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짓날 자전거 타기

최천호
  • 1847
  • 2022-07-16 02:25:48
하짓날 자전거 타기

더위에 지친 바람은
계곡에 몸을 숨기고
표정 없는 옥순봉
강물에 발을 담근 채
옅은 잠에 빠져 있네

줄 맞추어선 옥수수
푸른 군복 입혀 보초 세워 놓고
집집 열린 대문 텅 빈 산골
하늘 떠받친 노송 그늘에
열여덟 두향 안부 묻는
내 가슴 저려오네

참나리 곱게 핀
이 산모퉁이 돌아가면
내리막이 기다리겠지
저 높은 언덕 오르면
시원한 바람 맞아 줄거야

산모퉁이 돌았는데
더 긴 오르막이 기다네
힘주어 페달을 밟아야지
이때까지 그렇게 달려온 것을
이 두 바퀴로 얼마만큼
더 달려갈 수 있을까
저기 청풍호가 보이네

머리 위에 멈춰서서
불타는 태양 아래
온 세상은 고요하네



들꽃에게

소나기가 지나가니
너의 얼굴, 빛이 나는구나

나의 삶이 더 소중하다고
말 한 적이 있더냐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데
너는 활짝 웃었다

오늘같이
볕이 뜨거운 날에는
보잘것없는 삶들의 소중함을
너를 보며 배우고 있다



저 빗줄기처럼

세상을 씻어내는
두 손바닥으로
지친 영혼을 위하여
흐르는 눈물이 되고
낮은 곳에 스며들어
새 생명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슬퍼하는 이와 함께
울어 보기도 하고
마음속에 빗장을 걸어놓고
살아가는 이의 가슴을 두들겨
울려 보기도 하고
눈물 잃은 이의 손 꼭 잡고
천천히 걷는 강물이 되어
노래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

어두움 헤치고
불빛이 새어 나오는
창밖에 서서
저기 쏟아지는 빗줄기처럼
누군가를 대신하여
울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지나간 바람의 이야기

이른 아침에 멈춰 선 강물을 깨우고
물속에 잠든 산들을 흩으며 걷는 바람

어두운 숲속에 숨어 낮잠 즐기다
발소리에 놀라 애꿎은 나뭇잎을 흔들고 있는 바람

여름날 오후 소나기가 지나간 자리에 서서
붉게 지는 해를 기다리고 서 있는 바람

철 지난여름 바닷가의 텅 빈 모래밭
소란했던 발자국들을 지우고 있는 바람

나뭇잎 싹 틔우고
그 나뭇잎에 붉은 칠 하며 뒤돌아서서 우는 바람

손잡고 걷는 젊은 연인의 뒤를 따르며
아주 오랜 시간을 천천히 걷고 싶어 하는 바람

지난 세월처럼 뒤돌아 오지 아니하고
흩어져 사라지는 아련하기만 한 바람

멀리 가버린 세월을 그리워하여
스쳐 가는 것들이 소중하다며 웃고 있는 바람

추수를 끝낸 보리밭 언덕을
굳은살 박인 빈손으로 넘고 있는 바람



여름날의 이야기

검은 산으로 스며드는 이 길을
누가 처음 걸어갔을까

한낮의 태양아래 서 있는 이 나무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는 이 바람은
저 높은 산을 어떻게 넘어 나에게까지 왔을까

매일 다른 모습으로 서산을 넘는 붉은 해는
무슨 이야기들을 풀어 놓고 가는 것일까

늦은 저녁 엄마의 손을 잡은 저 아이의 앞길에는
누가 기다리고 있을까

급하게 흘러간 냇물 같은 나의 여름날엔
무슨 흔적들이 남아 있는 것일까

소나기처럼 급하게 사라져버린 나의 여름날을
누군가 기억이나 하는 것일까

어둠이 내려앉는 늦은 저녁 시원한 바람은
내 등 뒤에 머물러 있네



장마

할 일이 없다며 눈을 감고
새김질만 하는 누런 소 등 뒤로
바람도 없는 늦은 오후는
지친 듯이 늦은 걸음이다

갈매기 무리는
수평선을 볼 수 없었다며
종일 날 생각도 하지 않고
해당화는 벌써 졌지만 열매는
붉은색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하늘은 낮게 내려앉아
한 달 내내 민얼굴을
보이지 않고 있으니
하얀 소금을 먹고 사는
염전 창고는
검게 타들어 가는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데
아버지는 허리 굽은 황새처럼
누렇게 바랜 등만 보인 채
널따란 논을
두 손으로 휘저으며
길게 자란 풀들을 뽑아
멀어진 둑에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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