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C와 WCC, “공감능력”이 부족합니다.

이현석
  • 1637
  • 2022-10-30 05:16:49
영화 리멤버에서 주인공 거트만은,
치매가 (완전히) 오기 전, ‘가족을 죽인 아우슈비츠의 나치’를 찾아 원수를 갚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병원에서 죽을 날을 기다리던 용의자를 발견합니다.
그에게 권총을 겨눈 순간, 그 용의자는 자신의 팔에 새겨진 수감자 번호를 보여줍니다.

주인공이 묻습니다. “유대인이오?”
남자는 힘없이 대답합니다. “호모섹슈얼”
주인공은 (그에게 안기어) 흐느끼며 이렇게 말합니다. “I’m sorry-.. so sorry-”
그들의 역사에서, “호모섹슈얼”은, 유대인과 함께 아우슈비츠에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동성애는, (아우슈비츠 대신), 군대와 어두운 뒷골목의 “동성 성폭력”으로 존재했습니다.

저는 군복무中 후임병間의 同性성폭력을 경험했습니다.
이 사건은, 저를 ‘동성애 혐오자’로 만들었습니다.
단지, 제가 목사라는 이유로 그 혐오를 표현하지 않은 것 뿐입니다.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았던 제가, 자유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면, 과연 어땠을까요?
제가 동성애를 혐오했을까요?

개인적인 경험도, 어떤 상황에서는, 필연적으로 역사적입니다.
이렇게, “Remember-캐나다와 독일에서의 경험”과 “한국에서의 경험”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역사적 경험은, 일방적으로 양보하거나, 무시될 수 없습니다.

한국의 민주화진영은 90년대 이후,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각계의 지도자 다수를 배출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역사에서 ‘민주화운동 경험’만이 존재할까요?
아닙니다. 한국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가족 경험’도 있습니다. ‘산업화 경험’도 있습니다.

역사적 경험은 기본적으로 다양하고, 다양한 세대 가운데,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역사 안에는 상처가 있고, 교훈이 있습니다.
차이를 인정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날, 에큐메니칼 운동이 그 노력을 충분히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역사를 치유하는 성령체험을 갈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와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타인을 충분히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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