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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세례 요한과 종교다원주의신학
최세창
- 1453
- 2022-10-18 20:55:07
1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 3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1. 시작하는 말
사람들은 좋은 관습이냐 나쁜 관습이냐, 옳은 관습이냐 그른 관습이냐를 따지지 않고, 그냥 답습하며 살아갑니다. 관습으로 인해 혜택을 보는 계층은, 관습을 더 유리하게 심화시켜 나갑니다. 유대 지도층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중시하여 해석하는 일에 치중하느라 서서히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율법 전문가라는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으므로 율법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 증거입니다. 로마에 대해 이렇다 할 독립 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에 약속된 대로 오신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율법에 언급된바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율법 문제로 예수님과 수시로 논쟁했습니다.
2. 메시아이신 예수님과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
세례 요한이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면서, 율법 행위로 구원받았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한 일은 유대가 가히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었습니다. 유대 민중은 세례 요한을 사백여 년 만에 나타난 선지자로 여기거나, 메시아로 여겨서 그 앞에 나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엄청난 대중의 환호와 갈채와 추종을 시치미 떼고 받아들여 누릴 만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담담히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오시는 메시아를 믿어야 구원받고, 믿지 않으면 멸망의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회개하도록 물로 세례를 주지만, 메시아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7을 보면,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라고 했습니다. 신들메를 푸는 것은 노예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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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메시지의 핵심은 율법 행위의 구원관이나, 각양각색의 종교들의 구원관이나, 양심 행위의 구원관 등이 구원의 길이 아니라는 겁니다. 구원자 하나님의 약속대로 오시는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중생과 자유와 평화와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피조성과 의존성, 죄성과 이기성, 가능성과 자율성, 유한성과 불완전성, 나약성과 필멸성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인간이 만든 종교들과 교훈과 사상과 윤리 등등이 어찌 인간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부여하신 사명은 여러 메시아들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종교들이 다 구원의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양심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불완전하고 상대적인 인간의 양심이나, 종교나, 법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선과 악, 옳고 그름, 의와 불의가 다르기도 하고, 뒤바뀌기도 하는 것이므로 구원의 방도가 되지 못합니다. 세례 요한은 구원자 하나님의 약속대로 오시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전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신적인 능력으로 불치병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내쫓으시는 등의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고, 구원의 복음을 전하시는 주 예수님께 몰려갔습니다. 주 예수님이 제자를 삼고, 제자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세례 요한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요한복음 3:26을 보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그러자 세례 요한은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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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만큼 자기를 잘 알고, 자기 일을 잘 알고, 참 기쁨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선진국의 지성인들과 출세한 자들이 부정 축재의 범죄를 기뻐하지 않습니까? 누구보다도 자기를 잘 알고, 자기 일을 잘 알 것 같은 어느 부부 교수는 군에 입대한 아들까지 연구원 수에 넣어서 연구비를 부풀려 훔치며 기뻐했습니다. 또, 어떤 교수는 보조 연구원인 제자들의 몫을 가로채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삼고, 제자들을 통해 세례를 주는 것이 세례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이, 바리새인들의 귀에도 들어가게 된 것을 주 예수님이 아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엄청난 사실을 들은 바리새인들의 태도는, 세례 요한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교리와 신조는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역사가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 신성하게 통제되고 지배된다고 믿었습니다. 둘째, 부활을 믿었고, 현세에서 행한 대로 내세에서 상급이나 형벌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셋째, 고도로 발달된 천사론이 있었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거룩한 천사들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특별하게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즐기는 참되고 경건한 이스라엘로 간주했습니다. 현재는 이방인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다윗의 자손인 ‘기름부음 받은 주님’에 의해서 땅 위에 회복된 다윗 왕국의 영광이 도래할 좋은 시대를 믿었습니다. 그들이 기대한 것은 지상의 낙원이었습니다. 그들은 경건하게 살다가 죽은 사람들이 메시아 시대에, 이 지상의 영광들을 나누기 위해 부활하리라고 기대했습니다. 다섯째, 메시아관은 고난의 메시아가 아니라, 지상에 영광스런 다윗 왕국을 완성하는 정치적인 메시아요 영광의 메시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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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리새인들은 하나님보다는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고, 일상생활에 적용함으로써 종교를 민주화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해석을 내세우는 철저한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철저한 율법주의는 형식주의가 되었고, 외식적이며 비현실적인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의 종교적 신념과 열정은, 주 예수님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리나 신조상, 또는 율법이나 전승 준행에 있어서 자부심을 가진 바리새인들에게, 세례 요한의 선교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선포한 메시아이신 주 예수님은, 제거해야 할 메시아 사칭 죄인이었습니다.
사람이란 생긴 대로 놀게 마련입니다. 환경이나 조건 또는 상황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들 하나, 실은 그의 속 생김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어떤 자리에 앉든지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간에, 사람이란 자기 속 생긴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며 순종함으로써, 속사람을 잘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창조된 모든 사람은, 자기를 잘 만들 책임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는 것처럼, 종교가 잘못 받아들여지게 되면 본능적 이기성에 종교적 이기성이 가미되는 중대한 인격적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사회적 문제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 끔찍한 일은, 그 현상이 집단화 되는 것입니다. IS집단처럼, 종교를 빙자한 전쟁까지 벌이게 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당신에 대한 소문이 바리새인들에게도 들린 것을 아시고, 충돌을 피하실 겸 복음 선교를 위해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실 때 사마리아로 통행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통행하시는 것도 파격적인 행보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지름길이라 하더라도, 증오심 때문에 사마리아로 통행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매우 오래된 깊은 증오심의 배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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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남북 왕국으로 분단된 후에 사마리아는 열 지파로 구성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이었고, 예루살렘은 두 지파로 구성된 남 왕국 유다의 수도이었습니다. 그런데 북 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들을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이주시켰습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인들과 뒤섞여 살게 되었고, 따라서 종교나 문화나 관습 등이 혼합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침략으로 멸망한 남 왕국 유다는, 거주민들이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갔지만 민족의 순수성을 지켰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멸시하고,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고, 따라서 서로 원수 관계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 당시에는 사마리아와 유다가 하나로 통합되어 동일한 로마의 행정관 밑에 있었는데도, 사마리아 땅도 안 밟을 정도이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사마리아로 파격적인 행보를 하셨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의 본질은 피조성과 의존성, 죄성과 이기성, 가능성과 자율성, 유한성과 불완전성, 나약성과 필멸성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양심과 종교들과 법과 도덕 교훈 등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선과 악, 옳고 그름, 의와 불의가 다르거나 뒤바뀌기도 하므로 구원의 방도가 되지 못합니다. 다른 구원의 길이 없기 때문에 구원자 하나님이 메시아 약속을 하셨고, 약속대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같은 민족이면서도 기나긴 세월을 원수 관계로 지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사는 땅조차 밟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주 예수님은 사마리아 땅으로 행보하시고, 구원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사랑하며 구원하시는 구세주이십니다.
(설교 동영상: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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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5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