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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기
- 1930
- 2022-10-12 08:25:09
어찌 이 인물과 이 장소들만 있겠습니까 마는.
고르는게 마니 어렵죠.
잘모르고 부족하지만 옮겨봅니다.
어떤 의견이든 있으시면 주시고요.
&. 목회자(10명)
1. 아문 이필주(3.1혁명 민족대표, 화성 남양 서거, 상동-정동제일-청파-남양교회)
2. 은재 신석구(3.1혁명 민족대표, 충북출생, 강제신사참배 투옥, 북에 의해 순교, 홍천-춘천-고성-수표교교회)
3. 신홍식(3.1혁명 민족대표, 충북출생=고향에서 서거, 남산현-내리-강릉원주지방 감리사-원주제일교회)
4. 국사 오화영(3.1혁명 민족대표, 북에서 서거, 종교-수표교교회)
5. 근곡 박동완(3.1혁명 민족대표, 기독신문 주필, 하와이 서거, 정동제일-하와이한인교회)
= 월당 최성모 목사는 민족대표로 독립유공자이나 30인의 인물에 선정하지 못함이 아쉬우나, 정춘수와 박희도는 3.1혁명에 민족대표로 참여했었으나, 천하에 몹쓸 양아치 매국노가 되어서, 김창준은 북으로 가 김일성 정부에 기여하여 독립유공자 포상이 불가능하여 인물 선정이 불가하다.
6. 전덕기(서울 출생=서거, 민족운동의 선구자, 상동교회)
7. 해석 손정도(평남 강서 출생=만주서거, 상하이 임정 의정원 의장, 동대문-정동제일-길림교회)
8. 이상만(상하이 임정 국무위원, 당진 면천-상해교회)
9. 구연영(경기 광주 출생=이천 서거, 의병장 출신, 광주-이천지역 교회 설립, 일진회 타도투쟁중 아들 구정서(동대문교회)전도사와 총살, 최초의 목회자 순국선열, 이천제일교회)
10. 이규갑(충남 아산 출생=고향에 사회장으로 안장, 이순신장군 직계후손, 의병출신, 친형 이규풍장군과 운남관무관학교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직접 권총을 들고 항일전투를 벌임, 가족 거의 모두가 독립유공자 7명(모친 형제 아내 등)36차례 투옥, 꽃재-남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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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는 모두 건국훈장 2등급 대통령장이며, 전덕기 목사 이후는 건국훈장 3등급 독립장 이상의 애국지사들이며, 구연영은 순국선열이다.
& 평신도 여성(10명)
1. 유관순(3.1혁명 투옥 순국, 흥호학교. 영명학교, 이화학당, 병천-공주읍-정동제일교회)
2. 남자현(남편 의병으로 잃고 만주망명 독립군과 교회의 어머니, 만주전권공사 부토암살시도 중 피체되어 투옥 순국, 영화 ‘암살’의 모티브-전지현 주연)
3. 안경신(오동진 사령관의 광복군총영 소속으로 평양경찰서 및 도청 임신한 몸으로 폭탄투척)
4. 조화벽(3.1혁명 투옥, 유관순과 옥중 투쟁벌이고, 석방후 유열사의 동생돌보고자 유열사의 오빠 유우석과 혼인. 양양 정명학원 설립해 600여 명 민족인재 양성, 강원양양교회)
5. 최용신(원산 루씨고녀 출신=교목 전희균과 이신애의 민족신앙지도 받음, 협성여신학교 재학중 안산샘골교회로 와 박용덕과 염석주와 함께 조선 어린아이들과 부녀자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다 서거, 우리민족 최초의 여성사회장, 사실상 식민지?(조국이 왜적에 침략 당한 상황으로 엄밀히 말하면 식민지가 아니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기에) 상태였으므로 민족지사들에 의해 기획된 민족운동에 사활이 걸린 민족장(례)이었다. 스승은 황애덕이었고, 동지는 김노득이며, 후배는 전진이다. 또한 교목은 전희균이며, 교수로는 조민형, 김창준, 정인보, 전영택, 조병옥 등이었다. 한편, 최용신이 수학한 감리교회협성여자신학교 농촌지도사업과는 목원대학교의 사상적 근원의 중간단계이다. 그 이전의 전신이 또 있었다는 말이다.)
