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선교순례기(3차)

함창석
  • 2406
  • 2022-07-01 19:35:09
몽골선교순례기(3차)

산돌 함창석 장로

흰 양 무리 오르는 언덕으로
바위가 듬성듬성
풀 나무도 듬성듬성

목동도 안도의 숨을 내 쉬고
잠시나마 쉬고 있다

고비 끝으로 샘 솟아올라
길 가던 낙타가 목을 축이고
털 머리를 쳐들며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별 헤아리던 밤이
수천 해를 이어오고
부는 바람 그 얼마나 찼을까

이마 주름살이 예술인데
누런 빛 얼굴마다
희망 찬 꿈으로 아기를 업고
말 젖을 짜내고 있다

보기는 초라한 듯하지만
그 세월 속 보금자리 아닌지

2022년 초부터 계획을 하여 추진하던 M.T.B.C 산돌 기독문학대회에 참가하여 시상을 하는 일이 중심이 되어 개척한 교회와 몽골을 14박 15일로 선교순례를 하게 되었다. 그 동안 문학상금과 대회 추진을 위해 300만원을 계좌이체 하였다. 행사추진 계획서대로 대회장, 간사, 심사위원, 운영위원이 선정이 되고 최종 점검을 마친 상태에서 6월 18일 시상식에 참가하려고 사전에 코로나 예방접종 1-4차까지 확인서도 챙겼고 여권 등 짐을 간단하게 챙겼다. 교회에서 출발전날 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였다. 이은복 담임목사와 사모, 안상민 장로, 신순녀 권사, 여선교회 등 봉헌한 전달후원금을 잘 챙겨 두었다. 몽골은 3차가 되니 어느 정도 익숙하기에 이르렀다.

6월 15일 수요일

아침 9시 배웅하는 아내와 함께 경기여객을 타고 동서울에서 인천공항까지 승용차로 태워다주는 딸을 만나기로 하였다. 요즘은 코로나로 원주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무정차 리무진이 무기한으로 결항 중이다. 그래서 동서울로 가게 되었다. 딸과 동서울에서 만나 인천공항으로 이동을 하였다. 점심식사를 간단히 하고 오후 4시 30분 몽골항공(M.I.A.T)을 타기 위해 수속을 마쳤다. 23kg으로 한정된 화물가방을 부쳤다. 10kg이 넘는 가방 한 개와 서류가방을 들고 4시 30분에 출발을 하였다.

비가 약간 뿌리는 상황에서 이륙을 하였고 구름층을 뚫고 기체가 약간 흔들리며 1만m 이상 상공에 진입을 하였다. 구름 위를 미끄러지듯이 날아가는 비행체는 안정을 찾았다. 비행기 엔진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렸다. 창으로 바라보니 구름 아래의 풍경이 너무 신선했다. 마침 자리가 5A석이라 내려다보며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다양한 구름 모양, 바다, 육지 위를 지날 때, 찬란하게 빛이 나는 태양 등 여러 컷을 기념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고비를 넘는 장면을 촬영하였다.

하늘의 소리

이륙할 때 소리는 매우 시끄럽습니다
낮은 구름층을 뚫고 오를 때는
귀가 먹먹하기도 합니다
1만 미터 상공을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소리는
조금 거친 자장가 같았습니다

1만 미터 상공

BC 5세기 철인 소크라테스나
BC 4세기 알랙산드로스 대왕은 보았을까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BC 6세기 공자나 맹자 장자
BC 3세기 진시황제는 보았을까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았을까
에베르트산보다 높은 고도에서
1만 미터 상공에서
해 하늘 구름 그림자 바다 등등을
아마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멀리 하늘은 파랗습니다
구름이 아래로 보입니다
먼 구름은 하얗게 보입니다
그 아래로는 짙푸른 바다가 보입니다

구름 그림자가 사막위에 보입니다
위로 높은 하늘에는
찬란하게 태양이 빛나고 있습니다

착륙하기 전

호수와 도시가 보였습니다
한참을 지나가더니
사막과 구름층이 보였습니다
아주 작은 촌락도 보였습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경작하는 밭과 초원도 보였습니다

옆자리에 탄 여인은 국방부 소속으로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몽골로 간다고 하였다. 대화를 하는 중 내 신상도 이야기하며 가지고 가던 시집, 에세이집 등 두 권을 선물로 주었다.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울란바토르 신공항에 도착을 하였다. 출입국심사는 무비자가 되어 좀더 상세하게 하였다. 짐이 늦게 나왔다. 한국어를 강의한다는 노신사도 만났다. 몽골에서 한국어 지도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백낙현, 윤향숙 선교사가 마중을 나와 안내를 하였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울란바토르 J. 호텔로 향하였다.

울란바토르 시내는 교통지옥이나 다름이 없었다. 많은 차량을 붐비기 시작을 하였는데...... 이거 참 선교사 차량이 5거리에서 시동이 꺼진 것이었다. 몇 번을 그러더니 겨우 시동이 걸렸다. 요즘 몽골에 기름 사정으로 시골에서 기름을 넣은 것이 휘발유 펌프에 영양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J. 호텔까지는 도착하였다. 나를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몇 번을 고생하였다고 문자가 왔다. 내일 아침에는 정비업체에 바로 가서 연료펌프를 교체해야 한다고 하였다. 오늘 죄송하다고 하였다.

6월 16일 목요일

아침 10시 북쪽에 있는 아리옹살히트(거룩한 바람 교회)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바이르마 담임목사가 선교사들을 태우고 나를 안내하려고 호텔까지 왔다. 아리옹살히트 교회에서 어린 아이들 10여명과 함께 성경이야기를 나누었다. 세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었다. 아이들은 매우 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하였다. 이 교회에서 어린이 3명이 우수상, 장려상에 입상을 하였다고 한다. 입상한 아이들은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선교후원비 몽골 돈 30만 투구르를 전하였다. 선교후원비는 봉산교회 담임목사님 사모가 8개 교회를 후원하라고 헌금한 것을 전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아리옹살히트 교회에 전한 것이다. 대접하는 차를 한잔 마시고 아이들과 기념사진도 촬영하였다.

