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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권력, 명예, 감투, 이념, 진영이 아닌) 성령을 좇아 행하라
최세창
- 1405
- 2022-09-21 03:00:15
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19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1. 시작하는 말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삶을 창조하시지 않고, 각 사람의 생명을 창조하셔서 각 사람이 삶을 만들어 나가게 하셨습니다. 삶은 반복되는 말과 행동의 산물이고, 말과 행동은 생각의 산물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생각에 지배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논리적 생각이 있고, 감상적 생각이 있습니다. 이성적 생각이 있고, 감정적 생각이 있습니다. 합리적 생각이 있고, 인정적 생각이 있습니다. 실리적 생각이 있고, 명분적 생각이 있습니다. 적극적 생각이 있고, 소극적 생각이 있습니다. 긍정적 생각이 있고, 부정적 생각이 있습니다. 도덕적 생각이 있고, 비도덕적 생각이 있습니다. 몇 가지 생각이 뒤섞인 복합적인 생각도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모든 사람을 지배하는 주된 생각은 이기적 생각입니다.
2. 성령을 좇아 행하라
모든 인간적인 생각들을 따르는 언행의 삶과 대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시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좇는 영적 생각을 따르는 언행의 삶입니다. 갈라디아서 5:16을 보면,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라고 했습니다.
“행하라”의 헬라어 페리파테오(περιπατέω)는 문자적으로는 ‘걷다’, ‘거닐다’의 뜻이나, 은유적으로 ‘습관적인 행동’ 또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좇아 행하라는 것은, 성령의 인도와 지도를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사랑의 영이신 성령께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성령을 따라 살면 육체 곧 자아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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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내재해 계신 교인의 마음속에도 육체 곧 자아의 욕심은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칼빈(J. Calvin)은 “영적 인간은 육체의 욕심과 그 충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욕심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루터(M. Luther)도 “육체의 욕심은 아직 죽지 않았으며, 항상 성령께 대항하여 말하고 싸우려고 고개를 든다.”라고 주석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믿음으로 죄 사함과 죄 사함으로 인한 중생과 자유와 평화와 영생의 구원을 받은 교인들 속에는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갈등하기도 합니다. 갈라디아서 5:17을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 안의 성령의 소욕은 천국과 영원한 것, 영적인 것과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 아래 있는 육체인 자아의 소욕은 세상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 물질적인 것과 자기의 뜻을 추구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소욕은 하나님 위주와 본위의 삶을 추구케 하는 것인 반면에, 육체인 자아의 소욕은 자기 위주와 본위의 삶을 추구케 하는 것입니다.
한 미국 아이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내가 무얼 원하는지 다 아시는데 왜 기도를 해야 하나요? 그래도 하나님이 좋아하신다면 기도할게요.”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뜻과 소원과 욕망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뤄 주셔야 한다는 기도입니까? 우리 심령에 내재하신 성령의 소욕을 우리의 삶 속에 이뤄 주셔야 한다는 기도입니까?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하기 위해서는 대립되는 자기의 소욕을 부정하거나, 자기의 소욕을 죽여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5:31에,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죽는 생활이야말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길이며, 주 예수님의 사랑의 종노릇을 하는 길이며, 인간을 속박하는 율법을 초월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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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D. L. Moody)의 아버지는 무디가 4살 때, 아내와 7남매, 그리고 빚을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디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농사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신학도 공부하지 않았고, 컬컬한 목소리와 많은 문법적 오류 등 설교에도 결함이 많았지만, 뛰어난 부흥사로 무수한 심령들을 구원받게 한, 하나님의 놀라운 도구로 쓰였습니다.
언젠가, 한 신문기자가 무디에게, “당신을 보면 이렇게 큰일을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무디는 크게 웃으면서 “당연하죠. 이 일은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니까요.”라고 했습니다. 또, “온 세상은, 하나님께서 당신께 온전히 헌신된 사람을 통해 무엇을 하시는지를 알아야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나 꿈이나 목적을 성취하는 데 부족한 점들이 있습니까? 우리 인생의 성공과 승리에 필요한 것이 없습니까?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좇아 행하시면 됩니다.