6. 김(하)란사(협성부인학원의 교수였으며, 이화의 총교사로 유관순열사의 스승으며 우리 민족 최초의 문학사로 광무황제의 뜻에 따라 왕자 이강공과 외교활동-파리강화회의 특사-을 하려 출국하다 왜적의 괴수인 이등박문의 첩이며 왜에서 밀봉교육을 받은 배정자란 민족의 개년의 독수로 서거, 상동-정동제일교회)
7. 지복영(지청천 광복군 사령관의 여식으로 광복군으로 참전하여 최전방 침투도 마다하지 않았다)
8. 차미리사(배화학당의 교사로 많은 민족여인재를 양성했다-배화 20여 명, 태화 20여 명의 독립유공자, 종교교회)
9. 이태영(가정법률상담소 소장, 호주제폐지 최고 공로자, 정일형 목사, 교수, 국회의원의 아내이며 정대철 의원의 어머니이고 정호준 의원의 할머니, 국민훈장 무궁화장, 남산교회)
10. 이희호(한국YWCA회장, 창천교회 장로, 김대중 대통령 영부인, 무궁화 대훈장=국가원수급에게만 수여하는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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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 박사와 이희호 여사는 민주유공자이며, 독립유공자는 아님.
& 평신도 남성(10명)
1. 백범 김구(상하이 임정 주석, 한인애국단 이봉창과 윤봉길과 조직 안창호 목사의 재정도움으로 거사 성공, 안중근 의사의 동생들과 항일전투조직인 한인애국단 운영, 분단저지에 최선을 다하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안두희 대한민국 소위에 의해 암살로 불의에 서거, 진남포-상동-상하이교회)
2. 일성 이준(독립협회 투옥, 헤이그 자결 순국, 함경 북청 출신, 상동교회 청년회)과 이상설, 이위종과 헤이그 특사 활동, 전덕기, 양기탁, 헐버트의 도움, 헤이그에서 서거후 미주 한인 목사 윤병구 목사의 주례로 헤이그에서 장례, 지금은 유해가 봉환되어 수유리 묘역에 안장)
3. 우남 이승만(배재학당 수학, 독립협회 투옥, 도미하여 외교활동, 상하이 임정 초대 대통령, 미주로 가 외교 활동에 주력하다 광복/승전후 환국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6.25전쟁을 치렀으며, 장기집권을 하고 부정선거를 하는 이기붕을 저지못해 자신은 4.19혁명으로 하야후 하와이에서 서거, 인하대학교 설립, 정동-샌프란시스코(상항)-하와이한인교회)
4. 한흰샘 주시경(상동교회 부설 상동청년학원 교사를 역임하며 국내 한글보급사업의 금자탑을 이루었다)
5. 우당 이회영(6영의 핵심으로 상동교회 부설 상동청년학원 학감, 부인과 교회에서 혼인, 만주망명, 신흥무관학교 설립 독립군 장교 3,500여 명 양성, 의열단, 항일구국연맹 이끌다 피체되어 악형으로 중국 대련형무소(신채호, 안증근 등과 같은 자리 서거)
6. 단재 신채호(상동교회를 근거지로 하는 신민회 소속으로 대한매일신보 베델과 백암 박은식, 우강 양기탁과 활동, 약산 김원봉 단장의 의열단 선언서 작성, 상하이 임정 참여)
7. 이재명(평양지역 교회 소속으로 하와이 노동이민, 샌프란시스코(상항)교회 동포들에게 위국헌신 맹세하고 귀국 명동성당 입구에서 동지들과 모의하여 이완용 단칼로 저격, 수만 이재명의 부활 예언하고 찬송가부르다 서거)
8. 한지 김상옥(1 : 1000의 전투로 왜적 20여 명을 사살한 민족의 영웅이다. 온 가족이 독립운동가이며 동대문교회 교인들이다. 의열단, 상하이 임정, 한국전쟁사령관으로 ”내 목숨을 버릴지언정 적에게 투항/포로하지 않을 것“이란 상하이 임정에서의 언약을 지키려 1 : 1000 전투시 피체되지 않고 마지막 남은 한 발로 자결 순국,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동상, 제일 많은 종류의 독립운동 방략을 구사하였고 감리교회의 권서인 출신이다.)
