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동성애 운동권이 경멸받는 이유

이현석
  • 1945
  • 2022-08-15 22:08:06
"운동과 진보가 유행일 때는, 거기에 앞잡이가 되었고, 진짜 투쟁할 때는 제 살 궁리만 한다."
자기 출세를 위하여, 좌우의 편에 서서 인간을 도구화하는 자들..
내가 제일 경멸하는 자들이, 이런 기회주의자들입니다.

저는 게시판에서 크게 두 번 글을 썼습니다.
2010년대 초반, 교회의 기본재산- 은급기금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2020년대 초반, 동성애가 촉발한 교회의 교리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두번 다, 드잡이질과 ‘좌우진영논리’가 기본이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어머니는 광천장이 서는 날, 새벽 3시에 일어나셨습니다.
유량동 향교마을에서 천안역까지 걸어가셔서, 비둘기 기차를 타고 광천에 가셨습니다.
공깃밥 하나와 김치국물로 식사를 하신후, 물건을 사서 되돌아오셨습니다.
다라를 이고, 아산과 천안을 걸어다니시면서, 생선과 김을 팔았습니다.
이 헌신과 희생으로 3남매를 키웠습니다.

본래 저희 집은 부자였다고 합니다. 두 고모는 평양에서 유치원을 다니셨습니다.
큰고모부는 평양의전 출신 의사였고, 작은 고모부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셨습니다.
가세가 기운 집으로 어머니는 시집오셨고,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저는 계광중학교에 전교 126등으로 입학했습니다.
친구들과 불량하게 지냈는데, 어머니가 눈물로 호소하셨습니다.
중2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중3 1학기를 마칠 때는 전교 2등이었습니다.
저와 반1등을 다투던 급우는 과학고에 입학했고, 다른 급우는 한일고에 차석으로 입학했습니다.
단짝인 친구는 천안고에 1등으로 입학했습니다.
저는 고입시험에서 “영어 듣기 평가” 전부를 틀렸습니다. “카세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받은 입학 성적- 중앙고 전교 27등, 반 3등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 일로 저는 “가난”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시골에서 천안으로 진학한 친구들과 교우관계가 만들어졌고, 그 친구를 따라서 교회에 다녔습니다.
이게 제 신앙생활의 시작입니다.
전교조 해직교사 사건이 불거졌고, 저를 전도한 친구는 그 일에 앞장섰습니다.
제 친구는 “빨갱이”로 몰렸고, 저는 그 친구를 대신해서, 법원시위를 주도했습니다.
이게 제 학생운동의 시작입니다.
1989년 법원시위를 주도한 후, 냉방에 드러누웠는데,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눈을 감고 기도했고, 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리고, 잠을 잤습니다.

제가 고1때, 저희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와 함께, 용하다는 소경 박수집에 갔습니다.
그 박수는 고개를 저으며, ‘막내는 목사가 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재수 없는 소리 한다고 화를 내며, 그 방문을 박차고 나오셨답니다.
이 사건이, 제가 집에서 허락을 받아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늘의 뜻”입니다.

두 번의 글쓰기가 귀챦기도 하고 짜증도 났지만, 진지하게 소명있게 임한 이유도 있습니다.
저는 심심해서 운동권이 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신다면, 혼자 다구리 당하는 일들은, 제가 제격이겠지요.

반동성애 운동권들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면, 공부라도 제대로 했어야지요.
공부도 하지 않고, 성실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도대체 어디에다 쓸까요?
이제, 성경은 제대로 읽을까요??
목사가 되었으면, 보수이든, 진보이든, 어디든 거리를 둬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와 이념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분입니다.
반동성애 운동권, 오죽하면 통일교 장로에게 받아쓰기를 합니까?
당신들은 상식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은 한국교회가 엄중한 때입니다.
교회의 규모가 작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전투구는 더 증가될 것입니다.
그래도, 이단대책위 결과를 보니, 이제 교단이 서서히 정상화되는 듯합니다.

앞으로, 감독회장은 서울에서 나오게 될 듯합니다.
동향 출신 지도자가 배출되었으면, 거기에 협력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러지를 못하는군요.
다만, 중국의 예를 들어본다면, 청나라가 망할 때는, 증국번부터 모택동까지 호남성에서 인물이 배출되었습니다.
서울 출신들이 분발해 주셔야 하는 것은, 역사적 교훈입니다.

이전 함창석 2022-08-15 선무당
다음 홍일기 2022-08-16 41년전 섬기던 교회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