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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의미
함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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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25 19:38:09
함창석
히브리서 5장 7-10절에는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해 주실 분에게 크게 부르짖으며 눈물로 기도와 소원을 올렸고 경건한 복종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몸소 여러 가지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서 완전하게 되셨고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하나님에게서 멜기세덱의 계열에 속한 대제사장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하였다.
눈물은 눈알 바깥면의 위에 있는 눈물샘에서 나오는 분비물이다. 늘 조금씩 나와서 눈을 축이거나 이물질을 씻어 내는데, 자극이나 감동을 받으면 더 많이 나온다.
생리적으로 말하면 눈물은 분비물의 일종인데, 종교적으로는 신이나 불에 대한 기도와 참회 중에서 배출되는 유출물이다. 또한 그것이 수난과 비애의 정도를 심화시킬 때는 가끔 실명의 원인도 되었다. 예수회의 창립자인 I. 로욜라는 『심령일기』 중에서, 기도와 관상 중에서 흘린 눈물에 대해서 극명하게 기술하고, 때로 과도의 눈물로 실명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를 고백하고 있다. 또한 중국 정토교의 대성자인 도선은 『왕생예찬갈』 중에서 3종의 참회를 들고, 유혈ㆍ유루에 의한 참회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유루(流淚) 현상은 현실의 시각적인 세계를 눈물의 막으로 일시적으로 덮어서 숨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완전히 별개의 상상 속의 체험이나 세계를 거기에 나타내려는 주체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마치 대소변이나 정액이나 결혈의 배출처럼 눈물은 신체의 생리적인 카타르시스와 정신의 흔쾌 또는 재생을 얻기 위한 상징적인 유출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눈물, 종교학대사전, 1998)
눈물은 슬플 때나 흥분할 때 눈에서 나오는 분비액으로 무색의 액체이며 염화나트륨이 주성분이다. 성경에서는 주로 육체적 고통보다는 정신적 비탄을 묘사할 때 이 용어가 쓰인다(시 56:8). 다윗은 잠자리가 젖을 정도로 눈물 흘리며 철저하게 죄를 회개한 진실 된 군주로 유명하며(왕하 20:5; 시 6:6; 39:12) 조국의 멸망을 눈물로 탄식하며 애가를 지어 불렀던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의 선지자’(Weeping Prophet)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렘 14:7; 31:16; 애 1:2; 2:11). 또 예수께서도 공생애 기간 중 구속 사역을 위해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고(히 5:7), 사도 바울 역시도 이런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복음 전파와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 밤낮 눈물로 가르쳤다고 고백하였다(행 21:19, 31; 딤후 1:4).(가스펠서브, 눈물, 라이프성경사전, 2006)
악어의 눈물은 위정자의 거짓 눈물 또는 위선적인 눈물을 가리킨다. 사람을 잡아먹은 뒤 그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린다는 이집트 나일강에 사는 악어의 전설에서 유래했다. 실제로 악어는 먹이를 먹을 때 움직이는 입과 눈물샘의 신경이 같아 먹이를 삼킬 때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악어의 눈물,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눈물의 골짜기는 히브리어로 '에멕 하바카'인데, 직역하면 '바카 골짜기'(the Valley of Baca, 시 84:6 난외주)다. 바카 골짜기는 발삼나무(고무나무, 뽕나무)가 많은 골짜기를 말하며, 순례자들이 팔레스타인 북방에서 예루살렘으로 갈 때 통과하는 힌놈의 골짜기 북쪽의 어느 작은 골짜기로 본다(삼하 5:23-24). 70인역(ⅬⅩⅩ)은 히브리어 '바카'를 '눈물'로 해석해 '눈물 골짜기'라 했고, 한글성경 역시 70인역(ⅬⅩⅩ)을 따라 '눈물 골짜기'라 했다. 그런데, 이 '눈물 골짜기'는 고통과 탄식, 시련으로 점철된 경건한 인생길을 상징한다(찬송 492장).(가스펠서브, 눈물 골짜기, 교회용어사전: 교회 일상, 2013)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 주고 싶어서 군중들에게 다시 말했으나 그들은 계속 소리를 지르며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그러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세 번째 말하였다. "이유가 무엇이오? 이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소? 나는 이 사람에게서 죽일 만한 죄를 찾지 못했으므로 매질이나 해서 놓아 주겠소." 그러나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쳐대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끈질기게 요구하자 마침내 그들의 소리가 이기고 말았다. 그래서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대로 할 것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들이 요구한 사람, 곧 폭동과 살인죄로 옥에 갇힌 죄수를 석방하고 예수님을 넘겨주어 그들이 마음대로 하게 하였다. 그들이 예수님을 끌고 가다가 시골에서 올라오는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잡아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게 하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뒤따라갔다. 그들 가운데는 예수님 때문에 슬퍼하며 우는 여자들도 있었다. 예수님은 몸을 돌이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어라.(눅 23:20-28)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불이익을 받거나 모함을 당하면 그 억울함을 호소할 때 눈물을 동반하기도 한다. 대장동을 비롯하여 개발과정에서 불법적인 이익을 취하고 그 자금이 불투명하게 쓰여 졌다는 야당대표는 눈물을 보이고 있으니 정말로 억울한 것일까?
눈물이 없는 곳은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더 이상 죄와 사망의 영향력 아래 머물지 않아, 고통과 저주와 절망과 탄식과 갈등과 상실이 없는 빛나는 천국의 실상을 한 마디로 묘사한 표현이다. 성경에는 '···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