다시 돌아서 서쪽으로 향하여 신학교 학생처장인 히시게 목사가 시무하는 텡게르구르교회(천국의 다리)를 방문해 성경 등 일반적인 신앙 이야기를 나눈 다음 후원금을 전달하였다. 딸아이는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산길에는 울란바토르 시내가 내려다 보였다. 기념사진도 촬영했다. 아리옹 살히트 목사는 우리를 몽골 선교사들과의 모임이 있는 장소까지 안내하고 돌아갔다. 이분들은 운영위원, 심사위원이 대부분이었다. 윤향숙 선교사는 기름 값으로 봉투를 따로 건넸다. 친선 당구가 있었다. 몽골에는 4구 당구장이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마저 운영이 안 되어 잘 아는 김종진 선교사에게 하루 동안 열쇠를 맡겼다고 한다. 당구는 편으로 하였는데 나는 편을 잘 만나 승리하였다. 마지막 쿠션을 내가 쳤다. 당구가 끝난 다음 식사를 하면서 문학에 관한 이야기, 대회에 관한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대회를 후원하는 내게 감사를 표하고 칭찬을 많이 해 송구했다. 김봉춘 시인에게 시집, 에세이를 전했다.

6월 17일 금요일

오늘은 시상 대상패와 우수, 장려 등 상장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내에 상패제작사에 들려 내용을 확인하고 선교사자녀들이 다니는 M.K스쿨로 향하였다. 안내자는 이근배 중등교감이며 교장대행을 하고 있고 학비가 저렴하고 신축된 건물을 소개했다. 박미라 행정실장도 나와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향후 날래흐 산돌교회지역에 선교센터 건물도 M.K스쿨 건물 방식으로 축소해 지을 예정이라 선교사 부부는 면밀하게 체크하고 있었다. 백석대학교 기독교전문대학원 김윤환 교수, 가천대학교 문복희 교수, 펜클럽 경기본부장 정태호 장로, 함창석 장로가 후원하는 도서(시집, 동화집) 등을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학기말이라 시험 준비로 교육과정을 마쳐야 하기에 바쁘다고 하였다.

점심으로 중국집에서 군만두로 간단하게 먹고 북 까페 같은 곳에서 만나기로 한 M.T.B.C 신임학장 신영각 목사를 만났다. 신 목사님은 바둑을 잘 두신다고 백낙현 선교사가 바둑판을 준비했다. 나도 바둑을 두는 지라 커피숍 칸막이가 되어 있는 곳을 2시간 빌렸다고 하여 문을 닫고 둘이 두었다. 내가 흑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나도 한 때는 인터넷바둑 6단까지 두었다. 최 근래는 두지를 않았지만 심사숙고한 끝에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신영각 학장이 얼마나 장고파인지 나도 덩달아서 장고를 하게 되었는데 수비를 나름대로 잘하고 집을 차지했다. 신영각 목사는 백낙현 선교사가 도착하자 한참 나를 칭찬하였다. 저녁에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장로님 기력이 대단하다고 칭찬을 더 하였다.

저녁시간은 종아일교회 금요집회에 참석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하여 종아일교회에 도착하였다. 종아일교회는 중부연회 시흥북지방 신천교회에서 설립한 교회로 현재 담임선교사로 백낙현, 윤향숙 부부가 섬기고 있는 교회이다. 제법 교회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몽골인 민데 장로가 섬기기도 하여 교인들이 안정적인 것 같아 보였다. 혈액종양으로 간증을 하는 자매에게 우리 돈 10만원을 치료비로 전하며 기도했다. 속히 나아 하나님의 일, 교회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간절하게 기도했다. 교회에는 아직도 게르가 식당이였고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이곳은 가난한 지역이나 요즘 부동산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교회를 옮기는 문제 때문에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청년을 비롯한 찬양단을 각 지역에 보내 선교를 돕고 있다고 한다, 보잉히식 목사도 이교회 교사 출신이라고 한다.

저녁은 내일 시상식 행사 인사말을 정리하여 다시 숙지를 한 다음 잘 해보려고 준비했다. 문학상제정 취지였다. 김성호 선교사가 단기선교를 왔다가 아르바르헤르 영원한구원의별교회 지붕전기공사에 참여하였다가 감전이 되어 순교한 것을 추모 기념하는 것이다. 김성호군은 당시 23살이었다. 대학생 단기선교팀이었다. 김성호는 우리 아들과 두 살 차이인데 어릴 적 교회학교를 같이 다녔고 한 마당에서 뛰어 놀았다. 성호 아버지는 봉산교회 담임목사였고 나는 당시 권사였다. 그 후 서울 미아중앙교회로 임지를 옮겼고 나는 계속해서 봉산교회에 다녔다. 당시 우리 아들은 부산 고신의대 재학 중이었다. 2014년 몽골 1차 선교순례 때 M.T.B.C 안에 장학금을 마련하여 성호장학회를 설립하였다. 성자는 김성호의 이름 성이고 일자는 함영일의 이름 끝 자이다. 2022년을 맞아 성일장학회 사업으로 M.T.B.C 산돌 문학대회를 제정하고 시행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6월 18일 토요일에는 시상식이다.

6월 18일 토요일

산돌 기독문학상 제정자 인사

만나서 반갑습니다. 참 반갑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길 바랍니다.
1986년은 서울에서 아시안게임이 있었습니다.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이 있었습니다.
1986년에는 김성호는 원주초등학교 3학년 함영일은 1학년이었습니다.
김성호는 김여일 목사님 아들이었고 함영일은 함창석 장로의 아들이었습니다.
두 아이는 1986년부터 1988년까지 3년간 봉산감리교회 교회학교를 다녔습니다.
교회마당에서 뛰어 놀았습니다.
그 후 김성호는 서울로 아버지를 따라 갔고
대학생이 되어 몽골 단기선교사로 활동하다가 아르바르헤르 영원한구원의별교회 지붕공사 중 전기사고로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날항 공동묘지에 고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 후 아버지 김여일 선교사는 10여 년간 몽골선교사로 헌신하게 됩니다.
제 아들 함영일은 전문의가 되어 지방도시 영월 삼성 수 병원원장을 하고 있습니다.
2000년경 영원한구원의별교회 예배당 건축을 원주 봉산교회가 지원합니다.
함창석 장로(당시는 권사)는 중국 내몽골 선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2014년 몽골선교지를 방문하며 성일장학회를 조직하고 장학금을 헌금합니다.
김성호의 이름 가운데 성자와 이름 끝 함영일의 일자를 따온 것입니다.
2014년 당시 예배당부지 헌금으로 2016년 날래흐 산돌교회를 창립하게 되었습니다.
보잉히식 목사를 파송하게 됩니다.(당시는 전도사)
2022년 성일장학회 사업으로 몽골 M.T.B.C 안에 산돌기독문학상을 제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1회 기독문학대회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 동안 수고하신 김종진 선교사님을 비롯한 운영위원, 이헌영, 김봉춘 선교사님을 비롯한 심사위원, 간사로 수고 하신 윤향숙 선교사님, 학장이신 백낙현 선교사님 등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리고 오늘 문학대회가 존귀함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것입니다.
여기에 문학대회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늘 상을 받는 분들을 축하하며 받지 못하시는 분들도 2회 3회에는 반드시 받으실 것입니다.
노력해주십시오. 기대해주십시오.
다시 한 번 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인사에 대신합니다.
고맙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기독교문학

