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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자들을 통해 강한자들을 부끄럽히시는 하나님
현종서
- 1515
- 2022-10-12 04:40:30
그런 교회는 우리처럼 교양있는 신학생이 가는 곳이 아니고 시장에서 장사하는이들, 길거리노점상들이나 다니는 저교회였다. 그 담임자라는 이도 말 들으니 신학교도 변변한 곳 나오지 못한, 다시 말하면 2층교회의 2층에서 하는 작은 신학교를 나온 자라고 하였다. 거기에 비하면 감리교 신학대학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건물도 좋고 교수도 우수한 분들이었다. 그런데 그교회는 그곳에서 수년(10년?)간 법썩 대더니 어느날 여의도로 이사간다는 것이었다.
알다싶이 당시 여의도는 황량한 섬이었다. 넓은 땅을 불하받고 크고 웅장한 교회를 지었고 교인들은 그곳까지 차 타고 갔다. 교인수가 늘으면서 교회버스들도 생겼고 -- 중략-- 순복음 중앙교회 역사는 기적의 역사요, 무서운 시련과 역경을 헤쳐 나온 역사였다. 예를들면, 조용기 목사는 그 건물을 지으면서 건축비가 턱 없이 부족하여 그것 마련하노라 여기 저기 돈도 많이 빌렸겠고 예배 끝나기가 무섭게 은행에서 돈을 가져 가고 건축비에 시달려 조용기 목사는 4층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떨어져 죽을까도 생각했고, 최자실 목사도 공동묘지에 가서 기도하다 죽으리라하고 교회공동묘지에 가서 금식하며 기도하기도 했고, 그런 시련을 다 거쳐 교회가 완성되엇고 최자실 목사가 금식기도하던 파주동산이 금식기도원이 되어 해외에서도 유명해져, 성도들이 한국에 오면 이교회와 기도원을 관광코스에 넣었고 영적 충전이 필요한 많은 한국 목사들과 성도들이 초교파적으로 찾아가 금식기도 하다가 기도응답받고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부지 기수였다.
조용기 목사의 집회시 참석하여 은헤받고 성령받아 교회를 섬기던 분들이 대 부흥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감리교회도 김홍도 목사, 이호문 목사, 김국도 목사 이분들이 그가 인도하던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받고 성령체험하더니, 또 대형교회들을 형성하고 전국부흥사로 활동하게 되었고, 그밖에도 당시 목회자들은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분들이 거의 없었다. 결국 그는 교인 60만 또는 더 성장하여 80만까지 되는 세계최대 교회를 이루게 되었었다.
우리때의 사람들은 너무도 잘 아는 이야기들이지만 현금의 교회의 젊은 목회자들은 사회분위기와 더불어 교회의 성장이 멈춤뿐만아니라 줄어가고 있는 시기에 살다 보니 믿음이 많이 떨어져 환경탓을 많이 한다. 물론 그들의 현실 인식이 틀린 것이 아니겠으나, 믿음의 세계는 계산의 세계와 다른 것이다.
내가 경험하기는 옛날에는 삼각산(북한산)에는 기도원도 여러군데 있었고 밤새 기도하는 이들이 이골짝 저골짝에 있었다. 우리 감리교회 청장년들도 그곳에 모여 기도들 많이 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 들어서더니 자유롭게 들어가 기도하던 그 산을 무슨 보호구역으로 만들어 못 들어가도록 규제 하였다. 기도원들도 1-2개 남고 거의다 사라졌다. 물론 기도는 집에서도 교회에서도 할 수 있지만 산에서 하는 기도는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는기도였다.
1970 - 1980년때 교회가 제일 부흥 많이 되고 기도많이 할 때 여의도 광장에서 초대형 집회들도 수십만 또는 백만명도 운집한 집회가 있었다. 74 대학생 집회, 77복음화 대성회, 80년 무슨 대집회 그리고 88년도에는 동서 화합의 올림픽 행사 그 행사를 이용한 그 대회에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선수들, 운영직원들,언론인들에한 게 집중 전도를 하기도 하였다.
현금의 80대 노인들은 그때의 주역들이었고. 그분들 시대에 새 마을운동이 크게 결실하여 한국 여러마을에서 비젼을 갖고 협동하여 일함으로 많은 기적같은 성취들을 하였였다. 현금의 40- 50대 목회자들은 당장 주사파들의 영향과 펜데믹 등 영향으로 교회가 많이 위축된 모습에서 헤어나가려하니 전도도 어렵고 엣 교회의 주역들은 늙고 뒷전으로 물러 나고 또 돌아가시니, 또 서방에서 몰아닥치는 자유주의적 신학영향, 악한 문화의 물결, 이러다가 교회가 교인들이 줄어들고 사라지게 되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한 마음까지 드는 때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감수성이 예민한 이현- 목사가 나타나 외마디 소리 발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어두워 질때가 새벽이 가까와 질 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민족과 국가는 역사적으로 얼마나 어둡고 암울한 시대를 살고 헤쳐 나왔는가? 지금 대한 민국은 단군이래로 가장 잘 사는 때를 경험하고 있고 국제적 위상도 날로 좋아지고 있다. 우리가 과거보다 더 큰 과업들이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통일도 있고 잃은 고토도 찾고 더 큰 나라의 주인이 되어 세계를 위해 더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앞을 내다 보며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열심히 실력을 닦아야 할 것이다.
젊은 목회자들이여, 어려운 때에 불가능을 모르는 하나님을 바라 보자. 그리고 그분께 더 지혜와 능력과 사랑을 구하자. 동방에 등촉을 켤 이들은 여러분들이고 복음으로 민족과 주변국들을 구하고 세계를 구할 사명을 가진이들이 여러분들인데 그 사명을 보다 잘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