9. 양곡 이가순(3.1 혁명 투옥, 계원 노백린과 사돈간, 공산주의자 이주하와 원산총파업지도, 조봉암의 정신적 스승, 원산-강릉중앙교회-공덕교회)아들 의사 이원재, 손자 이승훈과 고양에 수리조합을 설립하고 황무지를 본인대에 30여 만평, 아들과 손자대에 이르러 1,000여 만평을 옥토로 일궈 광복/승전후 대한민국 정부에 무상기증 우남 이승만 정부의 죽산 조봉암 초대 농림부 장관은 이를 농민들에게 무상 불하하였다. 후손들에겐 단 한평도 상속시키지 않았으나, 이들의 후손은 번성하여 이가순의 딸 이원숙은 정명화, 정경화, 정명훈 정트리오를 길러냈고, 이원재의 딸 이인영의 손녀는 미 국무성의 간부로 재직중이며, 계원의 아들 노태준은 광복군 장교 복무, 딸 노선경은 간호사로 독립운동에 참여해 독립유공자 포상)
* 지금 고양과 서울(고양방면) 근교의 논은 다 이 때 일군것이고, 고양 킨택스 부지나 호수공원 또한 그 3부자가 일군 것으로 지금 그들의 기념석이 호수공원 중앙에 검은 오석으로 세워져 기념되고 있으며 고양시에서는 양곡 이가순 장로가 만든 수로를 따라 그 길을 ‘양곡로’라 하였다.
10. 전태일(소년노동자 출신으로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스스로를 불태워 산화, 국민훈장 무궁화장, 갈릴리-동대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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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10명, 평신도 여성 10명, 평신도 남성 10명 총합 30명.
전태일 열사도 독립유공자는 아니나 민주유공자로 국가유공자이며,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자로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력이 다대하여 선정함.
우리 민족 역사에 자살자가 수 없이 있고, 민족을 위해 자결로 순절하시는 의열사들도 많았지만 그 방법들이 칼로, 음독으로, 권총으로, 숨을 멎어서, 투신하여, 단식으로 였었지 불로 스스로를 태운 경우는 전무했었다. 그가 산화한 70년 11월 13일 이후로 대한민국은 사회분위기가 일대전환을 이루었다. 1986년 4월 28일 분신으로 2번째로 산화한 이는 자교감리교회 교인이며 서울대생인 김세진으로 그의 분신/투신/자결은 그 또한 유례가 없는 일이었고 미국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하였고, 1980년 5월 30일엔 형제감리교회 청년이며 서강대생인 김의기의 기독교회관 투신은 광주학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최초의 일인데, 이것은 5.18 비상계엄으로부터 불과 12일만에 광주학살의 진상규명을 요구한 초유의 일이었다. 아무도 모르고 모두가 오판하고 있을 때 어찌 혼자 알고 그리하였을까?
=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며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유언을 남겼고, 반전반핵 양키고우 홈과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결사반대를 외쳤고, 광주학살의 진상규명을 외쳤다.