성경문학, 성경시는 창조와 타락을 말합니다.
소재, 용어, 주제가 교회 안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교인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기독문학, 기독시는 구속과 완성을 말합니다.
소재, 용어, 주제가 교회 밖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비기독교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성경문학에서 기독문학으로 확장이 되는 데 역점을 둡니다.
보혜사 성령의 감화, 감동의 역사로
그리스도 예수 구원의 확장을 시도합니다.

교리와 장정을 넘어서
천국복음전파를 위한 도구로서
기독교문학은 인류에게 기독교세계관을 이룹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우리 인류사회가
새 하늘 새 땅 새 역사임을 믿고
구세주 예수의 세계를 이루게 됩니다.

종말로 이 땅에 다시 오셔 심판하심으로
우리는 알곡과 양 무리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이루게 됩니다.

아침 10시에 시상식이 있는 어린양교회였다. 어린양교회는 서울연회 종교교회, 송천교회 등이 오랜 동안 후원하는 교회다. 김종진선교사, 몽골인 어기 목사가 시무하는 몽골 감리교회 제일 중심이 되는 교회다. 김종진 선교사의 안내로 오르나 통역을 만나 메일로 보낸 내용을 확인한 다음 서로 교감을 나누고 만족한 끝에 시상식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순서에 의해 찬양, 신영각 신임 학장의 설교, 함창석 장로의 설립 취지 인사말, 시상식, 수상자들 시낭송 등이 끝났다. 참가자중 시상식에 참여한 이들에게는 참가상을 후원하였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주최 측이 마련한 햄버거세트를 시상식 참가한 모든 분들(100여명)에게 나누고 식당으로 가 친교를 나누며 산돌 기독문학대회 후담을 나누었다.

참가한 아동부 어린이들 가운데 아리옹 살히트 교회는 예쁜 드레스를 차려 입고 참가하여 감사했고 지방에서 참가한 수상 어린이는 멀리서 왔다고 하기에 감사했다. 아이들은 모두 눈빛이 밝았다. 대상을 받은 전도사는 지역행사에 참여하는 관계로 영상으로 보내왔으며 대신 신학교 관계자가 수상을 하였다.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사정이 안타까웠다. 현재 담임자로 단기선교팀을 안내하기 때문이란다. 우수상을 받은 신학생은 등록금 전액마련이 어려웠는데 상금으로 등록금 반을 냈다고 한다. 나는 그를 포함하여 수산하는 모든 이들이 몽골 기독문학을 이끌어갈 수 있는 미래가 활짝 열리기를 기도했다. 제1회로서 기간이 짧았던 관계로 50여명만이 참가했지만 내년에는 70명 이상이 참가할 것으로 기대하며 상금 및 행사 비용을 마련하기로 다짐을 해보면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렸다.

산돌 기독문학상

우리 하나님께 몽골을 노래하라.
기독교문학은 빛, 꿈, 희망이다.
기독교문학은 삶, 숨, 생명이다.
기독교문학은 멋, 꽃, 자연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라.
구세주 하나님을 찬송하라.
보혜사 하나님을 찬미하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노래하라.
주 예수 다시 오심을 기다리라.
새 하늘, 새 땅, 새 역사를 이루리라.
그리스도 예수의 세계가 이루어지리라.
우리 하나님께 몽골을 말하고 글을 쓰라.

몽골 그리스도인

봄에는 새싹이 돋는 것이 신비한대
당신은 봄날입니다
여름에는 초록 잎들이 싱싱한 것이 신비한대
당신은 여름날입니다
가을에는 열매들이 맺히는 것이 신비한대
당신은 가을날입니다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들이 신기한대
당신은 겨울날입니다
몽골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봄이요 여름이요 가을이요 겨울이요
사계절 특히 긴 겨울날에도
그리스도 예수 은혜와 평강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양이니
평화롭고 자유로우며 행복하지요
사랑하는 몽골 그리스도인들은
샤론의 장미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열매를 맺고 기쁨의 단을 거두어
마지막으로 추수할 때에
주 하나님께 알곡으로 드려지게 될 것입니다

6월 19일 일요일

주일 아침이다. 오늘은 날래흐 산돌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아동부 설교를 맡았다. 오전 11시에 아동부, 오후 2시에 어른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10시에 도착을 하여 여러 사람과 인사를 나눈 다음 예배를 드렸다. 설교 주제는 어린이들도 신앙생활을 잘 해 세례를 받고 장차 산돌교회 뿐만 아니라 날래흐, 몽고, 나아가서는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교회어린이들에 희망을 주었다. 아이들은 진지했다. 50여명의 어린이가 활기찼다. 어린이날 등 행사 때는 100명이 넘게 참가하였다. 해마다 어린이날에는 날래흐 산돌교회 지역에 선물을 보냈다. 목회자 사례비도 협약을 하여 지원하고 있다. 세례나, 야외예배, 찬양대회 출전 등 학생들을 위해 친교비로 해마다 보내기에 명예장로로 섬기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방문교회보다는 친밀감이 더해 감사했다. 어린이 예배가 끝나고 점심시간에는 전교인이 ‘허르헉’이라는 양고기로 친교를 하였다. ‘허르헉’은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몽골 전통음식이라고 한다. 나는 명예장로로 귀한 가보다. 산돌교회 부지는 2014년 제1차 몽골선교순례 시 교회개척을 기도하며 내가 봉헌 곳이다. 테를지 국립공원 가는 입구로 신공항과도 가까운 곳이다.