3.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
육체의 일 곧 죄 아래 있는 자아의 소행은 현저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파괴인 음행, 종교적‧도덕적인 더러운 것, 육욕‧외설인 호색, 유형무형의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믿고 섬기는 우상숭배, 마법과 관련된 술수, 반목하는 마음을 품는 원수를 맺는 것, 경쟁의 결과인 분쟁, 남의 것을 탐하는 시기, 적대적 감정인 분냄, 이기적 야심으로 당 짓는 것, 알력이나 불화로 인한 분리함, 완전히 굳은 분열인 이단, 남의 것을 빼앗고 싶어하는 투기, 술 취함, 무절제한 방탕함, 또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성령이 아닌 죄악과 이기심을 좇는 소행을 하는 사람들은, 천국 유업을 받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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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교인이 범죄했을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웨슬리(J. Wesley)는 “그리스도인이 범죄했다 할지라도, 진정으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떠한 인간의 어떠한 죄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해결할 수 없는 죄는 없다고 하는 복된 소식입니다.
육체의 소행과 대조되는 성령의 열매는 모든 계명의 완성 이상인 사랑, 영적 기쁨인 희락,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대한 의식에 근거한 화평, 오래 참음, 온화하고 부드럽고 관대한 자비, 적극적인 의미의 선인 양선, 신실한 언행인 충성, 사려 깊은 부드러운 태도인 온유, 극기인 절제입니다. 기도와 말씀에 착념하여 순종함으로써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충만해질수록, 성령의 열매를 그만큼 더 풍성하게 맺을 수 있습니다.
유명한 지성인으로서 성령을 좇아 행하기는커녕, 무신론자로 자처하면서 기독교는 없어질 것이라고 큰소리치던 사람들의 임종이 김OO 목사님의 설교에 소개되었습니다.
불란서의 볼테르(Francis-Marie Arouet: 1694-1778)라는 무신론자는, “기독교가 건설되기까지 수세기가 걸렸지만, 불란서의 한 사람이 50년 안에 기독교를 다 파괴하는 것을 보여 주겠다.”라고 하면서 무신론에 관한 책자를 많이 썼습니다. 그런 그는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자 온몸을 흉하게 떨면서 “의사여, 나를 6개월만 더 살게 해 주시오. 그러면 내 보물의 절반을 주겠소.”라고 애원했지만, 의사는 “6주간도 못 삽니다.”라고 했습니다. 볼테르는 “나는 지옥에 가는데 당신이 나와 좀 같이 갑시다.”라고 하고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라고 탄식하기도 했고, “나는 지옥에 간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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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뉴포트(Francis Newport)라는 무신론자는 임종시에 “아, 나는 정죄 받았구나! 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되었으니 누가 나를 구원하리요. 나는 지옥과 저주의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는구나!” 하고 숨을 거뒀습니다.
토마스 스코트(Sir Thomas Scott)라는 무신론자는 죽으면서, “나는 이때까지 하나님도 없고 지옥도 없는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 둘이 다 있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전능자의 공의로운 심판에 의하여 멸망으로 들어간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4.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의 사람들은 죄 아래 있는 자아와 함께 자아의 욕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고, 성령을 좇아 주님을 믿어 새 생명을 얻은 사람들답게 성령을 좇아 생각하고 말하고 행해야 합니다.
중부연회에 웅장하게 건축된 감리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 건축의 배경에는 매우 아름답고도 눈물겨운 헌신이 있습니다. 조모 군은 돈독한 신앙의 부모님인 조모 권사님과 권모 권사님의 사이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자랐고, 교육도 받았습니다. 공군에 입대하여 건강한 몸으로 만기제대를 한 후, 어느 날부터인가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더니 불치의 병이 되고 말았습니다.
병이 깊은 것을 안 그는 부모형제와 함께 마지막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유언을 했습니다. “만일 내가 다시 건강을 얻어 제2의 인생을 살게 된다면, 신학교에 입학하여 하나님의 종이 되어 일생을 주님의 사람으로 헌신할 것입니다. 죽게 된다면 제게 물려주고 싶었던 모든 것을 성전 건축헌금으로 바쳐 주십시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신앙이 돈독한 그의 부모님은 그의 몫을 교회 건축헌금으로 바쳤습니다. 이 아름답고도 눈물겨운 헌신에 감동적인 은혜를 받은 교인들이 정성을 모아 헌금해서 웅장한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목전에 둔 임종 때야말로, 더욱더 성령을 좇아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해야 합니다.
(설교 동영상: 유튜브)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 설교집 35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