= 이 사건들을 이해하여야 감리교인들이 왜? 항일전쟁기에 순절, 무장, 의거투쟁에 특출나게 나서는 종교였는지에 대한 해명이 된다. 사가들의 대부분은 기독교인들이 무장, 순절, 의거투쟁에 나선건 아는데 왜 그렇게 하게 되었는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현대사에서 일어난 대한민국의 그러한 사건이었고, 우리민족에게 제일 충격을 준 세월호 참사는 감리교인 수 십명의 그러한 일이었다.
정모 감독님 말씀하시길 역사는 기억, 기록, 기념의 3기라 했던가하여 기억하여 기록해 두며 제대로 기념할 날을 소망한다.
& 특별 외국인 선교사
헐버트 목사(육영공원 교사로 내조선하여 영어교육을 시작으로 우리민족과 함께하기 시작했고, 사민필지를 저술하여 금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고, 광무황제의 특급보좌관으로 상하이 덕국(독일=도이췌 방크)은행에 예치된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려던 황제의 내탕금 5만불의 유일한 출금권한을 가졌었고, 황제에 의해 워싱턴에 특파되어 을사늑결 저지를 위해 힘쓰다가 미 정부의 공작으로 실패하고 헤이그의 만국편화회의 정보를 국내인사들인 전덕기 목사,우강 양기탁 등에게 전하고 자신도 헤이그의 제4특사가 되어 활약했으며, 한국으로 입국을 못하고 본국인 미국으로 가 자신의 나라 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의 배신자라고 열렬히 성토하였고, 평생을 대한을 위해 살았다. 광복/승전과 정부수립후 1949년 국빈으로 입국하였다가 여행의 여독으로 1주일여 만에 서거하셨으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양화진묘지에 안장되었다.
= 우리 민족의 빛철학에선 사람의 죽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는 빛에서 살다가 이 땅에 빛몸으로 와서 빛삶을 살다가 다시 온곳인 빛으로 돌아가셨다라고.. 온 곳이 빛이니 사는것도 빛으로 살고 다시 돌아갈 곳도 빛밖엔 없음에랴. .
하며, 서거는 국가유공자에게 한정하여 붙이는 죽음에 대한 칭호이니 함부로 사용해선 안된다. 좋은거 같으면 따라하는 습관이 좀 있더라.
= 감리교회 외국인 선교사로 건국훈장 추서받은 이는 구타펠이란 여성이 있다.
헐버트와 더불어 딱 2명이다.
& 민족성지 정리
1. 서울 정동제일교회(아펜젤러 설립, (배재, 이화, 정동병원, 보구녀관, 경기여고 등)
2. 서울 상동교회(스크랜턴 설립, 공옥학교, 상동청년학원, 시병원, 신민회의 발상지이며 상하이 임정 요인 대다수의 배출처, 신흥무관학교, 한미항공학교, 대조선국민군단 독립군 장교 양성의 시원지 등)
3. 서울 동대문교회(스크랜턴 설립, 동대문부인병원, 동흥야학교, 배재흥인학교, 헐버트, 손정도, 이하영(삼일학원=협성대학교 소속 작명) 목사와 한지 김상옥 지사 그리고 로제타 홀 등 활동)
4. 서울 종교교회(캠벨 설립, 배화, 태화 학교 남궁억, 차미리사 등을 통해 민족여인재 배출 등)
5. 서울 청파교회(스크랜턴-전덕기 목사 설립, 이필주 민족대표)
6. 경기 수원종로교회(스크랜턴 대부인 설립, 김세환 48인, 혈복단의 이선경 여지사, 삼일남여학교(삼일학원, 매향학원), 아담스기념관)
7. 경기 안산샘골교회(스크랜턴 대부인 설립, 상록학원, 최용신 기념관 및 묘역, 염석주, 박용덕 지사 등)
8. 경기화성 제암리교회(화수리, 수촌리, 사강리교회, 제암교회 29인 순국기념관 등)