오후 주일 어른 예배는 담임목사 보잉히식의 설교와 찬양, 나의 인사말과 교인들 소개 및 기념촬영 등 은혜가 넘치는 예배였다. 몽골은 겨울 난방을 하는데 이곳은 아직 중앙난방이 들어오지 않아 갈탄으로 난방을 하고 있다. 옆으로 선교센터를 염두에 두고 구입한 건물과 부지, 그리고 종아일교회에서 구입한 대지 등 800평이 넘는 부지를 확보하고 있다. 지금 이곳도 4배가량 부동산 값이 올라 교회개척이 쉽지는 않은가 보다. 물론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야 가능하겠지만 인간의 생각일 뿐이다. 보잉히식 목사의 설교는 신앙의 경주라는 주제인데 운동선수 각 종목을 들어가며 경기에서 승리하자는 내용으로 열정적이었다. 바울을 통해 편지하던 내용의 하나님의 말씀이라 감동, 감화가 되었다.

모든 예배가 끝나고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1박을 하기 위해 백낙현, 윤향숙 선교사 내외와 보잉히식 목사 내외와 출발하였다. 두 번이나 방문하였기에 낯 설지는 않았지만 몽골 제일의 경치가 좋았다. 게르에 짐을 풀고 저녁 시간 산책을 하였다. 오후 9시인데도 밝았다. 바위들, 풀들이 나를 반겼다. 여러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다. 6년 전보다 관광지 건물들이 늘었다. 게르 문도 유리문으로 바뀌었다. 안에 날로도 바뀌었다. 밤이 되자 별을 헤는 밤이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백선교사가 가져온 바둑판으로 한판 두었다. 백선교사가 4점을 깔고 두었다. 내가 4집 이겼다. 테를지 밤은 피곤하지 않았다.

6월 20일 월요일

아침 해 밝은 하늘아래 솟아난 바위산은 더 멋져 보였다. 온 하늘은 맑고도 신선했다. 오늘은 처음으로 말을 타야 하겠다는 생각을 윤선교사에게 전했다. 자라나는 손자들에게 교육용으로 몽골의 말을 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동안 데를지를 방문하였지만은 처음으로 타려고 하는 것이다. 보잉히식 목사 남편인 갈이 몽골 전통복을 가져와 내게 입혀주고 기념촬영을 했다. 내 모습이 몽골인 같다고 한마디씩 했다. 더군다나 안경에 부착된 썬그라스로 인해 내가 보아도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손가락으로 두 팔로 브이자를 그렸다. 몽골 기독교회를 위해 승리가 있으라는 암시이기도 했다.

유명한 거북바위를 탐방하고 말을 타려고 하였으나 준비가 늦어져 돌아가다가 타기로 하고 보잉히식 목사가 말몰이꾼들과 협상을 하였다. 도착하여 있으니 말 떼가 달려왔다. 몽골 전통복을 그대로 입고 타기로 하였다. 갈이 긴 줄을 붙잡고 아내하며 도와주었다. 백낙현 선교사는 보잉히식 목사가 도왔다. 말을 올라탈 때는 왼발을 올리고 오른발을 올려 타야하는데 나는 부축을 받고 탔다. 말은 초보자를 알아볼 정도로 영리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말이 머리를 흔들고 자주 움직였다. 30분 정도 타기로 계약을 했다고 한다. 천천히 걷다가 기념사진을 남겼다. 동영상도 윤향숙 선교사가 찍었다. 달려볼까요 묻기에 안 된다고 했다. 남은 일정이 있기에 혹시 안전사고도 있고 김성호 추모식이 있는 날이다. 한 바퀴 돌고 나니 그런대로 재미도 있었고 만족했다. 어린 목동이 연락병이 되어 오갔다.

나르앙

빛나는 태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날앙 나르앙
여기에 다른 하나의 태양이 솟아오르니
그 이름 찬란한 순교자가 아닐까
여기에 또 다른 태양 하나가 솟아오르리니
몽골을 사랑하는 영원한 빛으로
그리스도 예수 여기에 다시 오시리라
아침 태양을 영접하러 나오라
한낮에 빛나는 태양이 신성 하구나
저녁 태양을 배웅 하자구나
한밤을 안식하고
새 하늘 새 아침을 맞이 하자구나

어린양교회에서 김성호 추모하는 팀과 만나 차 2대로 나르앙(태양)이라는 몽골 공동묘지로 향하였다. 묘지 근처에 다 달았을 때 길이 파여 있어 작은 차는 갈수가 없어 한 차에 아이들까지 9명이 타고 올랐다.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오줌이 마려워 차 뒤에서 방뇨하고 추모식을 가졌다. 김종진 선교사의 메시지 전달과 어기 목사, 나라 목사 등 추모하는 말을 남겼고 나는 추모시를 3편 낭송했다. 바람 참얼, 돌비에 새긴 추억, 성일장학회 등 세편 시와 시조를 낭송할 때 누시울이 젖었다고 한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김성호의 순교사역이 길이길이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돌아와 점심 겸 저녁을 들었다. 나라, 보이나 목사에게 우리 봉산교회 담임목사 사모가 전하는 후원금을 전달했다. 참여한 두 아이들에게 금일봉을 전했다. 나라 목사, 보이나 목사가 우리 봉산교회 담임목사와 내게 선물을 준비해 왔다고 하여 감사하다. 나라 목사가 시무하는 영원한구원의별교회를 후원한지가 20년이 넘었다. 나는 가끔 월동신탄비를 지원하였다. 이 번에도 월동비 한국 돈 50만원을 지원하기로 해 관리하는 김종진 선교사에게 전했다. 오늘 아르바르헤르에서 울란바토르까지 버스 교통비가 몽골 돈 20만 투구르라고 하여 나중에 김종진 선교사 편으로 전해주리고 하고 처리하였다. 다음 날 영원한구원의별교회에서 지도자연수가 있다고 하기에 숙소로 돌아와 윤향숙 선교사가 계좌이체 하였다고 문자가 왔다.

