기 자신, 또는 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정과 정서를 배제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모든 욕구를 제거하는 일과 정서 및 감정을 배제하는 일은, 모든 것 속에서 신의 뜻을 본 의식적인 의지 행위에 의하여 실행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신의 의지가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모든 것은 다 신의 뜻이므로, 신의 뜻에 반항하는 것은 무익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의지의 힘으로 훈련하고, 굳게 하여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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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하기 위해서 그들은 모든 욕구를 물리치고, 모든 감정을 배제했습니다. 사랑은 인생에서 뿌리뽑히고, 염려와 생각은 금지되었습니다. 글로버(T. R. Glover)는 “스토아인은 마음을 사막으로 만들고, 그것을 평화라고 불렀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사실상, 모든 욕구 제거와 모든 정서 또는 감정 배제는 불가능한 일이고, 그 상태에 이르고자 하는 것은 엄청난 욕심이요 허황된 욕심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을 비우라고 하지만, 마음을 비운다고 지족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상, 마음은 비운다고 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랑의 삶을 위해서, 마음을 가꾸고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무소유의 삶을 주장하며 가르치는 성직자들과 지성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굶어죽는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면서, 무소유의 삶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유형의 소유나 무형의 소유가 많은 사람이, 무소유의 삶을 권하는 것은 일종의 기만입니다. 사랑을 위해서는 소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빌립보서 4:11 이하를 보면 바울 사도는,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에 의해 전능하신 주님과 연합함으로써, 어떤 형편에든지 주님 안에서 지족할 수 있는 비결을 터득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바울 사도의 고린도후서 3:15을 보면,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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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님 안에서, 우리의 현실에 대해 분수를 지켜 족한 줄을 알아야 경건이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경건”의 헬라어 유세베이아(εὐσέβεια)는 하나님을 숭상하고, 인간을 존경하고,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정신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숭상하고, 인간을 존경하고, 자기 자신을 귀히 여기는 정신이 있어도, 자기 현실에 대해 분수를 지켜 족한 줄을 알지 못하면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족하는 마음, 즉 분수를 지켜 족한 줄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첫째,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49:17을 보면,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전도서 5:15 이하에는,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라고 했습니다.
둘째,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천하를 주어도 안 바꿀 생명을 거저 얻었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먹을 것과 옷들이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을 족한 줄로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본적인 생활은 각 사람의 신분과 임무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족한 줄로 안다는 것은 신분 상승을 포기하고 만족하거나, 보다 나은 신앙성장을 마다하고 자족하거나, 100점도 있는데 40점으로 만족하거나, 주 하나님의 더 이상의 신령한 은혜와 재물의 복을 마다하고 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성장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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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불의한 부자와 돈을 우상시하는 부자와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섬기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가난을 장려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미덕도 아닙니다. 영적 존재로서 영적 성장을 도모하고, 신령한 일도 해야 할 사람이 생활필수품 때문에 쩔쩔매야 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더 큰 사랑을 위해서는 더 커져야 하고, 더 많은 사랑을 위해서는 더 많은 소유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분수에 넘치는 많은 재물에 질식되어, 영혼의 고갈을 초래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잠언 30:8 이하를 보면,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누군지 모른다고 할 정도로,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할 정도로 거부가 되어서는 안 되고, 먹고 살기 위해 도적질을 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정도로 가난해도 안 됩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신분이 높든지 낮든지, 분수를 지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태어날 때에 우리는 알몸이었습니다. 우리는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태어날 때에 우리는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현재의 자기 자신에 대해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창조주의 작품이고,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존재입니다. 성장과 발전의 가능성이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순경이든지 역경이든지 간에,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순경이든지 역경이든지 간에 환경에 순응해 살거나, 환경을 이용해 살거나, 환경을 극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4:13을 보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설교 동영상: 유튜브)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들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 설교집 35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