9. 경기 이천제일교회(구연영, 구정서 부자 총살지 등)
10. 서울 꽃재교회(이규갑 목사 등 민족지도자)
11. 강원 철원제일교회 등 일원(무스-하디 설립, 서기훈 등 민족지도자)
12. 강원 원주제일교회(무스-하디 설립, 무스 건축, 원주기독병원, 문창모 지사)
13. 강원 양양교회(하디 설립, 조화벽 지사-정명학원 600여 명 배출)
14. 강원 강릉중앙교회(하디 설립, 몽양 여운형, 노태준 지사, 초당의숙, 의숭학교, 민족지도자 배출)
15. 충남 천안 매봉교회(유관순기념관, 아우내장터, 독립기념관-공통 등)
16. 충남 당진 면천교회(상하이 임정 국무위원 이상만 목사)
17. 충남 공주제일교회(영명학교, 유관순, 유석 조병옥 박사 등 민족지도자, 외국인선교사 묘역 등)
18. 강원 홍천 한서교회(한서 남궁억 장로의 보리울학교=한서초중교, 한서기념관, 남궁억 묘역 등)
19. 인천 강화중앙교회(안산출신 하곡 정제두의 제자인 이건창=동생 이건방은 신흥무관학교 설립 참여한 양명학 계열의 학자= 생가 및 묘역, 3.1혁명 유적지, 의병 김동수, 김남수, 김영구 형제 학살지, 성제 이동휘=상하이 임정 국무총리 및 죽산 조봉암 활동, 옛 잠두교회로 불림 등)
20. 인천 내리교회(미주 민족운동기지화 인력 배출 등)
21. 서울 남산교회(평양 남삼현교회 서울로 이전, 신홍식, 박석훈, 이규갑, 정일형 목사, 박현숙 독립유공자 배출 등)
22. * 강원 동해삼척지방 천곡교회(최인규권사 순교비 = 미추서자, 청원중)위 교회중 유일하게 독립유공자 미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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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22개 교회
*. 사실, 제천제일교회는 제암리교회 이상?의 교회일 수도 있다. 제천일대의 의병집결지 청소를 자행한 왜적에 의해 가옥 700여 호가 불탔고, 약 5,000여 명의 이재민은 엄청난 고난을 당했다. 이 참화를 위에 교회가 탁사 최병헌에 의해 설립되어 이들에게 위로의 강력한 소망을 심어주었다. 희안하게 1명도 불에 타죽진 않았다. 이것도 은헤이고 감사해야 하는지 참 그렇다.
= 감리교단은 120여 년전의 제천제일교회와 그 일대를 특별민족수난지로 지정하여 정부에 강력요구하여 민족특별성지로 지정케하는일에 나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런데, 왜 민족성지로 지정안했냐? 물으시면 감리교회 출신 독립유공자가 배출되지 않았어요라 답하겠다.
*. 최인규 권사는 항일전쟁기 최초이며 유일하게 강제신사참배거부로 순교/순국하여 민족정기를 지킨 감리교회의 평신도 선열이시다.
*. 자료에 따르면 강제신사참배 거부로 인한 순교/순국 목회자는 감리교회가 강중근, 권원호, 양국주 3인이고,
장로교회는 하라카와로 창씨개명을 한 주기* 목사 1명으로 그는 순교자이며, 창씨했으므로 순국선열이 아니다.
이 말은 최인규는 2천만 내지 3천만의 대한인중 동네 아저씨?로는 유일한 강제신사참배거부 순교/순국자란 말과 같다.
1,500년 300여 만 신자의 불교, 1,000년 1,500여 만의 유교, 20여 만의 천주교, 100여 만의 천도교 등은 신사참배 거부로 인한 순교자뿐 아니라 구속자도 단 1명이 없다.
감리교회의 강제신사참배거부 투옥자는 19명이다.
=. 현재 감리회에서는 고 최인규 권사의 건국훈장 추서를 위해 정부에 독립유공자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감리교인들의 기도가 답이다.
