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같은 친구

함창석
  • 1199
  • 2022-10-17 04:59:25
개구리 같은 친구

함창석

여러 동식물이 어울려 살아가니
한 동네를 이루고 있다
그 가운데 개구리가 있지요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그만 깊은 웅덩이에 빠졌다
사람이 파 놓은 우물 같은 곳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것이지요
우물이 너무 깊기로
아무리 밖으로 나오려고 해도
스스로 나올 수 없자
아주 체념하고 살 수 밖에 없으니
위쪽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도
동그라미나 네모로 보일 뿐
빛도 아주 제한적이라
살아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하나 우물 안과 우물 밖에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비슷하였다
자유로운 친구도 울고 있고
갇힌 친구도 울고 있는 것 아니냐
동물들의 울음소리는
짝을 찾는 아우성이라는데
만날 수가 없는 것은
우물을 파놓은 사람 때문이라
힘이 없는 개구리가
길고 긴 한숨뿐인 것이 아니 더냐
사냥꾼이 파 놓은 우물 안에
갇힌 친구도 있기로
이 밤 더 깜깜하니 그러하고나

【Faith Talk】

생태계 안에서 일어나는 먹이사슬의 각 단계를 양적으로 나타내면 피라미드 모양이 된다. 이를 ‘먹이피라미드’라고 한다. 먹이피라미드의 모양이 삼각형이 되면 생태계의 평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평형’이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먹이 관계가 안정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생태계의 평형은 자연재해나 인간의 간섭으로 쉽게 깨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식물→토끼→여우’의 먹이사슬에서 여우가 사라진다면 토끼의 수가 증가하여 토끼의 먹이가 되는 식물이 많은 피해를 볼 것이다. 반면 토끼가 사라진다면 여우의 먹을거리가 없어져 여우의 생존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사람에 의한 생태계의 오염이나 간섭이 먹이사슬을 이루는 생물에게 영향을 주어 연결 고리가 끊어지게 되면 지금까지의 균형이 깨어지게 되는데, 이를 ‘생태계의 파괴’라고 한다. 한 번 파괴된 생태계가 복원되려면 아주 많은 시간을 요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이 생태계에 간섭을 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복원하는 능력이 있다. 이를 ‘생태계의 복원력’이라고 한다.(이성규, 생태계의 평형, 신비한 식물의 세계, 2016)

생태주의(영어: ecologism)는 전통적인 환경주의보다 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방법으로 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사상이다. 즉 현재의 환경 문제를 기술적 전문성의 적용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며 사회의 근본적 성격이 개선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환경주의와 달리, 이를 보다 심각하고 심층적인 잘못들이 겹쳐 일어난 문제로 보고 있다. 전통적 환경주의가 사회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다면, 생태주의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생태주의적 관점을 따른다면 환경 문제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질서들의 문제가 겹치며 만들어 낸 표면적 증상일 뿐이다. 따라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에 있어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참고>
박성복, 《녹색주의 반응과 생태적 관점》, 서울행정학회, 2007, 339-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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