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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원한 대제사장이신...)의 성경 본문 히 7:26-28의 주경신학적 연구
최세창
- 1465
- 2022-07-28 01:18:04
히브리서 저자는 앞의 내용을 받아 【26】[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라고 하였다.
[이러한](τοιούτος γὰρ)은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이다. 이 말은 앞부분을 받는 것이 분명하다.①
[대제사장]이라는 표현은 6:20에 나타났다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 구절 이후와 이 구절 이전 부분인 7:1-25에서는 줄곧 제사장이라는 표현만 사용되었다. [대제사장]에 대해서는 2:17의 주석을 보라.
아무튼, [이러한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다(4:14의 주석을 보라).
[우리에게 합당하니]의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브라운(J. Brown)은 “이 사도의 주장은 인간은 어떤 자격을 갖춘 대제사장을 필요로 한다는 원리로 발전하고 있다. 대제사장이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인간들의 상황에는 합당할 수가 없다. 그들이 요구하는 대제사장-그 대제사장만이 효과적인 그들의 보증이 되실 수 있으며, 하나님께로 그들을 이끄는 대 종국을 마련하신다-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야만 한다.”라고 하였다.
[거룩하고]는 호시오스(ὅσιος)로서 {대체로 하나님께 대해서 헌신적인 것(J. E. Frame), 종교적 경건(R. L. Thomas, p. 231), 종교의 의무를 준수하는 것(A. Barnes) 등을 의미한다}(살전 2:10의 주석). 이 낱말은 이곳 외에 사도행전 2:27, 13:35, 데살로니가전서 2:10, 디모데전서 2:8, 디도서 1:8 등에도 나온다.
휴스(P. E. Hughes)는 주목할 만한 설명을 하고 있다. “거룩하다는 지적은 사도들의 사상에서 특히 메시아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점은 바울과 베드로가 시편 16:10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를 복음적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 말씀은 사도들이 예수의 부활을 예언의 성취로서 선포할 때, 자주 사용한 하나의 공인된 요소였던 듯하다(행 2:27, 13:35).②”
[악이 없고]는 아카코스(ἄκακος)로서 신약성경에서는 이곳과 로마서 16:18(순진한 자들)에만 나오는데, 나쁘고 잘못되고 악한 모든 것의 부재를 묘사하는 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본질과 인격과 성품 그리고 동기와 행동 등 모든 면에서 악하고 해로운 것이 전혀 없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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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움이 없고]는 아미안토스(ἀμίαντος)로서 외적인 면에서나 의식적인 면에서나 종교적인 면에서나 윤리적인 면에서 부정과 불결이 결여된 상태를 의미한다(13:4, 벧전 1:4, 약 1:27). 모페트(J. Moffatt)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원한 윤리적 순결과 외적 더러움을 극단적으로 경계하는 레위계 제사장의 의식적 순결(레 21:1-, 10-15) 사이의 대조를 암시하려고 의도한 것일 수 있다.”라고 하였다.
“필로(Philo)도 로고스(Logos)를 모든 더러움이 없는 관념적인 대제사장이라고 말하였다.”라고 한 브루스(F. F. Bruce)는, “필로(Philo)도 히브리서 저자가 여기에 사용한 낱말과 똑같은 아미안토스(ἀμίαντος)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필로(Philo)는 대제사장에게 죽은 자의 시체를 만지거나 죽은 자를 애도하는 것을 금한 율법에 의해서 풍유적으로 지시된 진리로서(레 21:10-) 더러움이 없는 로고스(Logos)의 특성을 제시하는 데 관심이 있다.”라고 차이를 부각시키고 있다.
필로(Philo)의 로고스(Logos)관과 달리, “그리스도인들은 관념의 영역에 남아 있지 않고 성육신하신 로고스(Logos)이신 대제사장을 모시고 있는데, 그분은 평범한 이 세상의 길을 걸으시고 우리 인간의 운명을 공유하시면서도 자신의 순결을 보존하셨다”(F. F. Bruce).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κεχωρισμένος ἀπὸ τών ἁμαρτωλών,)는 ‘죄인들에게서 떨어지시고’, ‘죄인들과 분리되시고’, ‘죄인들과 관계를 끊으시고’ 등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이 표현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다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상태와 행실 등에 대한 요약이라 할 수 있다. 이 의미에 대해서는 (1) 이어지는 문장인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와 관련지어 그리스도의 승천이라는 설,③ (2) 바로 앞의 세 가지 수식어와 관련지어 그리스도께서 죄로부터 분리된 상태로 존재하셨다는 설,④ (3) 앞의 두 가지 의미를 다 포함하는 것이라는 설(F. F. Bruce, O. Michel, 黑崎幸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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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설을 지지하는 휴스(P. E. Hughes)는 “그리스도가 지금 이러한 준(準) 물리적 의미에서 죄인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개념은 인접 문맥과 어울리지 않으며, 나아가서는 본 서신 전체의 사상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본 서신은 멀리 떨어짐보다는 ‘가까움’을 강조한다. 즉, 그리스도는 성육신을 통해 인류와 가까워지고(2:10-), 죄인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이다(4:14-, 10:19-)”라고 설명하고 있다. (1)설과 (3)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의 시제는 현재형(게노메노스, γενόμενος)인데, 바로 앞의 문장의 시제는 과거형(에프레펜, ἔπρεπεν)이기 때문이다.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는 부활하여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며 역사하시는 영적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1:3, 4, 4:14, 6:20, 8:1, 2, 12:2, 엡 4:10). 이 문장에 대한 주석은 1:3의 주석을 보라.