1. 감리교신학대학교(협성남여신학교, 민족대표 9인 및 독립유공자 40여 명 배출)
2. 배재학당(20여 명의 독립유공자 배출)
3. 이화학당(20여 명의 독립유공자 배출)
4. 배화학당(20여 명의 독립유공자 배출)
5. 연세대학교(연희전문, 세브란스의전, 20여 명의 독립유공자 배출 등)
6. 호수돈여학교(개성에서 대전으로 이전, 민족지도자 배출)
7. 송도고보(개성에서 인천으로 이전, 민족지도자 배출)
8. 태화여자사회복지관(3.1혁명 선언서 낭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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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및 기관 8곳.
교회와 기관 22+8 = 유적 30곳
* 독립문, 서재필 동상, 순국선열위패봉안소, 순국선열 탑, 3.1혁명 기념비와
서대문형무소의 유관순 굴과 처형지 그리고 시굴처(공통) = 전체가 독립공원
* 서울 종로 YMCA회관(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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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교회와 기관은 독립유공자 배출을 기본으로 한다.
& 이희호, 이태영, 전태일 등 3인은 예외로 독립유공자는 아니나 무궁화 대훈장과 국민훈장 무궁화장 포상자이기는 하며, 민주유공자이어서 사회적 영향을 크게 끼친 분들이라 현대인물이지만 선정하였다.
&& 이 문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어떤 필요에 따라 역사정보자료실 송상현 목사의 요청으로 감리회 역사위원회 순교순직분과위원장이며, 감리회 훈장추서사업 담당이고, 한국기독교 독립운동가 연구선양회의 경기연회 안산서지방 성안산형제들교회 담임 민관기 목사가 정리하였다.
&&& 아쉬운 점은 우리 민족을 위해 공헌한 외국인 선교사들중 그 공적에 대한 예우를 받아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선교사들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며, 이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나서서 외국인 선교사에 대한 예우의 문제를 어떻게 할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평안을 소망합니다.
&. 위의 본문에 거론된 인물들을
일본인과 북의 김일성, 이주하 제외하고 한국인들만 살펴보면
아래에 거론되는 인물을 제외하고, 100% 대한민국 정부로 포상받은 국가유공자들이다. 국가유공자는 독립유공자, 참전유공자, 민주유공자만 국가유공자이다.
(무순 및 호칭 생략)
1. 민족운동에 참여했으나 아직 훈장을 추서받지 못한 이들은
최인규, 박용덕, 염석주, 김노득, 조민형, 전희균, 양국주, 전영택, 조봉암, 이원재, 이건창, 이건방, 전진 등이며, 외국인으론 아펜젤러, 스크랜턴과 대부인, 하디와 무스, 로제타 홀, 캠벨 등이다.
2. 민족의 철천지 원수는
배정자, 안두희, 이완용 등이다.
3. 그냥 가족으로는
정호준, 이인영, 이원숙, 정트리오=정명화, 정경화, 정명훈, 이승훈 등이다.
4.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그런 이들은
김원봉, 이기붕 등인데 누구는 공과가 있지만 누구는 공은 없고 과만있다 평가된다.
5. 광무황제 이분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6. 정춘수, 박희도는 뭐라해야 할까?
감신출신 민족대표 7인 부조상을 보면 정춘수도 김창준도 있던데, 같은 감신출신인데 박희도는 왜 부조상에 없는 것이며(이유는 졸업이 아니라 수료라서 그런단다. 그런걸로 치면 아문 이필주 목사도 수료다) 근곡 박동완 목사는 도대체 어디서 신학을 했길래 목사가 되었는지 감신 부조상에 없는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근곡의 후손은 안타까이 분노한다.
감리교회 출신 민족대표가 9인인건 웬만하면 다 아는데 감신은 7명이란다. 그렇지 않다. 9명 다 감리교회 출신이며 감신 출신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인명명부와 유적지가 왜 어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필요한 것인지 등을 질문해주시길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