바람 참얼

고비를 지나가는 바람아
모래 먼지들이
이 땅에는 옷이더냐

초원을 지나가는 바람아
나무 풀까지도
이 땅에는 옷이더냐

돌비 위에다가
새긴 글귀들의 환영들이
한 젊은이 넋이더냐

주님의 신령과
하나로 핏 자국이요
순교의 자기 십자가이라

저 하늘나라로
활기가 넘쳐나는 바람아
참얼 시민은 아닌지

둥근 겔 지붕야말로
꿈꾸는 바람은
화목을 암시하고 있다며

무릇 성인들이
남긴 한줌의 넋으로
수천 년이야 영존하리니

영원한 삶을 주시는
하늘 생명책에
당신의 이름은 빛나리라

돌비에 새긴 순교사역

수천 개의 돌비석이 줄을 이었지
그 중 하나 앞에 서서
머리를 숙여 보았지
지난 세월을 추억이라도 하게 되었다

수만리 몽골 땅으로 단기선교의 장정
여기 돌비에 새겨진 이름이여
거룩한 젊은이 인지도 몰라

태어나 살다가 되돌아가는 인생
그 연수가 다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 의해
교회를 기억하게 하는 죽음 이야말로
참 순교의 길이 아닐까

추억 속에 새로운 상상으로
한 줄의 글만을 남기려고 달려왔으니
한 다발 꽃바구니만 놓고 가나
거룩한 영과 마음 잇는 열매이리요

성일장학회

한마당 뛰어 놀다 앞서 간 순교자여
성호야 우리아들 내 아들 함 영일아
너희 둘 성일장학회 아름답게 꽃피라

6월 21일 화요일

오늘은 M.T.B.C 신학교를 방문하는 날이다. 신입생 선발 면접 및 시험이 있다고 한다. 나는 신영각 학장에게 나의 시집, 에세이를 전달하고 도서실에서 잠시 쉬었다. 그리고 기도하는 방으로 들어가 머리로, 가슴으로, 무릎으로 1시간 정도 신학교와 성일장학회 등을 위해 기도를 하였다. 주로 중재, 도고하는 기도였다. 신학생이 배가 되어 몽골에 기독교 지도자가 늘어나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기도가 끝난 다음 밖으로 나가니 사찰 관리인의 딸들이 그물그네를 타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니 나보고도 타라고 하여 올랐더니 밀어주었다.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다. 6살, 7살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진도 찍고 2만 투구르 짜리 한 장 씩 건네주니 집으로 들어가 자기 아버지와 함께 나왔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가족이 많아 신학교 관리와 때로는 건축현장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장성한 두 아들은 탁구선수 출신인데 지금은 타구를 하지 않고 취직하여 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나중에 여러 시설들을 돌아보며 미비한 점들을 체크했다. 지방학생을 위해 통신으로 강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새로 임용된 신임 신영각 학장이 2년 임기를 잘 마치고 2년 더 연임하기를 기도했다. 건강이 좋지 않았으나 그래도 회복상태라니 다행이다. 4년을 목표로 한다고 하였으니 더욱 그렇다.

6월 22일 수요일

오늘은 옵스 아이막으로 가야 한다. 장거리다. 어제 오후에 좀 쉬면서 체력을 보충했으니 다행이다. 홉드까지 비행기로 가고 거기서 6시간을 울랑곰 대학 학장 밧턱터흐가 보내주는 차로 이동을 하여야 한다고 한다. 울랑곰 비행장은 확장공사 중이라 비행기 운행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국내선 작은 비행기라 이륙부터 흔들어댔다. 2시간 30분이 지나 오후 6시경에 홉드 공항에 도착하였다. 밧톨가 교수가 차를 대기하고 있었다. 기내식이 제공되지 않아 저녁을 식당에서 먹었다. 그리고 여름집이 즐비한 홉드 강가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몽골은 여름이 오면 더위를 참지 못해 강가에 나와 게르를 치고 피서를 한다고 한다. 밧톨가 교수는 드론으로 촬영을 한다고 한다. 본래 여행가였으나 요즘은 사진을 전문으로 하고 사진작품전도 옵스 울랑곰에서 하고 있다고 한다. 드론은 10km 상공까지 올라가 홉드 전 지역을 돌아가며 촬영한 사진을 전송하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중에 방문하기로 약속하였다.

지름길이라고 하여 산 넘고 초원길을 달렸다. 석양은 아름다웠다. 어두운 밤이 되자 별들이 나타나고 육안으로도 쏟아지는 별을 관찰할 수가 있었다. 달리는 중 여우같은 동물도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길을 잘 안다니기에 핸드폰 지도를 확인하며 지름길을 찾아 달렸다. 밤 11시가 되어 울랑곰에서 제일 좋다는 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건너편 도로에 영원한사랑교회 LCD 현판이 잘 보였다. 이 현판은 우리 봉산교회 이은복 목사 가정에서 봉헌한 것이다. 교회 주변이 아주 환해졌다고 한다. 오늘 하루 여정은 정말 피곤하였으나 많은 추억을 남기게 되는 날이어서 참 보람이 있었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봉헌을 하신 목사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으니 장로 스스로가 장하다.