히브리서 저자는 지금까지 설명해 온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가 아론계 제사장들에 배해 절대적으로 우월하신 점에 대해서, 【27】[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드리는 것]은 5:3의 주석을 보라(참조: 5:2의 주석).
대제사장이 드리는 참회의 기도는 다음과 같다. “오오, 주 하나님, 저는 죄악을 범했습니다. 저는 율법을 어겼습니다. 저는 종교적 죄를 지었습니다. 저와 제 집이 그러했습니다. 오, 주여, 당신께 간구하오니 저와 제 집이 당신 앞에서 행한 죄악과 율법 위반과 죄를 덮어 주시옵소서!”(W. Barclay)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히브리서 저자가 대제사장이 속죄 제사를 [날마다](καθ’ ἡμέραν) 드리는 것처럼 말한 것이다. 9:7, 25, 10:3 등을 미루어 볼 때, 히브리서 저자가 일 년에 한 번 드리는 대속죄일을 안 것이 분명한데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한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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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에 대해 (1)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만 속죄제를 드렸으나 제사장들은 매일 드렸으므로(출 29:38-, 레 6:14-, 민 28:3, 23-24: Tamidopfer) 두 가지를 혼합하여 말한 것이라고 하는 설,⑤ (2) [날마다]를 대제사장에게 관련지어 말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만 관련지어 말한 것이라는 설,⑥ (3) [날마다](καθ’ ἡμέραν)를 대제사장이 제사를 드려야 할 모든 날을 말한 것이라는 설(빌러벡),⑦ (4) 히브리서 저자가 레위 제사 제도의 상세한 내용을 익숙하게 알지 못함으로써 잘못 말한 것이라는 설⑧ 등이 있다.
(1)설은 매일 드린 제사가 모두 다 속죄 제사는 아니었다는 점을 미루어 받아들이기 어렵고, (2)설은 본 서신에 누누이 강조되고 있는바 그리스도의 제사의 유일회적 완전성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고, (4)설은 본 서신의 저자가 대속죄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9:7, 25, 10:3 등)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매년 반복되는 대속죄일을 말한 것으로 해석하거나, 대제사장을 모든 제사장들을 대표하는 존재로 보아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드리는 제사와 제사장들이 날마다 백성의 죄를 위해 드리는 제사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레위계 제사장들이 드리는 제사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반복과 대조되는 그리스도의 제사의 유일회적 완전성에 대한 강조이다. 즉, 반복하여 제사하는 그 제사장들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단번에 모든 인간의 죄를 속하는 속죄 제물 또는 화목 제물이 되셨다(9:12, 마 20:28, 막 10:45, 롬 3:5, 5:10, 고후 5:18, 요일 2:2, 4:10).
휴스(P. E. Hughes)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제사를 드릴 때는 단번에 이루셨다고 하는 지극히 중요한 주장은,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10:12)의 영원한 완전성과 유효성을 증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타 온갖 제사 제도의 부인과 철폐를 확인하고 있다. 최종적이고 영원한 것의 도래는 일시적이고 불충분한 것이 존속할 여지를 더 이상 남겨 놓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히브리서 저자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가 아론계 제사장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우월하신 또 다른 점에 대해서, 【28】[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의 모세의 율법과 레위 지파의 아론계 제사직의 밀접한 상호 관계에 대해서는 7:11-12의 주석을 보고, 인간으로서의 약점을 가진 레위 지파의 아론계 제사장들에 대해서는 5:2-3의 주석을 보라.
[율법 후에]는 연대상으로 모세의 율법보다 나중에 나온 시편 110편을 가리키는 것이다.
[맹세의 말씀]은 7:20-21의 주석을 보라.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 곧 영원한 제사장으로 세워지신 그리스도께 대해서는 7:16, 24-25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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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H. Alford, J. A. Bengel, “Westcott, Dods”(in 이상근), P. E. Hughes, O. Michel, P. Ellingworth, 黑崎幸吉, 이상근.
2) 여기에서 히브리서 기자가 사용한 형용사 ὅσιος는 칠십인역 시편 16:10에서 사용된 것(τὸν ὅσίον σου)과 동일하다.
3) J. A. Bengel, H. Alford, “Grotius, De Wette, Delitzsch, Davidson”(in 이상근), L. Barmby, “Spicq”(in P. E. Hughes), C. R. Erdman, A. M. Stibbs, L. Morris, 이상근.
4) J. Calvin, “Theophylact, Ebrard”(in 이상근), M. Henry, A. Clarke, J. Wesley, R. C. H. Lenski, W. F. Moulton, W. Barclay, P. E. Hughes, C. W. Carter, J. Brown, T. Hewitt, 박윤선, 김정준.
5) “Bleek, Tholuck, Lüneman, Davidson”(in 이상근), J. Moffatt.
6) H. Alford, “Hofmann”(in O. Michel), “Weiss, Westcott”(in 이상근).
7) in O. Michel.
8) in P. E. Hug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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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히브리서(서울: 글벗사, 2001, 1판 1쇄), pp. 238-243.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 설교집 35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