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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지방 개전교회 홈 컴잉데이 메세지
이경남
- 2101
- 2022-10-05 07:49:45
시 한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 화살을 쏘았네
화살은 빛살처럼 날아서 어딘가로 사라지고
화살이 머무는 곳 아는 이 없었네
나는 하늘을 우러러 노래를 불렀네
노래는 하늘을 맴돌다 어딘가로 사라지고
노래가 머무는 곳 아는 이 없었네
먼 훗날 참나무 등걸에 화살은
부러지지 않은 채 박혀 있었고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었네(롱펠로우)
우리가 살다보면 우리들이 행한 모든 노력과 수고가 다 사라지고 내가 헛된 고생을 했구나 하는 허무감 후회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1978년 이곳 사골 마을에도 교회가 세워지고 오늘에 이르도록 7분의 목사님들이 수고를 하셨고 그중에 한분은 이미 고인이 되셨는데 그간 이분들이 이곳에서 하신 수고가 잃어버린 화살처럼 공중에 흩어져 버린 노래처럼 헛되고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수 있는데 오늘 이 자리는 이분들이 쏘신 화살이 여러분들의 가숨 속에 박혀 있고 이분들이 부르신 노래가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며 위로와 기쁨을 얻는 시간이라고 여겨집니다
지난 6월 우리 아들 결혼식이 있었는데 제가 이 교회를 떠난지 이미 20년이 넘었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알음알음 이것을 알고 많은 분들이 춘천의 결혼식장에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날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여러분들을 보고 제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시를 하편 썼습니다
결혼식
아들 결혼식을 치루며
받은 사랑과 은혜가 너무 크다
참 가까이 지내며
우정을 나누었지만
연락 하나 없는 이들에겐
아마 무슨 사정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런 일은
우리가 받은 사랑과 은혜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다
현애 최전방 민통선 마을의 첫 목회지에서
온갖 사랑을 쏟은 아이다
서울대병원 간호사였던 사모님을 따라 간다며
간호대학에 들어가더니
지금은 한 의료원의 호스피스 책임자가 되어 있다
네 식구가 모두 와 주었다
남미 눈망울이 크고 착한
연극배우를 꿈꾸던
그리고 내가 30대의 나이에 첫 주례를 선 아가씨다
지금은 훌륭한 남편을 만나 아무 부족함이 없이 살며
많은 선행을 베푼다
남편과 함께 와 주었다
교순 원주경찰서 경리였던 이 아가씨는
경찰관의 부인이 되고
지금은 지리산 밑 동네 구례에서 산다
매번 과분할 정도로 큰 사랑을 보내온다
미경이 처녀 시절에도 그렇게 귀엽고 이쁘더니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다
정란이 이 아이는 그냥 천사다
지금은 침례교 목사 부인이 되어 있다
연호 연수 형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같은 형제다
공부를 잘해 장학금을 받던 연수는
지금은 한 은행의 중견 간부다
용선이 내외는 자녀들을 잘 키웠다
당시 세살 네살이었던 두 딸은
하나는 공무원이 되고 하나는 작곡을 전공했다는데
둘째 딸은 천하 미녀다
이번 결혼식의 압권은
미군 고위 군무원인 제리 카파즈씨 내외다
아무 말 없이 SM 5를 끌고 와서는
결혼 선물이란다
삶은 절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30년 40년 전 우리 내외가 이들에게 베푼 사랑 보다
오늘 이들이 우리에게 배풀어 주고 있는 사랑이 훨씬 더 크다
아 왜 이렇게 마음이 행복한가!