6월 23일 목요일

아침에 영원한사랑교회를 방문하여 후원금을 전달하였다. 내일 홉드에 있는 복음주의 신학교 졸업식인데 이 번에 민데 전도사가 졸업을 하게 된다고 하여 축하했다. 그리고 이웃 교회(뭉힌우능교회)를 방문하여 아마르자야 여자 목사에게 후원금을 전달하였다. 유치원을 경영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도 한다. 지금 옵스 울랑곰에는 성경을 전달하는 단기선교팀이 들어와 활동 중이라고 한다. 숙소로 사용을 하는지 정리정돈이 잘 아니 되어 있고 건물이 매우 낡아 있었다. 게르에서 생활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점심을 민데 전도사 집에서 초대하였다. 허름한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민데 전도사는 6살이나 연상인 사모와 아이들이 셋이었다. 아이들에게 금일봉을 전달했다. 음식은 맛이 있었다. 윤향숙 선교사가 이 울랑곰 지역을 사역할 때 제자들이나 마찬가지라고 자랑을 하였다. 아이들은 기도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차분하게 경청을 하고 단정한 태도가 좋았다. 그리고 이어서 성도 가정 심방을 갔다. 얼마 전 아들이 사망한 가정이라고 소개했다. 말들을 기르고 있었다. 게르 안에는 안정이 안 된 상태였다. 사망자 엄마는 아주 교회에 열심이라고 한다. 아이들 둘에게 금일봉을 전했다. 아이들은 난로에 넘어져 데었다고 한다. 상처가 남아 있었다. 수태차를 마시고 음식을 먹고 말들과 사진도 남기고 돌아오는 길은 올랑곰에서 높다는 바위산을 보았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초원이다. 말, 소, 양떼들이 즐비했다. 여름풀이 잘 자라 짐승들을 기르기에 좋은 시기라 한다. 이어서 바이라, 아마르지야 가정을 방문하였다. 아들 자울랑, 딸 마랄징고아 이었다. 격투기를 준비하고 있으나 여의치가 않은 것 같다. 한 번은 시합을 나갔는데 1회전에 KO패 하였다고 한다. 신학을 하였으나 자신감을 갖지 못한다고 한다. 가족들이 많다고 한다. 어제 방문하였던 성도 가정친척인 것 같다. 수태차와 만두를 빚어 대접하였다. 몽골은 손님이 방문하면 만두를 만들기 시작한다고 한다. 여독으로 숙소에 돌아와 쉬었다.

6월 24일 금요일

아침 소금산을 탐방하기 위해 시의회 의장을 지낸 분의 안내와 운전으로 출발을 하였다. 북쪽으로 향하는 길에는 양떼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을 했다. 중간지점에 지인이 초대를 하였다고 한다. 가보니 손녀의 돌잔치였다. 지역 여러 손님들이 찾았다. 여러 차례 음식들이 나왔고 생일축하 폭죽도 터졌다. 시어머니 되는 분은 몽골 전통복장으로 손님을 맞았다. 들어서자 향수 같은 것을 서로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나도 따라서 해보았다. 말 경주에서 수상한 메달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이 지역 출신이었던 전 대통령 사진도 걸려 있었다. 소와 양 떼가 1500마리라고 한다. 7월 초 지역 나담축제에 참가할 경주 말을 네 마리나 기르고 있었다. 나담 경기에 나갈 목동도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 50대인 주인은 당당하게 보였다. 마을 러시아에서 구입하였는데 나담축제에서 우승을 하면 말 값이 천정부지로 뛴다고 한다. 몽골 돈으로 5천만 투구르는 홋가할 것이라고 한다.

오후가 되자 다시 소금산을 향해 출발을 하였다. 숲이 우거지고 물이 흐르는 곳에서는 낚시도 한다고 하였다. 고기를 낚아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주기도 한다고 하였다. 예전에 역적으로 몰리던 사람들이 이 숲에 숨어들었다가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탈출을 할 만큼 숲이 깊다고 하였다. 물은 2급수 정도로 꽤나 많이 흘렀다. 몽골도 500mm정도 비가 내리는데 강바닥이 넓었다. 모든 산은 거의 민둥산이었다. 예전에는 만년설이 보였던 산도 이야기해주었다. 러시아 지역으로 가면 숲이 우거졌는데 몽골지역은 오직 초원지역이니 불모지나 다름이 없었던 버려진 땅이라고 한다. 러시아 토와 가는 길 국경수비대를 통과하여 소금광산 지역으로 들어가니 산은 붉기도 하고 검기도 하였다. 소금호수가 가운데 있고 소금을 캐내는 굴이 여러 개가 보였다. 소금을 캐내 잘게 부수어 일본으로 수출을 한다고 한다. 안내하던 시의회 의장은 소금 한포를 현장에서 구매하였다. 한국 돈으로 2만 5천원 정도였다. 조금만 더 가면 작은 내를 건너면 러시아 땅이라고 한다. 건너편 산은 러시아라고 한다. 소금을 팔던 50대 여자는 딸이 울란바토르에서 격투기 선수인데 생활비와 훈련비를 지원하기 위해 일한다고 했다. 선교사 내외는 수정같이 맑은 소금 돌을 주워 담았다. 가루소금을 만들기도 하고 장식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은 멀었다. 9시가 다 되어 묵던 호텔에 도착을 하였다. 오늘 하루가 대단히 피곤했다.

6월 25일 토요일

울랑곰 대학을 방문하였다. 실어전문대학과 같은 기관이다. 이영옥 선교사가 한국문화 교실을 운영한다고 한다. 밧턱터흐 학장이 맞았다. 내 시집과 에세이집을 건넸다. 학교현황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 하우스 농법에 대하여 수경재배를 계획하는 것 같았다. 전남대학교와 교류가 있었는데 그다지 성공을 하지는 못하였던 것 같았다. 이영옥 선교사에 의하면 아직 갖추어야 할 시설들이 많다고 한다. 이영옥 선교사는 자세하게 설명을 하였고 특히 몽골어로 번역된 동화집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아직 옵스지역에는 초창기라 한국문화 교실 기초 반이기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점심은 시의회 의장 큰 딸이 여름 집으로 초대를 하였다. 남편은 전 농구선수였다고 한다.

태권도장을 방문하였다. 태권도장 사범은 윤향숙 선교사가 울랑곰에서 10년 전 파송을 받아 제일 먼저 전도한 청년이라고 한다. 지난해는 시의원에 도전을 하였다가 한 표차이로 낙선하였다고 한다. 도장에 들리니 50여명의 수련생들이 정좌를 하고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앞에서기 전 구령에 맞추어 바로 일어나 정렬을 하였다. 인사를 하고 착석을 하라고 하니 바로 앉았다. 태권도 이야기가 나오자 박수를 했다. 나는 초년교사 시절 태권도가 전력증강 3운동에 모형수류탄던지기, 2km 멀리달리기와 함께 강원도교육청 특색사업이었기에 유단자였기에 태권도 심사위원, 심판위원 등으로 활동을 했다. 그 당시 6학년까지 4급을 따야 합격이었다. 모든 학교가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였다. 1년에 4번 심사를 하는데 통과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련생들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선교순례 계획에는 없었지만 즉흥적으로 이루어져 대처하기가 힘이 들었다. 콜라 한 병씩을 선물하였다.

