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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 설교의 아브라함
최세창
- 1402
- 2022-06-27 17:52:26
1대제사장이 가로되 이것이 사실이냐 2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5그러나 여기서 발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6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7또 가라사대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저희가 나와서 이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8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
1. 시작하는 말
성령 충만한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민간에 큰 기적을 행했습니다. 치유와 능력 행함의 은사로 병든 사람들이 치유되고, 더러운 영에 눌린 사람들이 깨끗해져서 당사자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경탄하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각양각색의 종교가 있는 해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떼 지어 와서, 복음을 전하며 기적을 행하는 스데반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변론이 벌어졌지만, 스데반은 타협하거나 혼합하거나 절충하거나 영합하지 않았습니다. 지혜와 성령으로, 인류 구원을 위해 대속제물이 되신 후에 부활하신 주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차별화했습니다. 조롱과 빈정거림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 유대교인들은 사람들에게 위증하도록 사주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하여 스데반을 대법정인 공회에 세웠습니다. 악의의 위증을 듣는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2. 스데반의 변론이자 설교의 아브라함
유대교 지도층은 예상을 뒤엎은 천사의 얼굴과 같은, 성령 충만한 스데반의 얼굴을 보고 충격은 받았지만, 회개할 정도의 감동은 받지 못했습니다. 대제사장은 성전을 헐겠다고 한 것과 율법과 규례를 고치겠다고 한 나사렛 예수의 추종자라는 등등의 위증들이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스데반이 사실이라고 대답하면, 영적 의미를 모르는 유대 교권자들에 의해서 사형 선고를 받을 수도 있는 중대한 질문입니다. 그런데도 성령 충만하여 천사의 얼굴이 된 스데반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할 기회로 삼았습니다. 공회원들과 모든 참관자들이 경청하도록 “부형들이여 들으소서”라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조상 아브라함을 내세웠습니다. 위증자들이 모세의 규례 운운했기 때문입니다. 또, 유대인들이 모세의 율법의 속뜻이 아니라, 문자적 해석에 치우치다가 율법주의에 빠져서 모세를 거의 신격화하고, 율법을 절대시하는 오류를 빚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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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포함하는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메소보다미아는 두 강 티그리스와 유브라데 사이의 지역이며, 고대 4대 문명의 발생지의 하나로 문화사에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7:3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각종 신들을 숭배하는 종교들이 있는 지역에서 숭배하던 아버지 데라와 살았던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을 떠나 그에게 보일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기에 부적합한 환경이자, 믿음의 조상이 되기에 부적합한 환경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아브라함은, 그런 환경에 젖거나 길들여지거나 빠지거나 중독되기 십상이었습니다.
인격 성장과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에 가정환경과 기타 환경은 매우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 환경입니다. 이 첨단 과학 시대의 발명품들은 무기가 아닌 기기라 하더라도, 인간다운 성장과 생활은 물론, 믿음의 결단과 신앙생활에 이기가 아닌 흉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은 기계적 환경을 떠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각종 기계를 비롯한 발명품들을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김 모 목사님의 글입니다. 피츠버그 대학의 영(Kimberly S. Young) 박사의 책 「엉망진창의 웹」(Tangled Web)에 인터넷 중독의 구체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미국의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마르시아는, 인터넷 채팅으로 오스트리아의 마이클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호기심으로, 또 지구촌을 실감하는 재미로 시작했습니다. 문자로 서로 채팅을 하다가 마이클의 요구에 따라, 웹캠도 남편을 졸라서 생일선물로 받았습니다.