2022.6.8. 수요일 새벽 강변을 걸으며
아마 오늘 이 자리에 초대를 받으신 여러 목사님 사모님들도 지난날의 수고를 기억하는 여러분들의 모습에 큰 기쁨과 위로를 얻으시고 계실 것입니다
다만 다른 목사님들은 몰라도 제 경우 제가 여러분들에게 쏜 화살 보다 여러분들에게 부른 노래보다 지금 여러분들이 제게 쏘시고 게신 화살이 더욱 크고 여러분들이 부르시고 계신 노래가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1978년 이 교회가 처음 시작되었고 제가 온 1990년 봄 까지 네 분의 목사님들이 일하셨는데 이분들이 교회를 은혜스럽게 만들어 놓으셔서 제가 성도님들의 사랑을 받으며 참 편하게 목회할수 있었습니다
1990년 봄부터 2000년 말까지 11년은 목회하면서 세가지 한 일이 있고 두가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첫 번째 한 일은 교회 마당에 왕릉처럼 크게 있는 무덤을 없애고 지금처럼 넓고 아름다운 운동장을 만든 일입니다 무덤 주인을 찾아 수십번 사정하고 읍소하며 어렵게 이룬 일입니다 한 7년 걸렸습니다
두 번째는 마을 창고 였다가 읍내의 농기계상회 창고로 쓰이던 창고 건물을 매입해 사택을 지은 일입니다
당시 교회 마당은 폐농기게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이것도 주인을 만나 사장하고 설득하고 심지어는 싸우기까지 화며 이뤄낸 일입니다
이분이 해병대 출신이라 보통 거칠지 않았는데 제가 이겼습니다 저는 공수부대 출신이었거든요
창고 건물을 구하고 나니 청년들이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남미 자매 교순이 자매 미경이 자매 숙향이 자매 수진이 자매 용선이 형제 정란이 자매..이런 사람들이 천만원짜리 적금을 붇고 그래 주택을 건축할수 있었습니다
주택 건축 하면서도 건축업자가 돈 더 달라고 배짱을 튀겨서 더 주고 더 주고 하며 1600만원에 겨무 마무리한 집입니다
제가 이 집에서 산게 몇 년 안되는데 제 뒤에 오신 목사님들은 편히 사실수 있었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노인의 집을 지은 일입니다
교회에서 땅을 대고 군청에서 돈을 대 지은 것이 지금 교회 옆에 있는 노인의 집입니다
덕분에 동네에 아주 가난한 할머니 몇분이 편안하게 살다 가셨고 지금은 교회 소유가 되었는데 건물을 지을 때 20년 뒤에는 군에서 교회에 건물을 양도한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당의 잔디 밭도 돈이 있어 심은게 아닙니다 새벽 기도 마치만 삽을 들고 도로변에 나가 길가에 심겨진 잔디를 한삽 한삽 떠다 심은 것이 지금의 아름다운 잔디밭이 된 것입니다
제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에배당 뒤로 2000평 밭이 있는데 연우 큰아버지네 소유의 땅입니다
그런데 두 번이나 땅 주인이 찾아와 목사님 1억만 받을테니 땅 좀 사주세요 사주세요 하셨는데
당시 개전교회 일년 결산이 3000일 때라 도저히 살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 사고 싶어도 엄두를 낼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때 사두었더라면 요즘 감리교 은퇴 목사님들이 갈 곳이 없어 애를 먹으시는 분들이 많은데 노인의 집처럼 땅은 우리가 대고 건물은 감리교 재단에서 짓고 하면 수십명의 은퇴 목사님들을 위한 집을 지어 드릴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개전교회가 아름답다 보니 수련회를 많이 오는데 남학생 여학생들이 숙박할수 있는 건물도 지을수 있었을 것이고
개전교회 땅이 1800평 앞 밭이 2000평 하면 4000평 가까운 땅에 나무도 심고 잔디도 심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전원교회도 만들 수 있었을텐데 그게 참 아쉽습니다
또 하나 하고 싶으면서도 못한게 하나 있는데 그건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할수 있는게 아니라 혹여 다른 기회가 생기면 꼭 해야할 사람들에게만 알려드리겠습니다
20년 30년전 우리들은 참 약한 이들이었습니다
막 결혼을 하고 맨 몸으로 시작을 하였는데 오늘의 여러분들은 그런 이들이 아닙니다