그리고 미용선교회에 안내를 받아 습진 피부병을 치료하고 있는 미용사가 머리를 손질하고 어뜨거, 툭수 가정을 방문하였다. 이들 부부는 20대 초반 밧드겔이 태아날 무렵 날래흐 산돌교회에서 찬양봉사를 하였는데 그 때 지도를 받았던 학생들이 몽골 전 지역 찬양대회에서 첫해는 3등 두 번 째 해는 1등을 하였다. 산돌교회에는 우승 트로필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송사진으로 늘 보았기로 얼굴이 익숙했다. 밧드겔이 첫돌 때 돌잔치를 하라고 한국 돈 20만을 보내준 기억이 났다. 그 때 감사했다고 어뜨거는 말했다. 봉투에 돌 잔치할 돈이 없으니 채워달라는 기도를 하고 잤는데 그 날 저녁 때 윤향숙 선교사에게서 문자를 받고 너무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한다. 두 부부는 한 번 솜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하다가 실패를 하고 철수를 했다고 한다. 찬양과 영성이 있는 어뜨거는 M.T.B.C 신학을 했다. 교회를 개척하겠다면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지금은 동생인 밧유겔이 태어났다.

6월 26일 일요일

아침 10시에 짐을 실어야 하기에 민데 전도사가 차를 댔다. 영원한사랑교회가 가까운 거리이지만 예배가 끝나고 곧 바로 버스에 타야 하겠기에 서둘렀다. 예배당에 들어서자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주일설교는 장로인 내게 부탁을 하여 준비를 했다. 야고보서 2장 26절 말씀을 근거로 하여 예수님을 닮아 일하자는 주제로 설교를 하게 된다. 찬양이 끝난 다음 기도, 성경봉독, 설교 순으로 이어졌다. 통역은 윤향숙 선교사가 했다. 민데전도사 신학교 졸업축하, 성경보급단체 치하, 미용선교회, 태권도 선교회 치하 등을 하고 성도들의 분위기를 파악하며 간결체로 설교를 했다. 천국복음 전파로 선교와 전도에 관하여, 성경을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과 훈련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소자와 같은 이들을 위해 봉사와 구제에 관하여 설교를 했다. 마지막으로 참 좋은 십자가의 군사가 되기 위해 준비한 파워포인트자료를 띠워 놓고 교회비전을 제시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설교가 끝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어뜨거 시어머니인 집사 댁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 후 버스터미널로 이동을 하여 3시 차로 24시간을 타고 차에서 1박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잘 감당하기를 기도하며 올랐다. 일요일 오후는 차를 타고 호수가 있는 지역을 지나 10시쯤 밤을 맞았다. 하늘에는 별들이 나왔다.

6월 27일 월요일

작은 고비의 꿈

솟아난 샘물이 맑으면 밤에는 달님이 내려와 쉬다 가고
솟아난 샘물이 맑으면 낮에는 해님이 내려와 놀다 가며
황량한 사막에 나무를 심으면 하늘 푸르듯 새들 찾으니
은하수 별님이 쏟아지는 고비 오늘 밤이 참 아름다워요

일요일 오후 밤새도록 차는 달렸고 별들이 나오자 차에서 잠을 청했으나 자다가 깼다가 하니 아침이 되었다. 해는 숨바꼭질을 했다. 높은 산 낮은 산을 지나치며 달렸다. 허리가 불편하였지만 사막에는 낙타가, 초원에는 말, 양, 소떼가 있었다.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로 컵라면과 군만두로 나는 한 끼를 때웠다. 이 휴게소는 6년 전에는 없었는데 새로 건축이 되었는지 무척이나 깨끗했다. 여기저기 공사 중이다. 기존 전해오던 건물들에는 차들이 거의 없었다. 몽골도 사업상 빈부가 차이가 나고 있었다. 오후 2시 30분이 넘어서야 울란바토르 터미널에 도착을 하였다. 23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종아일교회 청년이 차를 대기하고 있어 바로 J.호텔로 가 여장을 풀고 쉬어야 했다. 피곤한 밤이었다.

24시간 버스타고

3시간을 달려도 초원
풀이 거의 없는 흙모래 평원
낙타 무리가 보이지요
5시간을 달려도 초원
풀이 그런대로 자란 풀밭
양떼 소떼 말무리가 보이지요
해는 서녘으로 지고
차츰 땅거미가 깔려가자
하늘은 별을 쏟아내고 있지요
북두칠성 등 은하수가 보이지요
버스에서 1박을 해야 하니
허리도 엉덩이도 매우 아프지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아침 해를 맞지요
해는 숨바꼭질을 하지요
산 뒤에 가리다 나오고
다시 가리다 나오며
차츰 하늘로 올라 빛을 발하지요
휴게소서 잠시 머물고 있는데
오른쪽으로는 호수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돌 바위산이 보이지요
컵라면을 몇 개 사고
성도가 마련해준 주먹밥과 먹지요
돌아오는 아스팔트길은
찻길인지 소 길인지 양 길인지
때로는 구별이 되지 않지요
한참을 지나다 보니
하얀 머리 몸통뼈가 나뒹굴고
누워 있는 소 형태가 보이지요
한참을 다시 가다보니
차와 부딪혀 사고가 난 건지
소가 한 마리 누워있지요
짐승과 인간문화가 충돌한 것일까
버스 의자 머리 천표에는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한글로 쓰인 덮개가 그대로 이지요
버스는 한국 경기여객 중고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요
꼬박 24시간 만에 달려와
도착한 울란바토르터미널은
차들이 이리저리 얽혀 매우 복잡하다
24시간 장거리는 끝이 났다

몽골 노인

수년전 찾았던 작은 고비를 지나는데
낙타 무리가 관광객을 태우려고 대기하고 있지요
거기에서 조금 지나가니
새로 생긴 휴게소가 있지요
시설이 예전 것보다 상당히 깨끗하지요
음료수를 하나 사서 마시고
잠시 쉬고 있는데
몽골 노인이 내게 손가락으로
여섯 개와 여덟 개를 가리켰지요
68세로 알아차리고
나는 영어로 세븐티 원이라고 하니
손가락으로 일곱 개와 한 개를 가리키며
자기 얼굴을 가리켰지요
내가 아마도 너무 젊다는 것일 터인데
윤선교사가 오자
몽골어로 말을 했지요
대충 그런 내용이라고 하지요
윤선교사가 예수 믿느냐고 하니
자기 부인은 교회에 나간다고
그러면서 곧 나갈 것이라며
웃음 띤 얼굴을 하지요
나는 얼굴이 동안이라
외국 사람들에게 젊게 보이나 보다
몽골은 평균수명이 우리보다
10년 정도 적다고 하지요

저녁은 종아일교회 민데 장로부부가 초대를 하여 친교를 나누며 화기애애하게 보내게 되어 참으로 감사하다.