이제 둘은 실시간 화면으로 연결되어 점점 더 노골적인 성적 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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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갖고, 또 더 깊은 관계를 갖게 되면서 성적인 환상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남편과의 정상적인 부부관계는 도무지 흥이 안 나고, 마이클과의 사이버 섹스에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가정을 등한시하고, 밤늦도록 인터넷을 사용하느라 밤에는 깨어 있고, 낮에는 잠자는 생활로 접어들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게다가 심리적으로 인터넷을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강박장애에 걸리고, 인터넷에서 떨어질 수 없어서 심지어 소변이 마려워도 화장실을 가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서 실례를 저지르는 일까지도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얼마나 신기하고 놀랍고 편리한 기계입니까? 그런데 스마트폰을 떼어 놓지 못하는 청소년 중독자들이 늘어나서, 사회 문제까지 되고 있지 않습니까? 가정환경이 좋아도 발명품의 노예가 되거나, 중독되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범죄의 표적이 되거나 범죄자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세상 것들을 떠나 하나님께 합해야 합니다.
성장과 인간다운 삶과 화목한 가정생활에 방해되는 모든 환경에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생활에 방해가 되는 모든 환경에서 떠나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암이 되는 내 생각, 내 마음, 내 꼬인 언행에서도 떠나야 합니다. 안 떠나면 성령이 떠나시고, 악신이 찾아오고, 다시금 멸망의 길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환경에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메소보다미아의 갈대아 우르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함께 하란에 갔고, 아버지 데라가 죽은 후에 다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란에 살던 75세인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이주시키셨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발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씨에게 소유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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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12:7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7:8에는,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유업과 자손을 믿음으로 얻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손들과 함께 믿음으로 영원한 기업인 천국을 얻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유업을 주는 대신에 그 땅을 아브라함과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예언하셨습니다. 자손이 다른 땅에 나그네가 될 것이고,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우상들을 숭배하다가 애굽의 지배를 받을 것을 예언하신 겁니다.
하나님의 두 번째 예언은 이스라엘을 종으로 삼는 나라인 애굽을 심판할 것이고, 그 후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와서 가나안 땅에서 당신을 섬기리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해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입니다. 이 열 가지 재앙은 온갖 우상들을 섬기는 애굽으로 하여금 참 구원자 하나님을 깨닫고 회개하고 믿어 구원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이며, 사랑의 징계요 채찍이었습니다.
두 가지 예언을 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언약도 주셨습니다. 믿음의 순종을 잘하던 아브라함은 약속된 복을 받아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했고, 이삭은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고, 야곱은 이스라엘의 열두 조상을 낳았습니다.
“할례”는 페리토메스(περιτομής)이며, 고대의 애굽과 앗수르와 바빌론을 제외한 대부분의 셈족 사이에 널리 행해진 포경 수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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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인 할례는 야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의 증거요 선민의 표시로서, 난 지 팔 일 만에 행한 종교 의식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종들도 할례를 받았고, 외국인 거주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유월절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에 대한 경우처럼, 율법의 요구 중 하나인 할례에 대해서도 그 의식을 부당하게 신뢰하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유대교의 전승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게헨나(Gehenna) 문 옆에 앉아서 할례받은 사람은 아무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책임져 준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오직 할례받은 어린이들만이 내세에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핫지(C. Hodge)의 소개입니다. “메나켐 랍비(Rabbi Menachem)는 자신의 「모세 오경 주석」에서 ‘할례를 받은 자는 아무도 지옥을 볼 자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메드라쉬 틸림(Medrash Tillim)은 자신의 주석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여 말씀하시기를 할례받은 자는 아무도 지옥에 가지 아니하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할례는 구원의 방도가 아닙니다. 창세기 15:6을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했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스데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전하고, 하나님의 영이시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기적을 행했기 때문에 억울하게 법정에 서게 됐습니다. 그러나 법정에서도 전혀 굴하지 않고, 율법 곧 구약성경을 들어 복음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갖가지 신들을 믿는 우상 숭배의 환경에서 부르심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한 아브라함을 구원하여 인도해 내시고, 그와 그 자손에게 언약도 주시고, 예언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자손인 이스라엘은 점점 더 율법과 할례에 빠져 율법 행위의 구원을 주장하고, 할례를 구원의 방도로 주장하느라 믿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율법과 할례의 근본 취지도 잊어버렸습니다.
(설교 동영상들: 유튜브)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 설교집 35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