지난 2-3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하나님은 야곱이 밧담아람에서 20년만이 두떼의 양무리를 거느리는 족장이 된 것처럼 여러분들도 그렇게 복을 받는 분들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여러분들이 비용을 들여 홈 캄잉 데이를 할수 있을 만큼 신앙적으로 성숙하고 경제적으로도 힘있는 분들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고 칭찬 받을 일이지만 그러나 이것만이 여러분이 하실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지미 카터 소위가 핵잠수함 승무에 지원을 하고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면접관이 릭 오버라는 장군이었는데 두 시간 동안 자유토론을 하는데 토론의 주제는 면접을 보는 사람이 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래 카터 소위는 자기가 가장 잘 아는 분야를 택하였는데 막상 릭 오바 제독과 토론을 하다보니 자기의 바닥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릭 오바 제독은 카터 소위가 가장 잘 아는 분야에 대하여도 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 카터 소위가 망신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관학교 생활에 대하여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래 기가 죽어있던 카터 소위가 신이나 대답을 합니다
59등으로 졸업했습니다
당시 해군사관학교 전교생이 820명이었는데 그중에 59등을 했으니 잘 한거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릭 오바 제독이 묻는 것입니다
왜 1등은 못했나 왜 2등은 못했나 왜 10등이나 20들이나 하다못해 58등은 못했느냐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당신은 당신이 더 잘 할수 있는 것을 못했다며 나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릭 오바 제독이 자기 일이 늘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할수 있는 말이었고 그는 후에 미극에서 제일 큰 항공모함인 재릴드 포드호의 함정이 되었습니다
왜 58등을 하지 못하고 59등을 했느냐는 선배 제독의 책망은 59등을 하고 만족하던 카터 소위에게 큰 교훈을 주었고 그 제독 밑에서 잠수함 승무원이 된 그는 매사 자기가 할수 있는 힘을 다하는 삶을 산 카터는 후에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베푸시는 이런 행사는 참 아름다운 일이고 칭찬 받을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여러분이 하실수 있는 최선의 일은 아닙니다
지난 2-30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더 큰 일도 할수 있는 59등이 아니라 58등 20등 10등 ㅂ등도 할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큰 크고 힘든 일도 하시는 이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못했지만 여러분은 교회 뒤 2000평 밭도 사셔서 원로 목사님들을 위한 집도 지어 드리고 수련회 숙소도 짓고 이 예배당도 더 이름답게 지으시고
개전 교회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은헤스런 시골 전원교회로 만드시는 그런 일도 하시기 바랍니다
20년 제가 이 교회를 떠나 평택으로 갈 때에 그 교회에 긴급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내가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고 이제 일이년 후 은퇴를 앞에 두고 내가 어디로 가야 하나 하고 하나님께 묻고 있습니다 혹여 여러분들이 이런 일들을 하신다면 저도 작은 힘이나나 도우며 평생을 함께 할수 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고향으로 돌아오는 법입니다
얼마 후 호범씨도 돌아오고 금면씨 남미씨도 돌아오고 용선씨도 돌아오고 교회 뒤 이땅에 별장도 지으시고 개전교회에서 장로님을 하시며 고향 교회를 지키시고
하나님이 힘 주시는대로 더 큰 일도 하시는 이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끝으로 릭 오바 제독은 후에 미국에서 제일 큰 항공모함인 제럴드 포도 호의 함장이 되었는데(351미터.41미터)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오 하나님 하나님의 바다는 너무 크고 나의 배는 너무 작습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욥 같은 축복을 주시더라도 하나님의 바다는 크다는 것을 나의 배는 비록 세상에서 제일 큰 배일지라도 그 하나님의 바다 앞에서는 일엽편주만큼 작은 배라는 것을 잊지 말고 끝까지 겸손한 마음으로 겸허한 마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2022.10.3. 월요일 개전교회 홈 컴잉 데이 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