6월 28일 화요일

화요일은 본래 선교사들과 2차 교제와 담화를 나누기 위해 모이기로 하였으나 약속이 제대로 되지 않아 친선 당구는 무산이 되었다. 기독교문학에 관한 논의도 나중에 더하기로 하였다. 그 시간을 골프장이 있는 곳으로 방문하여 잠시 쉬다가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가는 길은 대통령, 국무총리가 있는 광장 동상과 장식물들이 보였다. 계곡 안쪽으로 건물들이 있었다. 톨간에는 여름 피서객들이 물에서 놀고 있었다. 강물로 세차를 하다가 걸리면 벌금이 많다고 한다. 큰 게르 지붕위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아찔했다. 골프장은 겨울에는 스키장으로도 운영이 된다고 한다. 여러 해전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을 하였다고 한다. 만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다. 골프장은 평지였다. 벙커나 해저드가 많이 있나보다. 나는 골프를 할 수 있지만 친선골프는 이번 선교순례 일정에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오후에는 울란바토르 보건소에서 PCR검사를 받고 한국 질병관리청에 등록을 하였다. 공항 입국절차에 코로나 QR 코드가 있으면 편리하다고 하였다. 코로나로 인하여 매우 복잡한 여정이었다.

몽골 트리니티 바이블 칼리지는 성경학교로 시작하여 현재 신학교로 운영이 되고 있는데 대학학력인정학교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한다. 성경학교 때부터 1대는 김창식 선교사, 2대 김석한, 3대 김종진, 4대 김여일, 5대 김종진, 6대 백낙현, 7대 신영각 목사가 현재 학장을 맡고 있다. 김여일 선교사가 근 6여 년 간 후레대학 부속시설에서 현재 학교 시설로 신학교 기반을 쌓았다고 한다. 현재 신임 신영각 학장은 미국 UMC 자원은퇴 후 4년간 목표로 학장직을 수행할 것을 다짐하였다.

6월 29일 수요일

호텔에서 지난 밤 충분히 휴식을 취한 다음 아침 8시에 공항으로 출발을 하였다. 날래흐 산돌교회 보잉히식 목사 내외가 봉사하기로 했다고 한다. 보잉히식 목사는 단정한 복장으로 나왔다. 35세 젊은 여인으로 멋을 자랑하고 있다. 윤향숙 선교사는 바쁜 일정으로 나오지 못했고 백낙현 선교사가 안내를 하였다. 짐을 붙이고 비행 티켓을 받고 의자에 앉아서 잠시 사진을 보면서 보잉히식 목사 내외와 담화를 나누다가 축복하며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출국을 하게 되었다. 11시 20분 탑승을 하여 귀국길에 올라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2시 40분경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내와 딸이 나와 마중을 하였다. 아내에게 포옹을 하고 딸에게도 포옹하며 친근감을 표시하였다. 오늘은 딸이 원주까지 모셔다준다고 하였다. 대견스러웠다. 나도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었나보다. 왜 그런지 눈물이 났다. 비는 내렸고 인천대교를 지나 시흥 쪽으로 영동고속도에 올라 원주를 향해 달리니 6시에 도착하였다.

일정을 마치며 그 동안 여러 자료를 정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다. 행사 때마다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을 카톡이나 밴드를 통하여 지인들에게 보내주었지만 아직 선교보고가 남아 있다. 파워포인트도 만들어두어야 한다. 하루에도 20장이 넘는 사진을 지인들에게 특히 후원한 성도들에게 보냈다. 간단한 행사내용도 문자로 보냈다. 이 번 선교순례는 참 내게는 의미가 있는 일정이었다. 2023년 2월 지방회 시 장로은퇴를 앞두고 시무장로로서 행하는 여러 가지 체험에 감사를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제1회 산돌 기독문학대회에 참가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했다. 몽골의 교회지도자가 많이 나오기를 기도했다. 수고 고생을 아끼지 않으며 도움을 주신 몽골 선교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게 된다. 여행기간에 기도를 해준 봉산교회 담임목사, 사모, 장로들을 비롯한 후원 성도들께 고마움을 전하게 된다. 선교순례기간뿐만 아니라 기획에 참여해준 전 M.T.B.C 학장인 백낙현 선교사와 윤향숙 선교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런 여정을 통해 이모저모로 체험을 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다시 한 번 더 모든 영광을 돌리며 3차 몽골 선교순례기를 통해 감리회에 덕이 되길 소망한다.

유월 서른 날 아침

아침 새들도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지저귀고 있다
새들의 합창소리가 아침을 깨우고 있다

지붕위로 길 바닥위로 나뭇잎위로
떨어지는 비 소리가 다르다
빗소리 합창이다

비가 내리고 새들이 지저귀는 아침
한여름 더위를 식히며
나뭇잎들이 생기를 찾았다

간밤에 내린 비로
강물은 불고 아버지는 가셨는데
우리 어머니 배위로
노 젓는 사공은 누구일까

며칠째 내리는 장마 비와 새들이
소식을 전하고 있는 것일까

강가 여름 집에서 쉬는 날이
며칠이야 되려나마는
흘러넘치는 흙물이 점점 짙어졌다

몽골에서 입국 후 3일 이내에 보건소에서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불이행 시에는 1년 이하, 1천만 원 이하 벌금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원주보건소에서 검사를 받고서야 선교순례는 모두 마쳤다.
첨부파일

이전 박영규 2022-07-01 맥추감사절 설교-기적을 일으키는 감사/7월3일/강단초록.
다음 박승수 2022-07-01 미주연회는 기독교대한감리회와 별도의 독립된 조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